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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5 - 다음 아고라

아고라.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있던 공공의 광장으로 시민들의 경제생활과 예술활동이 이뤄지던 곳.

다음 아고라.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결성된 곳. 이명박 대통령 취임 70일만에 탄핵 청원 100만명 서명이 달성된 곳. 미네르바가 등장한 곳. 인터넷 역사상 전무후무한 고급 경제 정보의 집합지. 인터넷 역사상 최악의 찌질이 댓글 알바들의 활동 공간.

사실 저처럼 외국에서 오랫동안 인터넷을 써온 사람들은 한국의 인터넷을 내리깔아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카데미아를 중심으로 인터넷 초기부터 생겨났던 다양한 문화들, 공유와 개방의 정신, 기술 분야의 전문적이고 폭넓은 정보들에 비하면 한국의 인터넷은 초기부터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비춰졌지요.

하지만 시작이 다르고 발전해온 방향이 다른 것을 임의의 잣대로 폄하해 본 것은 저의 불찰이었습니다. 적어도 오늘날 저는 미국 인터넷 보다는 한국 인터넷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니까요. 제 인터넷 생활 15년 중 지난 3년 사이에 변화된 일입니다.

제가 한국의 인터넷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꼭 3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제가 구독하던 오십여개의 RSS 피드중에 한국 사이트는 단 한곳도 없었죠. 근데 지금은 제가 RSS로 구독해보는 아고라 논객들만 해도 열댓분이 넘습니다.

아고라에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진정한 한국의 엘리트분들이죠. 그분들이 실명으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어렵다는 것은 좁고 좁은 한국사회의 어쩔수 없는 한계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니라 한국에서 서울대, 연고대 등을 졸업했다면, 실명을 걸고 이런 이야기들을 쓰기는 부담스러웠겠지요.

아고라에서는 박대성이 가짜라는걸 처음부터 다들 알았습니다. 지금은 진짜 미네르바가 누구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까지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때가 되면 진실이 알려질 것입니다. 항상 널리 퍼지지는 않아도, 한국 사회란 비밀이 없는 곳이니까요.

며칠 글을 못올렸더니 벌써 제 신변을 걱정하는 메일들이 들어옵니다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전장치야 늘 마련해 두지요.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조언드립니다. 아고라든, 블로고스피어든 서로간에 이메일 연락 체계를 만드십시오. 1:1 단위의 점조직 형식으로, 이메일 주소는 구글 지메일 등의 외국 서비스를 사용해야 겠지요. 중앙 통제 시스템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게릴라 방식입니다. 이미 그런 네트워크가 상당 부분 형성이 됐지만, 좀더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아고라나 블로그 등에 글쓰면서 이메일 주소를 공개하세요.

공개적으로 글쓰는 사람들도 늘어나야 합니다. 아고라에서 찬성 버튼 누르는 것, 댓글 다는 것도 겁내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열 받을대로 받아 마구 글쓰는 분들이 많아져서, 추적하고 관리하는 인원이 딸립니다. 추적하고 관리하는 사람들도 사람이에요. 그들도 스스로는 많이 쪽팔려들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그렇고 앞에 내세우는 사람들이 갈수록 수준 이하가 되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정권의 정체성이 다 밝혀진 상황에서,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 협조하겠냐구요. 다들 올해 안으로는 정권이 레임덕에 빠질 것으로 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고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공간이지요. 하지만 온라인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글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대화가 통한다 싶으면, 오프에서도 많이들 만나세요. 여럿이 함께 모이면 친목모임이 돼버리니까, 두세명씩 만나는게 깊은 이야기 나누기 좋습니다. 좋은 분들 많이 만나시게 될겁니다. 명분을 가진 쪽이 갖는 힘이 있습니다. 그걸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다음 소속원분들께도 한마디 적습니다. 여러분 대부분도 이번 사건의 조작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다음 내부 사람은 협조한 엔지니어 두명 포함해서 너덧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문제가 많다는건 다들 알고 있잖아요? 언제까지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다음이라는 회사가 인터넷 역사상 최악의 조작 사건으로 문닫은 회사로 기록되게 내버려두실 참입니까? IT 회사를 망가뜨리는건 늘 타분야에서 굴러들어온 사람들이죠. 조선일보 출신 기자와 삼성 홍보팀 출신 여자한테 회사 전체가 휘둘려서 뭐하는 겁니까?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은 어디가서 엿바꿔 드셨습니까? 조작질이든, 뭐든 시키는데로만 하는게 진정한 프로입니까?

