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1/24
신동아K의 인터뷰가 나가던 날 저녁부터 사실상 신동아 2월호의 편집권을 쥔 것은 동아일보 본사였다. 그들은 그것을 편집국, 출판국이란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사로써의 동아일보사가 존재한다. 회사 경영진, 경영기구인 셈이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파헤쳐 가면서 전개해보도록 한다. 그 시점에서 아주 중요한 다른 ‘팩트’ 하나가 등장한다.
박대성을 체포한 상태에서 검찰은 여러 각도에서 전전긍긍했다. 문제가 되었던 2개의 글 (7월 30일자, 12월 29일자)은 최소한 박대성, 그가 쓴 것이라는 주장을 펴야 하는데 만일 신동아K가 그것마저 자신이 쓴 것이라고 해버리면 이건 박대성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결과는? 아주 교묘한 복합 구도가 나타나 버렸다. 그 글은 신동아K도 12월 29일자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고 한 대목을 부각시켜서 검찰은 18일 책이 나간 이후 공세적인 입장으로 전환을 한다. 7월의 문제된 글도 슬그머니 감추어지기도 했다. ‘긴급 공문 제1호’만 부각을 시키는 식이었다. 적어도 검찰이 기소의 대상으로 삼은 ‘허위사실 유포’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간 셈이다. 아고라에서는 결국 담합을 했다는 식의 추측들이 난무했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건 언론의 도덕성과 관련되는 문제이니 하나씩 되짚어 가면서 따져볼 일이다. 이 또한 뒷부분에서 자세히 다룬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다른 것이다. 바로 <저작권>과 관련된 것이다. 그것으로 누군가를 고소했다고 하니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박대성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따지면 나는 ‘없다’ 쪽에 명확한 방점을 둔다. 가짜 홍길동이기 때문이라는 절대적 이유를 꺼내지 않고, 현실 속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서도 그렇게 구도가 잡혀 있다. 왜냐하면 속칭 ‘검찰 미네르바’인 ‘박대성’이 검찰을 통해 인정 받은 것도 딱 그 두 개의 글에 관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드러났다. 글을 몇 개나 올렸나 하는 질문에 박대성의 답은 오락가락 수준이 아니었다. 최초에는 100개도 나왔다. 정말 그런가?
다시 한 번 http://invisible.economist.free.fr/dm 을 방문해서 그 글들을 자세히 보길 바란다. 만일 readme님에 의해 잃어 버렸던 ‘미네르바’ 필명의 글들이 복원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확한 글의 숫자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프로파일 키값을 통해서 첫 글이 언제 시작 되었는지 까지 새롭게 밝혀진 부분들도 많다. 그 점에서 박대성에 관하여 검찰은 첫 글도, 글의 개수도 또한 글이 가지고 있는 내용, 의미는 물론이고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권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저작자’(著作者) 자체를 입증하지 못했다. 만일 복원되지 않았다면 그 이상한 글들을 주워서 만든 ‘블로그’라는 형태로 해서 미네르바의 글이라면서 자기 글처럼 꿰어 맞출 생각이었던가? ‘고마움’도 모르고 그 분에게까지 저작권을 운운하며 고발장을 들이민 자의 얼굴이 두껍기 너무 그지 없다. 그에 다른 이들까지 건드리려고 안달 난 모습에서는 치미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을 정도다.
그것이 바로 ‘저작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논란의 핵심이 된다.
우리는 이진법의 글에 관한 저작권을 말하고 지금은 그러한 조치들을 포털에서도 적극적으로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십진법의 글을 이진법에서 함부로 사용하는 행위에 관해서는 적용이 될 수 있으나 이진법 내에 모든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한 글에까지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다. 저작권이 걸릴 만큼의 장기적인 레이스로 이진법에서 필담을 즐기기 위한 그런 수준의 ‘논객’이 많이 등장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또한 그들이 굳이 이진법에 글을 쓰고 나서 심지어 십진법에 책을 내는 것은 이진법의 글을 일정한 광고적 개념으로, 혹은 홍보의 수단으로 여긴다는 각도에서 보자면 이건 무료로 이미 끄집어 내어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온라인의 화면 활자와 책으로 된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박대성은 ‘저작권’을 주장했다. 그가 직접 주장하고 법리 조치를 했는가? 모를 일이다. 지금도 대리인은 횡행(橫行)하지만 정작 그는 그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미 집사처럼 매니저처럼 활동하고 있는가?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놓친 부분이 있다. 바로 지난 1월 17일과 18일 새벽을 거치면서 – 사실 신동아 2월호는 다른 때와 비교하면 거의 하루 늦게 나온 셈이나 다름없었다 – 검찰과 신동아는 ‘박대성’의 정체성에 관한 조율을 거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떤 이들이 자신을 포장해주고 그걸 나 몰라라 한다는 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대목이다. 꼭 어떤 엉성한 연극판을 보는 것 같다는 게 이런 심정일 터이다.
저작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박대성의 저작권은 없다. 검찰이 주장한 것은 딱 두 가지 글에 대한 그의 글이 범죄요건이 되어 기소 한다는 사실이었을 뿐이었다. 그 자신도 자기가 몇 편 쓴 건지도 몰랐던 글, 자기가 쓴 글들을 다시 제 손으로 모을 재간도 없었던 글-실제 그의 글이 아니니까-에 대해 저작권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성립되는가? 그 밖에도 이유가 많다. 그래서 미네르바 카페지기 ‘일심’에 대한 저작권 위반 운운 하며 보낸 그 이메일을 찾아서 다시 보면서 이게 도대체 뭘 하자는 짓인지 분개(憤慨)했던 것이다.
이해되는가? 누군가에게 묻는다. 이해 안 되면 그 피소된 당사자가 정식 재판까지 하자고 하는 판이니 해보면 나는 100%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이 아니라 진위여부를 그 자리에서 하나씩 따져보기로 하자. 이건 공개 토론회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미네르바’를 경제언어로만 보자는 건 아니니까. ‘미네르바’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가보는 작업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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