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07
미네르바의 글을 읽다 보면 몇 군데의 <변곡점>이 나온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공백(空白)기간은 9월 18일 이후 10월 2일까지 두 주일 동안이다. 그러니까 10월 2일부터 ‘고구마 파는 늙은이’라는 이른바 ‘할배’, ‘고구마 할배’의 글이 시작된다. 그것은 ‘늙은이가’ 혹은 ‘노인네가’라는 말로 후렴 서명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붉은 글씨로 ‘쉿~ 침묵은 금이다!’도 나오고 ‘크릉’의 후렴구도 나오기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글을 올리고 나서 지우고 해서-9월 18일 글에서 그 이전 세 차례 지웠다는 걸 밝혔다-이 흐름 자체가 잘 눈에 띄질 않았지만 그 이후 쭉 ‘할배’라는 애칭은 미네르바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상징하게 된다. ‘리먼K’의 냉철할 정도의 지적과는 다른 따뜻한 모습도 더 강해졌다.
9월 18일에 올린 두 편의 글이 있다.
10년 후에 뵙겠습니다.
http://invisible.economist.free.fr/dm/miva/D115_272449.htm
마지막으로 꼭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게 한가지 있는데..
http://invisible.economist.free.fr/dm/miva/D115_272562.htm
그리고 2주일이 지난 10월 2일 첫 글이.. ‘작전명; 여우 사냥’이다.
http://invisible.economist.free.fr/dm/miva/D115_287105.htm
여기서부터 ‘고구마 파는 늙은이’가 등장한다. ‘늙은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할배’를 그리고 고구마를 붙여서 ‘고구마 할배’,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줄여서 ‘미넬할배’로 불리는 애칭들이 등장했던 셈이다. 미네르바의 글은 하루에 올라오는 글의 숫자가 점점 높아졌다 줄어드는 형식을 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스칼레이팅 시키는 셈인데, 9월 18일 절필을 할 때까지를 보면 9월 15일 8편, 16일 13편, 17일 9편이나 썼다. 그리고 9월 18일 2편을 남기고 글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미네르바’라고 하면 두 가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예측하고 그를 아주 철저하게 경고했던 바로 그 리먼 미네르바가 있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파는 늙은이로부터 시작한 고구마 미네르바가 있다. 이들이 글을 쓰는 패턴은 확실히 다르다. 관점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글을 쓰는 형식이나 패턴, 정보량, 중점 포커스 등 여러 각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7월~9월까지 아주 압축적으로 여러 온타임 정보로 공개된다. 10월 이후의 글에서는 예측보다는 토로, 그리고 이른바 극사실주의 보다는 서민들의 경제현실에의 대비를 거론하는 애정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것이 바로 ‘통화스왑’이란 것이다. 9월 이전 미네르바가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가진 의미, 그것을 ‘정권ATM기기’라는 관점에 초점을 두고 글을 썼다면 10월부터는 금융위기가 실질적으로 한국 외환시장에 반드시 해외 통화스왑이라는 형태로, 또 통화스왑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경제와의 종속적 관계를 형성하는 부분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노란토끼’였다. 그로 상징되는 단어는 ‘미자’, ‘최미자’로 이어지고 10월 말에는 그의 사설 단체 혹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11’(일레븐클럽)이라는 토론회까지도 거론된다.
그래서 바로 이 지점을 나누어서 전자를 ‘리먼K’로 후자를 ‘고구마K’로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리먼 파산 이후 리먼 브라더스를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것 자체를 비판이 아니라 거의 악담을 퍼부었던 미네르바는 이 문제를 다시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는다. 딱 한 차례 재 거론 하는 대목-리먼의 파생부실 규모에 관하여-은 있었지만. 즉, 자신의 담론(談論) 가운데 가장 커다란 이슈에 속했던 ‘정권사모펀드’라는 개념 자체를 10월부터는 연계해서 언급하지 않는 기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이슈 몰이를 했던 글쓰기에서 본다면 의외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필자가 바뀌었다면 그 또한 쉽게 이해가 된다.
9월 18일부터 10월 2일까지 이르는 딱 두 주일 사이 과연 그들 그룹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글을 쓴 대표격으로 볼 수 있는 두 사람 이외에도 몇 사람의 주도적이지는 않으나 글쓴이들의 패턴도 그 내부에 들어있는 건 사실이다. 거기까지 들어가면 복잡해지니 일단 두 사람을 꺼내놓고 봐도 그들 그룹은 9월 이전과 10월 이후가 달라져 있다는 점으로부터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원, 즉, 미네르바 그룹에 관한 이야기는 10월 9일의 글 ‘솔직히 충격적이다’라는 곳에서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구성원 혹은 시스템까지도 거기서 일정 부분 드러난다.
늙은이들끼리 단체 회식이라고 싸그리 장사 일찍 끝내고 갔더니 새벽에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이냐.
박스 줍는 김씨..철물점 하는 노인네에 고구마 장사하는 나하고 노인네들이 모여서 블름버그 보면서 병맥까다가 소주 한 두 병 마시니까 갑자기 떡하고 나오네..
그 순간 가계 전체가 침묵…… 초토화..
옆집 최씨 노인네가 조직원들 비상소집 하더라고.