조금은 더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제가 6월 1일인가 국민일보 미네르바 사건 담당 기자한테 진짜 미네르바가 누군지 다 밝혀졌다고 알려줬더니, 당황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더군요. 그 친구가 박찬종 변호사 보좌역인 김승민이랑 친하거든요. 그러더니 그 다음날 박대성이 미국으로 유학간다는 기사가 나왔지요? 그것도 국민일보 단독 보도로. ㅎ

제가 이번 연재를 6월 24일에 시작했는데, 일간스포츠가 29일자로 박대성 인터뷰 기사를 냈죠? 대응 속도 참 빨라요. 뻔뻔한 물타기도 대단하고. 근데 노출되면 될수록 가짜인게 마구 드러나는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임기응변은 오래 못가는데. 쯧쯧.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4 - 언론사들

오늘 오후에 박대성이 간만에 언론 인터뷰를 했더군요. 어느 언론사일까요? ㅋ

[일간스포츠] 돌아온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할 말은 하겠다”

언론사들도 이제 대충 다 눈치깐 상태라서, 이제 인터뷰 받아주는 데가 스포츠 신문 밖에는 없는 겁니다. 지금 언론사들 몇가지 최종적인 의문점만 풀리면 기사쓸 채비 다 하고 있거든요.

결국 여기까지 쓰게 되는군요.. 사실 언론사들 건드리기가 제가 좀 부담스러워요. 하필이면 조작에 참여한 곳들 여럿이 저랑 안면있는 곳들이라. 아무튼 조작에 깊이 관여했던 언론사 중에서 어디든 앞으로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취재해서 기사 나가는 곳 있으면, 저도 가만 안있을 겁니다.

오늘은 신문사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써보지요.

흔히 언론사를 공기(公器)라고 부릅니다. 근데 지난 십여년간 신문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공의 역할보다는 사기업적인 성격이 짙어졌어요. 조중동의 경우도 진보정권 10년 동안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고, 때마침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문산업 자체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지요.

신문 관심있게 보시는 분들은 보수 신문들이 방송사업 진출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을 알아채셨을 겁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미디어법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아직까지 신문이 끝발 센 권력이긴 하지만, 현재 신문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갈수록 신문 기사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언론사들이 재정난으로 기자 수를 꾸준히 줄여온 것과 무관하지 않지요.

사실 케이블 방송으로 인해 채널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이 예전만큼 TV를 오래 시청하지도 않습니다. 방송사들도 지금 많이 어렵지요, 케이블 TV 산업은 거의 붕괴 직전이고. 그럼에도 보수 신문들은 방송 진출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십년도 넘게 준비해 왔기도 하구요. 그래서 여론이 아무리 나빠도 미디어법은 끝까지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저도 언론 인터뷰에 두어번 응해봤는데, 제가 느낀건 기자도 보통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한번은 인터뷰를 한 후에 담당 기자와 소주 한잔을 했는데, 자기가 이전에 자신을 무시했던 어떤 정치인을 까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는걸 무슨 무용담 이야기하듯 과시를 하더군요. 뭐, 그런다고 제가 비위 맞춰주는 성격도 아니지만. 근데 나중에 기사가 나온걸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가 좀 건방진 사람으로 비춰지게 뉘앙스를 만들어 놨어요. 저 개인에 대한 인터뷰도 아니고 특정 기술을 소개하는 인터뷰였는데.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한 서너시간 신나게 이야기를 했는데, 인터뷰 마치고 기자왈 "이거 기사로 쓰기 너무 아깝네요." 저 개인에 관한 인터뷰였고 기사는 솔직히 과분할 정도로 잘 나왔습니다만, 그때 저는 처음 깨달았죠. 기사로 내보내는 정보의 클래스란게 딱 정해져 있는 거구나 하고.

