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7. 포털 ‘다음’,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만든 죄를 고백해야!

담담당당, 2009/11/23

인터넷 포털 서비스 업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번 사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포털 ‘다음’이다. 사실상 이곳에서 ‘박대성=미네르바’를 만들어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임을 피할 길은 없게 보인다. 당사자로 지목되며 책임지는 건 ‘불가피’(不可避)하다.

그 일을 했던 사람 중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것이 바로 ‘정지은’ 홍보팀장이다. 그녀는 여러 관련자들과 적극적으로 전화 통화까지 했다. 당연히 그녀의 역할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답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스스로 ‘내용 파악이 안된 하수인’ 수준으로 말하는 것일까? 그럼 누가 그것을 아는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752950

왜 대답하지 못할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침묵’도 하나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것이 ‘다음’의 입장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책임 당사자다. 그들 다음 관계자의 여러 발언으로 인해 실제로 검찰은 바보가 되었다. 전화 번호까지 번연히 있는 체포 대상자를 찾아서 PC방을 몇 날 며칠 헤맨 끝에 억지로 잡은 무능한 수사력을 만천하에 내보였으니까 말이다. 그 전화번호도 작년 9월 시점에 이미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대로 따지면 장장 4개월이다. 100날이 넘는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다. 검찰의 수사관행을 다 따져봐도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자료 주면 바로 쳐들어가서 체포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검찰이 다음의 서버 정도는 압수수색을 해야 할 판이다. 속칭 ‘엿 먹였잖는가!’ 말이다. 완벽하게!

작년 9월 시점에서 포털 다음이 박대성에게 여러 언론사에 인터뷰 하라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제 와서 그걸 전혀 그런 말 하지 않았느니 하면서 부인할 수가 없다. 그 여러 언론사는 어디인가? 흥미롭게도 신동아도 그 즈음 인터뷰 요청을 (다음 측에) 했다고 말했다가 그 쪽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난 다음 말을 살짝 바꾼 대목이다. ‘신동아는 없었다. 다른 언론사는 있다’는 바로 그 장면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장면을 그려보면 나는 얼굴이 벌개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 포털 다음의 정지은 팀장이나 CBS의 관련 데스크와 통화한 기자들도 현직에 그대로 있다.

나는 지난 연재글에서도 밝힌 바가 있다. 다음 측이 대답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것이 있음에도 대답하지 않는 것들이다. 대답하지 않을 권리, 침묵할 권리가 다음에 있는가? 없다. 그냥 깔아 뭉개면 끝나는가?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아주 간단한 상식이 여기에 하나 적용된다.

침묵은 곧 완벽한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보라. 그러나 먼저 질의한 내용에 관한 사실관계는 명확히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우리(다음) DB에서 미네르바는 박대성이 옳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시간에 나오는 ‘문장읽기’ 수준이다. 배운 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포털 관리자 수준에서 말하는 도리는 아니다. 질문이 있었으니 대답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대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 시인(是認)으로 취급된다는 것쯤은 상식적인 것이다. 상대하기 싫어서? 그건 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비판은 더 날카롭게 들어갈 것이고 그 비판의 모든 기록이 모여서 홍수가 나는 날은 오게 되어 있다. 그냥 이른바 속칭 ‘생까기’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너’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답할 말에 대답 없는 너’는 아무리 봐도 침묵할 자격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포털 다음은 그래서 침묵할 자격을 잃었다. 단순히 하나의 회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는 ‘왜 그렇게 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란 것은 여태 ‘다음’을 향해 나갔던 발화(發話)된 상태로 남아있는 질문들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대답해야 한다.

내게 대답해주기 싫은가? 그렇다면 모두에게 질문에 관한 의견 혹은 답변을 공지사항으로 띄우기라도 해야 옳다. 작년 촛불민심에서 ‘아고라’는 하나의 소통 통로였다. 그것을 싫어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이진법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는 데 이의를 걸 사람은 많지 않다. 정화(淨化)를 거치는 과정에 있는 혼잡함을 욕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탄생된 하나의 신드롬 혹은 현상, 그리고 사건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그를 정리하지 않고 지나가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운 것인가?

나는 포털 다음에 질의한 나의 개인적인 글이 결코 개인 차원의 의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공식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여기 포털의 참여자 자격이란 격(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 시점에서는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포털의 위치, 인터넷 공간의 자유와 관리, 통제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대답을 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문제는 계속 질문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침묵이란 언어는 여기서는 ‘모든 것을 시인합니다’라는 단어로 완벽하게 의역(意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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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