난 바로 문제 오데?...그래서 뭘 어.쩌.라.고..바로 전화해서 뭐라고 막 씨부려 싸고.
결국 이들이 가진 정보 연대성이란 부분에서 결코 한 인물이 아니라 서로 간에 아주 긴밀하게 주고 받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저 비상소집에서도 보듯이 ‘그들끼리의 현업(사업)’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해서 볼 점은 바로 ‘최씨’가 비상소집의 주체라는 점이다. 10월의 ‘고구마K’는 이 ‘최씨’의 손에서 늘 장악되어 있던 존재이기도 했다. 그의 통제 하에서 움직인 글쓰기, 그것을 모른다면 이 부분을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안되겠다..최씨 노인네가 불러서 이만 가봐야겠다…이제 고기 썰어서 다 구웠나보다. 오늘도 가서 한 잔 퍼마셔야겠어..
- ‘사채업의 진실’ 중에서, 2008년 10월 22일
11월 13일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올라온다. 이 글을 유의해서 보지 않으면 그 이후 미네르바 그룹 내부의 갈등 혹은 갈등구조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11월 4일 이후 근 열흘 만에 처음 올라왔던 글이기도 했다. 그 중의 일부를 인용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2진수의 01001011’이 나온다. 박대성은 이 숫자의 의미 자체를 몰랐다. 그런 그가 이런 미네르바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글에는 나쁘건 좋건 ‘추억’이 있다. 그걸 기억으로 재생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그 글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난 경제적 이야기를 쓰면...... 안 된다....
그건 국가가 침묵을 명령 했기 때문이다.....따라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부분은 일체 쓰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내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다. 그리고 찾을 필요도 없다.
그 모든 것은 무의미 한 행동들이며 이제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하는 늙은이인데다가 자칫 그런 행동들이 사회 혼란 야기 목적의 위험한 행동들로 보일 수 있기 떄문이다.
나에 대한건 처음부터 철저하게 머리 속에서 지워야 한다.
(중략)
닌 여기서 글을 쓰지만 난 " 미네르바 " 라는 아이디를 가진 정보량 2 진수의 01001011 의 그냥 단순 데이터일 뿐이다.
(중략)
난 별로 이름 팔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얼굴이 왜 궁금한지 그것도 난 이해를 못하겠다..그리고 그냥 이제 나이 먹어서 병원에서 요양 치료나 하는 늙은이에다가.. 의사가 지금은 잔소리 하는 마누라나 마찬가지다.
나에 대한 걸 궁금해 하지 말고........ 이 글을 보는 " 나 "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이라는것 부터 일단 시작해라....
(중략)
그리고 난...............이제 부터는 경제에 대한건 단 한 마디도 말하면 안 돼...
이런 점들을 유의해서 잘 생각을 해 보렴......난 이제 시어머니가 불러서 가 봐야겠다....
간호사가 시어머니 보다 더.............
잔소리가 심하구나............아 ..진짜... 그만 하라는구나.... 이제 치료 때문에 당분간 못 온다..
중요한 것은 그가 11월 13일 그 시점 무렵(11월 초부터 그 때까지)에서는 실질적으로 ‘경제에 대한 글을 못쓰는’ 강한 압박을 ‘어딘가로부터’ 받고 있었던 상태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 형태로 그에게 전달된 협박이나 압력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연히 국가기관 혹은 그에 속한 인물에 의한 것도 포함된다. 직간접 모두에서 들어오는 이 압력의 실체로 인해 내부적인 갈등은 증폭된다. 대처 방안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했다.
과연 이 시점에 정권세력 가운데 누가 그에게 압력을 가한 것일까? 그들은 어떤 경로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일까? 가장 유용한 수단은 이메일이다. 그것은 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손쉽게 글쓴이에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글과 관련된 쪽지도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9월 이전 단계에서는 미네르바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언급된 적이 없었다. 글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부터다. 그러니까 이 아이디 계정을 가지고 관리한 측이 직간접의 협박이나 압박을 받은 것은 10월 말경~11월 초 시점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10월과 11월을 포함해서 미네르바 필명의 절필이 장기간 이루어진 시기는 10.10~10.19, 그리고 11.4~11.13 기간을 꼽을 수 있다. 둘 다 거의 열흘에 가까운 시간적으로도 일정한 패턴이었다.
그러나 후자는 매우 중요하다. 11월 초 시점 정부는 미네르바 필명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운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월 4일의 글 ‘이젠 하루 빨리 눈을 떠야 한다..시간이 없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술 먹으면 쓴다……집에는 컴퓨터가 이젠 없다……
컴퓨터가 없다? 이 부분을 아주 잘 생각해봐야 한다. 10월 31일 ‘내일 손자가 컴퓨터를 가지러 온다’는 글 직후의 내용이다. 그리고 약 열흘이 지난 11월 13일, ‘이제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는 글이 올라왔고 이런 글을 내뱉는다.
오늘 하루 벌어지는 걸 잘 봤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
‘고구마K’는 이로써 미네르바 사건의 사후 처리반이 된다. 그렇게 돌변되면서 그가 독자적인 결정 하나를 내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신동아 기고였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최씨’-최씨 노인네, 옆집 최씨 노인네, 아고라 최씨-가 개입되게 된다. 이 부분 뒤에서 빠르게 접근해보고 지나가도록 한다.
-----
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