아무튼 기자들 세계도 이해해야 기사 너머를 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책도 그런 면이 있어요. 책이 갖는 권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직접 책을 집필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지요.

그리고 요즘은 경쟁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비춰지는 경향이 있는데, 뭐든 적절한 양이란게 있는 겁니다. 교수 임용이 어려워지고 교수 심사를 까다롭게 하니까, 교수들이 위축되서 필요한 목소리도 잘 못내잖아요. 실제로 눈치없이 굴면 손해보는게 한국사회에요, 워낙 좁은 곳이라서. 공무원들이 퇴직 후에 누리는 혜택을 줄이면, 국민들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재임중 비리는 꽤나 늘어날 겁니다. 밥그릇 걱정이 없어야 소신도 생기는, 그런 측면을 아주 무시하면 안되죠.

이야기가 조금 샜군요. 다시 미네르바 사건으로 돌아가보죠. 이번 사건의 조작에 참여한 언론사는 대강 잡아도 5-6곳은 됩니다만, 중추적인 곳 세군데를 끄집어내 보겠습니다.

이들 중 한 곳은 간부 한 사람이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해 신동아 K의 신원에 대해 의도적으로 허위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가 저번 보궐선거때 모정당 공천에서 떨어져서 이상타 했었는데, 얼마전에 그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됐더군요. 다른 한곳은 자기네가 기사로 내보냈던 미네르바 인터뷰를 망가뜨리기 위해 사과문까지 발표했구요. 들리는 말로는 본사의 방송사업 진출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또다른 한곳은 "신동아측이 다음을 통해서 박대성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는 박대성측의 주장이 허위임을 확인하고서도, 그걸 그대로 제목으로 뽑아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여기도 고위 간부까지 이어지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확인됐지요.

그 외에도 물타기용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는 여럿입니다만, 다음과 검찰에서 박대성이 진짜라고 못을 박고 주요 언론사들이 저렇게까지 보도를 해댔으니 큰 부담들 없이 기사를 썼겠지요.

더 궁금한 내용들 있으면 댓글로 물어보세요. 온라인 글쓰기란 사실 대화에 가깝죠. 연재 내용이나 순서를 특별히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댓글 읽으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내용들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연을 너무 많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근데 세상일에 우연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화 대부에서 돈 콜레오네역의 말론 브란도가 이런 말을 했었죠.

"하지만 나는 미신적인 사람입니다. 내 아들에게 우연한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 한명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나이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과학을 공부한 저같은 사람도 점점 더 미신적이 돼가네요. 자신의 생각과 언론이 말해주는 진실이 다르다면,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편이 더 현명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인지부조화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3 -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네르바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는 아고라에 상당히 많은 글을 올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사나흘은 꼬박 걸리는 분량입니다. 글이 쓰여진 당시 사건들, 언론 보도들과 크로스 체크하면서 읽으면 일주일도 넘게 걸릴겁니다. 근데 의외로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미네르바가 쓴 글조차도 제대로 읽지를 않았더군요.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과 언론에서 피상적으로 떠드는 이야기에 생각이 쉽게 휩쓸립니다.

개중에는 박대성을 아이템 삼아 사업을 벌이려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에 깊이 휘말린 어떤 이에게 이를 주의하라고 지적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 않느냐?"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선비같이 처신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근데 사리를 따지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경계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구상한 이들이 있으니, 박대성 진짜 미네르바 만들기에는 동력이 붙었습니다. 박대성이 가짜인줄 알고 이를 견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사회적 당위로써 이 사건을 추적해왔을 뿐이지요. 이제 박대성을 미국으로 도망보내는 상황이 됐으니, 박대성의 상품가치는 상실됐습니다. 게다가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 박대성 진짜 미네르바 만들기에 앞장서는 일은 꽤나 위험한 일이 돼버렸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입을 열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미네르바 사건의 조작 구도를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되묻습니다. 저렇게 광범위한 조작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게 정말 황당하다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근데 어떻게 이런 조작이 가능했을까요?

