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1/24
http://blog.daesan.com/2009/08/13/minerva-9-chosun-kimyeonguang
내가 겪었던 일들을 makefile님이 거꾸로 너무 잘 정리해서 의아할 정도였다. 비망록 제 I 편에 그 내용이 나름대로는 자세히 실려 있으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그들이 주장하는 바 기사를 보면 그 내용은 쉽게 모순이 파악되니까. 그건 엉성한 시나리오로 의도된 조작이었다. 이 또한 상세히 뒤에서 다시 따져볼 것이다.
나와 월간조선은 인연이 꽤 길다. 한 평생 많이 찍지도 않는 사진을 거기에 많이 싣기도 했으니까 제법 서로 좋았던 연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06년 10월 핵실험이 터진 이후 서울은 평양과의 연결라인이 전면 단절되는 상태를 겪었다. 그 시기, 내가 그 연계망을 잇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나 이외의 할 수 있는 당사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순전히 한반도 최초의 핵실험이라는 대사건 이후 처리 과정에서 남북한의 미래와 관련된 내 의견을 남북 양측이 동시에 들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사실 당시로만 본다면 역사 이래 처음 내린다는 핵 분진에 우왕좌왕 하던 남북한 모두에 사는 사람들은 나로 인해 크게 빚진 것이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 해 12월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평양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 일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정치적으로 다시 변형되었고 변질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적 화장질의 시스템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나의 소신을 밝힌 이후 나는 월간조선과도 수십 페이지짜리 장문의 인터뷰를 했었다. 합쳐서 약 30시간이 훨씬 넘었던 직접 인터뷰였으니 그 양도 꽤 되었던 듯하다.
그 이후 나는 거기에 소속된 이들과 개인적인 친밀한 수준의 인연을 유지했다. 선후배가 되기도 형 동생이 되기도 했고, 서로 특별한 일은 없어도 서울에 돌아오면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에 내가 월간조선이라는 매체를 통해 도움 받을 일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의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을까.
미네르바 사건에 지난 1월 시점이라는 바로 그 시기에 왜 월간조선이 끼어 들었을까?
나는 아직도 이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댄다. 신동아라는 매체와의 경쟁적 관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척 단순한 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편집장이 김연광에서 김용삼으로 바뀐 이후 벌어진 일이지만 이 사건에 김연광은 너무도 깊숙하게 관련자가 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구라’ 치고 바람잡고 그런 역할을 다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 일을 모른다고 나중에는 꼬리를 말았다. 월간조선은 아예 타켓을 나로 해서 그냥 들어왔고, 기사 가운데 상당 부분은 ‘완전한 거짓말’, 그러니까 아예 없는 말 만들기라는 언론도 아닌 짓을 했다. 그 일 전체에 내가 그래도 인간적 정리(情理)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버젓하게 끼어 있다는 점은 경악할 일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완벽하게 한 팀이 된 당사자들이었다. 나는 생각해본다. 그 정도였던가? 이 사건이?
그리고는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생겨났다. 그것도 꽤 생각해본 끝에 나온 것이기는 했다. 그 정도였는가 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 말이다.
작년 11월 20일부터 시작한 다음 아고라 글쓰기도 그 일환이기는 했지만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새롭게 형성된 ‘21세기 친일’에 관한 경고의 글을 그 이전에 미리 썼던 바가 있다. 그것은 일련의 아주 길고 험한 작업이었다. 그로 인해 도대체 몇 날밤을 새웠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여하튼 정리는 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민족주의자의 시대읽기>다. 시리즈 합본의 형태이고 그 속에는 한국 사회가 처한 침탈 받기 좋은 구도와 기득권의 친일적 맹동성(盲動性)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조선일보로 지칭되는 언론 카르텔의 수위를 차지하던 곳은 당연히 예외가 없이 그 묘한 스탠스의 핵심부로 정리해두었다.
개인적인 친소(親疎)와 그들 조직의 논리는 달랐다는 의미가 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조선일보사라는 회사가 더 중요했는지 모르나 내게는 이 시대가 더 가치를 가진다. 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나는 그 글들을 썼고 그것은 그들과의 분쟁(紛爭)을 내가 먼저 시작했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면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거짓이라는 증거를 꺼내보면 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내가 주장하고 정리한 바로 ‘그 글’ 속의 바로 그러한 ‘개체’임이 더욱 더 확실해졌다고 여긴다.
나는 그저 일개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경험과 인지를 모두 종합해서 ‘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미네르바 사건’이라는 아주 교묘한 트랩과 프레임을 만드는데 활용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허위를 만들어낸 언론이란 그 자체로 ‘말 길’을 유지하는 존재가치를 가지기 어렵다. 의도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월간조선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냥 폐간하는 것이 이 사회를 위해서도 합당한 도리(道理)라 여긴다. 왜냐하면 이건 공정성 문제가 아니라 그 전체가 조작에 참여한 당사자이고 보면 그를 ‘언론’(言論)이라 보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우리 사회의 페이퍼 언론 매체는 판매부수로 먹고 살지는 않는다. 광고니 혹은 적절한 형태의 사이드 결합을 한다. 작년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의 광고물을 수주하는 작업까지도 많이 했다. 경제사정이 나빠지니 온갖 생존방법이 나온다. 물론 적절하게 부수 확장시기가 되면 이 기업, 저 단체에, 그런 저런 개인들에게 부탁을 하는 사실상 강매도 한다. 그러니까 언론이 아니라 그냥 출판을 하는 비즈니스이긴 한데 실제로는 그걸 위해 기사를 쓰는, 사악한 접근법이 나오게 되는 셈이다. 여전히 그렇다고 본다.
아마도 그 구도에서 페이퍼 매체의 영역을 확 갉아 먹는, 어쩌면 자신들의 영역 자체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반 조선일보 성향을 띤 이진법의 토론이나 비판, 비난이 싫으니 그들도 ‘찌질이 론’에 동참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앞서 언급된 저 이유와 함께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박대성 미네르바 만들기 동참의 부탁 혹은 연계가 있었다는 것이 더 적절한 이유가 될 것이다.
다 좋은 일이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면 무슨 짓을 못하겠냐는 논리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에서 두 가지는 확실히 증명되었다. 첫째, 대한민국의 언론은 ‘말 길’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아성 쌓기에만 골몰할 뿐이다. 언론이 아닌 것이고 조선일보사는 확실히 그렇다는 걸 자체 증명했다. 둘째, 사람 간 즉, 인간(人間)의 정리라는 것도 그런 속에서는 다 부질없게 될 수 있다는 냉혹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간 함께 마셨던 술을 모두 입이건 코건 구멍이 뚫린 모든 곳으로부터 게워내고 싶은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 이후에도 직접이건 간접이건-사실 직접이 아니면 의미도 없지만-일언반구 사과도 없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권력자로 생각한다. 권력이라! 그게 자신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가! 한비자(韓非子)의 경구(警句) 하나 붙이고 돌아다니는 어느 항공사의 리무진을 볼 기회가 있으면 내가 지금 하는 말의 의미가 생각이 날 것이다.
“國無常强無常弱”
‘영원히 강한 나라도 없고,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는 말이다.
저기 ‘나라’(國)라는 자리에 ‘사람’(人)을 넣어보면 새로운 해석 하나가 등장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때로 인생이 허망하다 여겨지기도 한다. 사람의 밑바닥에 수만 겹의 바닥을 다시 깔아두는 본질에 대한 생각까지 더해지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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