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1. 들어가면서

담담당당, 2009/11/20

입동이 지난 겨울이다. 작년 말과 금년 초 겨울이 깊어가는 때 시작된 ‘박대성 사건’ 이후 오늘까지 미네르바 사건은 여전히 아무런 이도 책임지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나 또한 지난 5월 이후 다른 일에 들어가면서 이 문제를 더 이상 깊이 다루지 않았다. 단지 내가 가진 사건 비망록 제 I 편을 공개했으므로 그 수준에서 모두 초보적인 수준의 평가는 가능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의 당사자인 박대성과 그 팀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 위장(僞裝)의 천재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이 사회가 가진 ‘네 박자’ 리듬 가운데 ‘우기기부터 물타기, 밀어붙이기, 몰아붙이기’를 고스란히 배워도 좋다고 생각했는지 그 태도를 전혀 바꾸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박대성이 미네르바 카페 운영자 ‘일심’을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했고, 김승민이 Makefile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시월(10월)에 벌어졌다. 이 현상을 지켜보려고 하던 차에 난데없이 미국 어딘가를 가서 ‘미국 부동산 시장’을 운운하는 박대성과 그 한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도 ‘미네르바 박대성’이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물론 주요 언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어색했다. 한국 사회의 사회지식이건 지식사회이건 명백하게 틀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고 내버려두는 묘한 방관적 심리를 엿볼 수 있어서였다.

거기다가 이상한 언론 플레이라고 할 수 있는 ‘신동아K’를 박대성이 고소한다든지 혹은 나를 지칭하지도 못하면서 ‘권모’라는 이름으로 흘린다든지 하는 웃기는 작태를 보았다. 나는 사실 괘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고는 있었다. 그 사이 다른 여러 처리할 일들이 있어 우선 순위에서는 한참 밀렸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여러 이들이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침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실상은 공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인간 관계란 그렇게 복잡한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도 남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配慮)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지 않고 나도 타인으로부터 배려 받기를 원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미뤄두었던 미네르바 사건의 어떤 상자-그것이 판도라 상자이건 무엇이건-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두 고소 사건이 영향을 미친 바가 가장 컸다. 저것은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그야말로 사건이었으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갈 지 모르는 ‘쇼’를 더 이상은 지켜보기가 우습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까? 아니다. 가만히 떠났으면 더 좋을 사람이 떠난다 말을 해놓고 정작 주저 앉아 머물면서 벌이는 좀 어설픈 쇼를 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냉소(冷笑)한다는 걸 아직도 못 읽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대놓고 이런 판을 즐기는 건지 모를 일들이 벌어진다. 너무 질(質)이 낮다. 논란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그저 보고만 있는 사회가 더 우습게 여겨져서 그렇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미리 몇 가지를 밝혀 둔다.

  1. 이 연재 글이 끝나고 나서 나는 지난 5월 중순까지 썼던 비망록의 나머지 부분(제 II 편~제 VI 편)을 모두 공개하겠다. 그 안에는 이니셜이 아닌 본명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부분은 모두 당시 그대로 들어있다.
  2. 신동아K이건 아고라 최씨, 그리고 이진수의 ‘K’, 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혼자서는 생각하는 나머지 관련자들은 부탁하건대 미리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나는 저 기록들에서도 실명과 관련자료를 모두 첨부하고 있지만 저 기록 이후, 즉, 5월 이후의 기록들이 정리되는 속에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니까 말이다. 그건 다시 정리해서 공개하려고 하니까.
  3. 알바나 알밥들의 일부도 실명이 모두 들어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밝힌 것도 있고 찾아낸 것도 있다. 20대, 30대, 심지어 40대 이상도 있는 듯 하지만 살아온 날이 어떻건 간에 왜 그랬는가에 대한 인지부조화는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공모(共謀)라는 관점 속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인지부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밝혀진 사실마저도 부인하거나 혹은 우기는 방식이라면 이것은 이미 일반적인 ‘표현’과는 다른 것이니까.
  4. 더불어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음 아고라의 스타일에서 하단부에 달리는 덧글, 댓글, 혹은 새로운 글 가운데서 형법이 정한 명예훼손 혹은 모욕, 기타의 관련되는 것들에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에 따른 사법적 조치를 의뢰할 것이다. 나와 대질을 하면서 서로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지난 이야기를 해볼 기회는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당연히 모두 그 후속으로 공개하겠다. 이것은 이진법으로부터 출발해서 십진법으로 연결된 모든 잘못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져야겠지만, 함부로 손가락을 놀린 죄값도 적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쓰고 나서 지울 댓글이라면 아예 쓰지 말기를 바란다. 아주 유치한 형태의 댓글 놀음도 있었다는 것을 자주 기억한다. 쓰고 지우고 아래 사람의 댓글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게시판은 아무리 봐도 보기에 흉하다. 그리고 행여나 국가 혹은 정부, 정치세력, 정권 등을 겨냥한 것과 자신의 글을 비교해서 왜 이진법의 표현자유가 없는가 라고는 말하지 말라. 본디 ‘그들’은 명예가 없다. 모두 국민과 사회에 대해 섬겨야 하는 종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자연인 개인 한 사람으로써 들어오는 모든 무례함과 온당하지 못함에 대해서는 하나씩 그들을 찾아달라고 요청하여 아마 경찰이건 혹은 법정이건 어디에서건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벌금형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정식 재판은 여하하건 모두 청구할 것이다.
  5. 글을 읽으시거나 읽지 않으시거나 간에 이 글은 이진법 내에 그대로 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단 한 번도 지워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그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떤 이처럼 비 오는 날 멜랑꼬리해서 글 다 지웠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부터 쓰는 글도 작년 11월 20일부터 아고라 글쓰기를 시작했던 원칙과 마찬가지로 절대 지우지 않을 것이니 찬찬히 한 번은 꼭 읽어주시길 바란다.
  6. 앞서도 언급했지만 비망록 속에서 이름이 그대로 공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쓸 기록에서도 이니셜 같은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쓸 것이다. 물론 연재를 이어나가야 하니 문맥으로 이어져 나중에서야 밝혀지는 이름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라면 그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당연히 비망록 제 I 편도 여러 이름들도 지웠고 많은 내용도 삭제했었지만 그 내용들도 이 글 속에서는 포함하기로 한다.
  7. 이 글을 읽으시면서 참고하실 글은 꽤 된다. 그 중 내가 기 공개한 비망록 제 I 편 정도는 읽으시고 토론에 참여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 그마저 읽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건 ‘당사자’가 아니면서 함부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의 실질적인 당사자이기에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를 회피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진법 내에서 벌어진 일을 이진법에 들어와서 한 자도 표현하지 못하고 의문과 질의 자체를 해명하지도 못할 실력으로 ‘내가 누구요!’라고 공허한 목소리를 더 이상은 내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스운 일의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아주 지독스런 사회 부조리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즐겁게는 보시기 어려울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숱하게 올라오는 많은 글들 가운데 그저 작년 여기로부터 시작되었던 ‘의견의 향연(饗宴)’에서 벌어진 일들의 잔재 혹은 잔재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고 보시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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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