한국의 지식사회에 처신을 잘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였습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들 중에는 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주변을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다음 세가지가 분명해 집니다.

  1. 미네르바 사건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 찔리는 구석은 있지만, 자신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찔리는 구석 때문에라도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박대성 진짜 미네르바 만들기에 동조한다.

어찌됐든 나는 몰랐다고, 저 사람에게 속았다고 손가락을 가리킬 누군가는 있더군요. 그렇다고 그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자는 각 대상을 체스판의 말로써 부릴 뿐이지 전체 그림을 보여주는 법이 없지요.

기획을 꿰뚫어보지 못했더라도 각자가 지켜야했던 가치들이 있었습니다. 언론사는 개인이나 조직의 이권을 위해 기사를 거래하지 말아야할 당위가, 사법 기관은 법을 정당하게 집행해야할 의무가,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지켜야할 윤리의식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대중의 판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이나 전문가라면, 그에 합당한 처신이 있는 것이지요. 그를 저버렸을때 초래되는 결과분에 대해 각자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제가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로서 였습니다. 당시에 관여했던 일을 포함해서 지금 글을 쓰는 부분까지, 제가 제 처신의 결과분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회에는 늘 이런 종류의 기획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정치적인 것들이지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뚜렸한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면, 그런 기획을 의심해볼만 합니다. 최근들어 그런 일들이 부쩍 많아진 것을 모두 느끼고 계실 겁니다.

아무튼 모두가 남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책임 소재의 종착역이 바로 다음커뮤니케이션입니다. 미네르바가 다음이 운영하는 아고라에서 활동했기에, 미네르바 진위논란에 결정적인 방향타 역할은 한 것은 다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인터넷 기업인 다음이 온라인 아이덴티티의 조작 문제를 그처럼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최근에는 다음 아고라에서 제가 사용하던 필명이 도용된 사건이 있었지요. 그를 바로잡는데 다음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제가 이번 연재를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을 차제에 밝혀둡니다. 인터넷 회사인 다음이 온라인 아이덴티티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온 수준이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아니, 그 건에 있어서 이해당사자였던 다음으로서는 더더욱 처신을 그렇게 하면 안됐습니다. 지금 이 연재가 그에 대한 저의 응답입니다.

저는 다음의 경영진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에게 손가락을 가리킬 생각입니까? 권력의 압박에 못이겨서 DB를 조작했다고 변명할 참인가요?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앞으로 다음의 소속원들과 한국의 인터넷 회사들에게 덧씌워질 주홍글씨는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가요?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 주말 쉬어가기

이번 미네르바 사건은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와 우리 시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 많이 바쁘긴 합니다만, 그래도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 하나하나 풀어서 적어볼 생각입니다.

근데 주제가 민감해서인지 아니면 진실이 뭔가 긴가민가 해서인지, 조회수에 비해 댓글이 많이 안달리네요. 궁금하신 내용 있으면 댓글로 물어보세요. 익명으로 댓글 다셔도 좋고..

블로그를 방치해두는 동안 다음 아고라에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게시판 글쓰기도 나름의 재미가 있더군요. 거긴 댓글도 많이 달리고. ㅎ

익명 글쓰기가 가지는 매력도 있지만, 앞으로는 그냥 이곳에서 편하게 쓸 생각입니다. 요즘 신문 보면 막말하는게 유행인데, 막말까진 아니지만 저도 속에 든 생각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블로깅 하려구요. 황당한 일 한 번 겪고 나니, 아고라는 돌아갈 생각이 영 안드네요.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첫번째 글 올리자마자 다음측에서 바로 연락이 오긴 했습니다. 근데 별 내용도 없고 그냥 제가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 떠보는 메일이더군요. 다음측에도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 드립니다. 의도를 정확히 밝히시고 질의주시면 저도 답메일 드리겠습니다. 두루뭉실 내용없는 메일 보내시니 저도 뭐라 답메일을 드려야할지 난감하네요. 메일 보낸다고 그 내용 블로그에다 마구 공개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아쉽습니다. 다음과 같은 신흥 세력이 기득권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지켜야할 가치들을 지켜주었다면, 우리 사회에도 바람직한 일이고 IT 업계가 이 사회의 미래를 주도해 갈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참 많이 아쉽긴 하네요.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2 - 정권 사모 펀드와 노란 토끼

작년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기억하십니까? 당시에 월가에서는 그에 무척 황당해했다고 합니다. 왜 리먼이 미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는 것이죠. 미국 정부에서 협조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월가 사람들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리먼 경영진이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부도를 맞은 것 같다."

산업은행의 인수 철회는 너무 당연한 거라서 별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리먼의 회계 장부만 들여다봐도 도저히 말이 되질 않는 인수였으니까.

근데 한국에 있던 우리들은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 직전까지 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작년 8월 내내 미네르바가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면 한국이 망한다고 경고를 했고, 결국 9월 10일에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사흘후인 9월 14일에 리먼이 파산했죠.

민감한 내용이라 미국 언론도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 규모를 잘 다루지 않습니다만, 파산 당시 리먼의 총 부채 규모가 6,00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약 4,000~6,000억 달러 규모의 채무 불이행을 전제로 뉴욕타임즈가 보도하는 것으로 보면, 리먼의 자산 대부분이 부실화됐다고 봐야겠죠.

http://www.nytimes.com/2008/10/11/business/11credit.html

즉, 작년 9월에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했다면, 현재 2,000억 달러 정도 되는 외환보유고의 2-3배 되는 부채를 우리가 떠안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리먼 인수 가격은 60억 달러로 합의됐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산업은행은 왜 이처럼 말도 안되는 인수합병을 추진했느냐가 당연히 의문점입니다. 게다가 리먼 인수를 추진했던 산업은행의 민유성 총재는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리먼 인수가 그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죠.

미네르바는 산업은행의 리먼 브라더스 인수가 MB 정권 인수위 시절에 이미 계획됐다는 것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리먼 브라더스 한국 지사장 출신인 민유성씨가 산업은행 총재 자리에 앉게 된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가죠.

이쯤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MB 정권은 산업은행 민영화에 저토록 목을 매는가? 산업은행은 IMF때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우증권, 대우조선해양, 현대종합상사, 쌍용양회,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이 그 회사들이죠. 근데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누가 산업은행을 인수할까요? 국내 기업일까요? 외국 기업일까요? IMF때 외환은행을 누가 인수했는지 기억하시나요? 바로 사모 펀드인 론스타였습니다. 그동안 배당금만으로도 원래 투자 금액의 전부를 회수했죠. 그런 배당 결정은 누가 했을까요? 물론 론스타쪽 이사들이 주축이 된 외환은행 이사회입니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당연히 사모 펀드에서 이를 인수할 겁니다. 어느 사모 펀드일까요? 론스타처럼 이전까지는 우리가 이름을 전혀 못들어본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사모 펀드가 뭐하는 곳인지 혹시 아시나요? 사모 펀드란 여러명의 투자자가 투자금을 모아 만든 펀드입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투자를 하는데, 실제 투자자는 누구인지 알 수 조차 없죠. 론스타를 통해 실제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들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산업은행 인수가 엄청난 이권이 되리라는 점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럼 산업은행을 인수할 사모 펀드의 투자자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미네르바는 바로 이 점에서 정권 사모 펀드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수십 수백조씩 되는 자금도 너무 세탁하기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네르바가 박대성이라고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1997년의 IMF 외환 위기를 이야기해 볼까요? 그때 외환공격을 주도했던 곳은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퀀텀 펀드라는 이름의 헷지 펀드였습니다. 당시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외환시장을 공격했죠. 이 펀드에는 누가 투자를 했을까요? 힌트를 하나 드릴까요? 1997년 외환공격에 사용됐던 코드 네임은 "여우 사냥(fox hunting)"이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1996년 일본에서 이 공격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미네르바가 올해 2월 시작될거라 경고한 "노란 토끼"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 공격이 내년으로 미뤄졌다고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요? 외환위기가 정말로 끝났다고 생각하시나요? ㅎ

정권 사모 펀드와 노란 토끼. 미네르바 사건이 조작된 이유는 이 둘을 감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 필명을 폄훼하기 위해서 동원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가 바로 박대성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 글쓰기를 하는 모든 이들을 짜집기 쟁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죠. 기획한 쪽에서는 일석이조라 생각했을 겁니다.

미네르바 사건의 조작에 참여한 곳은 여러 곳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들 중 어느 곳도 미네르바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모른채 조작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나름대로의 알리바이를 마련해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저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찌됐든 가장 변명할 여지가 없는 곳은 다음입니다. 포털 업체의 DB 조작은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될 수 없는 패륜이니까요.

한국 사회는 참 좁습니다. 그래서 조작이 쉽지만 걸리기도 쉽지요. 이 사회에서 지켜지는 비밀이란 없습니다.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1 - 다음커뮤니케이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주제의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조금 잠잠해진 미네르바 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검찰은 올해 1월 10일 박대성이라는 인물을 구속하면서 그가 아고라의 경제 논객 미네르바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박대성이라는 친구가 오는 7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하는군요. 그가 미국으로 도망가기 전에 제가 아는 이야기를 이곳에라도 풀어놓는게 맞을 듯 합니다.

박대성은 조작된 인물입니다. 그는 가짜 미네르바입니다.

많은 분들이 미네르바 사건을 작년의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하셨을 것입니다. 환율 예측을 귀신같이 맞춘다는 이야기 등이 많이 알려졌지요. 하지만 미네르바의 글은 분량도 많고 원래 글이 올라온 게시판에서도 모두 삭제돼, 그의 글 전체를 읽은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아고라 논객인 readme님이 미네르바의 전체 글을 댓글까지 포함해 복구해 놓으셨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invisible.economist.free.fr/dm/tabl_miva.htm

미네르바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부를 긴장시킨 글을 크게 두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포함한 정권 사모 펀드 계획 폭로, 둘째는 노란 토끼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IMF 고환율 시대에 미국에서 유학을 한터라 경제쪽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전공이 전공인지라 미국에 남았더라면 지금쯤 월가에서 파생상품 설계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대학교 동기들도 미국 금융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죠.

그 친구들 중에 뉴욕 메릴린치 본사의 전무이사인 녀석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서울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미네르바 글에서 읽은 이야기를 몇개 해주었더니 이 친구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제가 여러 수 가르쳐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검찰의 발표 덕분에,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에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인 박대성이 인터넷에 짜집기해 쓴 글 몇개 주워 읽은 저한테, 미국 메릴린치 본사의 가장 촉망받는 엘리트 중 한명이 형편없이 밀린 꼴이 돼버렸군요. ㅎ

박대성이 검찰에서 풀려난 직후 오마이TV와 한 인터뷰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59426

위의 인터뷰 중에 그는 머리속에 없는 내용을 계속 지어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어떤 몸짓과 언어 패턴을 보이는지 정도는 행동 심리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연구가 끝나 있습니다. 아니 이것 외에도 박대성이 가짜인 이유는 너무도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는 그가 구치소에 있을때 직접 면회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법정 증인으로 나선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일관했지요. 박대성은 고기능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입니다.

미네르바 사건은 여러 레이어가 깔린 무척이나 복잡한 사건입니다. 이번 글에서 저는 미네르바 사건이 한국의 인터넷에 던져주는 시사점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한국의 포털들을 어느 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정부에서 특정 사용자에 대한 신원 정보를 요청하면, 포털은 거부할까요? 아니면 적극적으로 협조할까요? 협조했다면 그런 사실을 사용자에게 알려주기는 할까요? 개인 이메일의 경우는 어떨까요?

최근 PD 수첩의 김은희 PD나 주경복 서울 교육감 후보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보듯이, 한국의 포털들은 개인의 이메일을 7년치 씩이나 정부에 제출하면서도 해당 개인에게는 공지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주경복 후보의 경우에는 당사자 뿐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 100여명의 이메일까지도 모두 건네졌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경악스런 상황이지요. 지각있는 사용자라면 누가 국내 업체가 제공하는 이메일 서비스를 사용하겠습니까? 실제로 제 주변에는 국내 이메일 서비스를 사용하는 지인이 거의 없습니다.

근데 이 정도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경우에 불과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한가지 이야기해 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박대성을 가짜라고 의심하면서도, 쉽게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흔히 기계적 증빙으로 이야기되는, 아이디/패스워드와 IP 주소 문제 때문입니다. 만약 박대성이 가짜 미네르바고 신동아에 글을 기고한 K가 진짜 미네르바라면, 어떻게 박대성의 변호인 측이 미네르바의 아고라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가? 왜 검찰은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단정짓고 구속했는가? 이런 의문점이 생깁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다음측에서 DB를 조작했기 때문입니다. DBA나 프로그래머 분들은 잘 아시죠. 이런 식으로 DB 데이터를 변경하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 작업인지를요. 간단한 일이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죠. 그건 범죄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인터넷을 파탄내는 패륜의 행위니까요.

박대성을 수사한 팀은 검찰의 마조부(마약/조직폭력 수사부)입니다. 다음이 마조부측에 미네르바의 신원 정보를 제출한 것은 2008년 12월 29일입니다. 다음은 마조부에 미네르바의 신원 정보를 건네주기 직전에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바꿔치기 했습니다. 12월 초만 하더라도 미네르바 필명의 주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요.

다음에서 작년 미국 소고기 반대 촛불 집회때 아고라인들의 신원 정보를 경찰에 무차별 제공할때도 저는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일임은 분명했지만, 제가 관여하는게 온당한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미네르바 사건의 조작은 인터넷에 글쓰기를 하는 모든 이들을 편집증적 짜집기 쟁이로 만들어 버렸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사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의 조작으로 인해 인지부조화의 고통에 시달렸는지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인터넷에 글쓰기를 하는 블로거로서, 그리고 인터넷에 애정을 가진 네티즌으로서, 저는 도저히 이번 미네르바 사건의 조작을 묵과하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기업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을 크게 넘어섰습니다.

이번 사건의 조작에 참여한 곳이 다음 하나만은 아니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다음입니다.

공권력과 포털에 의해 한국의 인터넷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네티즌들과 인터넷 업계의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야할 것입니다. 지식 사회가 숨을 헐떡거리는 대한민국에서, 희망은 이제 인터넷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연재] 프로그래밍 언어 이야기 1 - 베이직

198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이다. 동네에 컴퓨터 학원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나는 그곳에서 베이직(BASIC)을 처음 접했다. 개인용 컴퓨터는 아직 8비트 컴퓨터가 주류였고, 최소한의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하는 베이직이 널리 사용되던 시기였다. 당시의 내 컴퓨터는 애플 IIe였는데, 메모리 용량이 아마 64KB였을 것이다.

베이직의 가장 큰 특징은 행번호였다. 프로그래머가 소스코드를 작성하면서 행마다 직접 번호를 매겨줘야 했다. 행번호가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텍스트 편집기가 없어서 코드를 수정할 일이 생기면 특정 행을 새로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 10 PRINT "HELLO, WORLD"
] 20 END
] LIST
  10 PRINT "HELLO, WORLD"
  20 END
] 10 PRINT "HELLO, DAESAN"
] LIST
  10 PRINT "HELLO, DAESAN"
  20 END
] RUN
HELLO, DAESAN

당시 학원에서는 순서도(Flow Chart) 그리는걸 가르쳤는데, 소스코드 수정이 쉽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설계를 잘하라는 의미였던 듯 하다. ㅎ

행번호로는 아무 숫자(정수)나 사용할 수 있는데, 보통 10 단위로 사용하는게 관례였다. 만약 나중에 새로운 코드를 추가하려면 여유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행번호가 필요한 또다른 이유는 GOTO 문 때문이었다.

10 INPUT "ENTER A NUMBER", N
20 IF N = 1 THEN GOTO 40
30 IF N = 2 THEN GOTO 60
40 PRINT "YOU HAVE ENTERED ONE"
50 GOTO 70
60 PRINT "YOU HAVE ENTERED TWO"
70 END

위와 같이 GOTO 문에 의존해서 프로그램의 실행 플로우를 제어하는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을 "비구조적 프로그래밍"이라 부른다. 프로그래밍의 초창기에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GOTO 문을 지원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그 유명한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의 "위험한 GOTO 문(Go To Statement Considered Harmful)" 에세이이다.

베이직은 GOTO 문과 같이 거의 어셈블리어 수준의 로우레벨적인 특성과 초보자도 익힐 수 있는 하이레벨 언어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프로그래밍 언어였다. 어찌됐든 잘 설계된 언어는 아니었고 베이직에 노출된 프로그래머는 뇌가 영영 망가진다는 악담도 있었다. 다행히 이름이 "초보"를 연상시키는 베이직(BASIC)라서 마초 성향이 강한 프로그래머들로서는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울때 한 번 거쳐가는 언어인 경우가 많았다.

베이직은 이후에 텍스트 편집기 기능을 지원하는 GW 베이직,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리얼 베이직, GUI 프로그래밍을 지원하는 비주얼 베이직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오래하면 해야 할 일이 된다, 깊이 빠져들면 분명 나름의 틀이 생기고 그것이 짜증이 나지 않으려면 해야 할 일이 된다.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하다 보면 계속 되풀이되면서 하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금요일 밤의 어떤 깨달음,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연재] 프로그래밍 언어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왜 프로그래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기존의 언어에 뭔가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후퇴하는 듯도 보이지만 크게 보면 프로그래밍 언어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지난 20년간 내가 하나의 언어를 접하고 뭔가 아쉬운 점을 느끼고 또다른 언어를 찾아나섰던 반복의 과정을 한 번 회고해볼까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동시에 다른 이들과 담론을 나눌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1. 베이직
  2. 파스칼
  3. C++
  4. HTML
  5. XML
  6. C
  7. 자바
  8. 어셈블리어
  9. 해스켈
  10. 리스프
  11. PHP
  12. SQL
  13. CSS
  14. 애플스크립트
  15. 자바스크립트
  16. 액션스크립트
  17. Objective-C
  18. 스몰토크
  19. 루비
  20. 파이썬
  21. 얼랭

더 많이 못도와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사무실을 나서는 길이었다. 한 할머니가 거리에 서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어릴적에는 거지들에게 종종 돈을 건네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자주 마주치는 거지들에 나도 마음이 무뎌져 갔다. 구걸하는 장님들은 가짜라더라, 목이 좋은 곳에 있는 거지들은 한달에 몇백만원씩을 번다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며 냉소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손을 내미는 할머니를 얼핏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지나쳤다. 근데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흔히보는 거지의 모습이 아니라 애잔한 표정의 평범한 차림의 보통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지갑에서 오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 건넸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더 많이 못도와 드려서 죄송합니다."

고맙다고 손을 잡는 할머니의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왜 돈을 드리면서도 죄스런 마음이 들었을까? 왜 더 많은 돈을 선뜻 꺼내지 못했을까?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두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어딘가를 향한 분노의 마음도 잠깐 스쳤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 평범한 할머니가 어색한 구걸에 나선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분도 얼마나 당황스러우실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못쳐다봤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죄스런 마음이 아주 가시진 않았다.

심란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사업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엉뚱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돌아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