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07
다음 내부에 있는 이러한 흐름에서 ‘석종훈-정지은’으로 이어진 콤비네이션에 해당 기술진이 그에 들어갔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일단 이 두 사람의 관계로부터 ‘곡마단’은 탄생한다. 그 이름을 ‘검찰 미네르바’로 부르기도 하고, 혹은 이제는 ‘박대성-김승민 콤비’, 어떤 이들은 합쳐서 ‘박찬종 패밀리’라 하기도 한다. 다 각각 이름이 붙게 된 사연과 이유는 있다. 나는 ‘곡마단’이라고 부른다.
그 이전에 ‘다음’으로부터 출발된 고리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를 살펴보는데 한 사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청와대 소통비서관이란 직책을 가진 ‘김철균’이다. 당초 박대성을 끄집어내게 된 기획의 제공자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털의 생리를 워낙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미네르바 필명의 사건이 2008년의 촛불, 집단지성,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해서 ‘소통의 문제’로 불길처럼 타오르는 때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게 이른바 2008년판 ‘소통’의 진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리먼 브라더스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하는 걸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던 미네르바가 마침내 이에 성공까지 하게 되면서 국민소통 비서관이라는 실제로는 포털 이진법을 통제해야 하는 임무에 있던 그 자리 자체가 휘청거리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이 시점에서 김철균-석종훈으로 이어진 콤비 플레이가 형성된다. 그 업계에서 자자하게 유명한 ‘사우나 회동’이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한 쪽은 정권사모펀드, 정권ATM기기 만들기라는 정권 비자금을 거론하고 있는 이진법의 비판을 뿌리 채 죽여야만 하고,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고라의 반란(反亂)’으로 인하여 정권 눈치보기에 급급한데다가 그로 인해 파생된 세무조사 등 강력한 물리적 압박까지 진행되려는 판에 어떻게든 이를 무마해야 하는 ‘조건 없는 충성의 척도’ 하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둘의 이해 관계는 쉽게 결합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1월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만들어내는 기계적 증빙의 조작, 즉, 곡마단 설계자의 자리를 맡게 된다. 물론 그 이전까지 있었던 여러 모순된 상황들도 이렇게 함으로써 모두 덮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포털 관리자인 다음이 ‘맞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치고 들어올 자는 없을 거라는 오판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문제는 바로 신동아K로 불리는 김재식을 제거하는 문제였는데, 이 또한 관리자인 포털 다음이 백업 개런티를 하는 방식이라면 최소한 박대성이 미네르바 필명의 아이디, 패스워드의 소유주이고 그가 글을 쓴 당사자인지 아닌지 관계없이 회원정보 데이터에서만 그렇게 변환을 한다고 해서 나중에 문제가 될 요소는 없었다. 이 결합에서 엉뚱한 모순이 발생하지만 그 또한 다른 쪽에서 능히 소화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던 셈이다. 그건 아이디의 원 주인이 김재식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미네르바는 ‘리먼K’로부터 ‘고구마K’까지 이르는 일정한 변환 모드가 있었으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은 완벽하게 곡마단의 거소(居所)를 만들어준 것이 된다.
그 다음은 후처리 전담반의 문제였다. 이른바 ‘검찰 미네르바’로 불린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검찰은 PC방을 뒤져서 박대성을 찾기도 하는 등 평창동 집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이 아주 짧았지만 행동양식으로는 모든 것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압축적인 것이었다. 실상은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기계적 증빙은 다음에서 제공 받았고, 그러니 7월 30일, 12월 29일 글로 전기통신기본법이란 걸 적용하는데 골몰하기만 하면 된 셈이다. 그냥 바빴다는 흉내를 내긴 했는데 그것이 IT적이지는 분명 않았다. 그래서 그 속에도 모순이 첩첩 쌓이게 되었다.
사건 초기 경제분석이라고 A4 2장 정도만 꺼내면 ‘엇비슷하기만 해도 진위여부는 논란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대단히 안일하게 생각했고, 이미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잡아들인 상태에서 신동아K도 1월 시점에서 인터뷰에 나타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상할 정도로 확신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A4 2장짜리 경제예측이란 건 지금 봐도 정말 엉터리다. 그것도 미네르바 계정으로 온라인에 올린 것도 아니다. 우습지 않는가? 그 글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이 행위 자체가 전혀 IT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바로 이 사실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서 김재식은 1월 14일~15일에 걸쳐 신동아와 7시간 이상에 걸친 인터뷰를 해버린다. 그러니 허겁지겁 이 내용에서 최소한 구속을 시켜야 하는 대상으로써의 해당 글은 법리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스크린 해서 만들어야 했다. 김재식의 인터뷰 내용을 팩스로 모두 받고 해당 부분을 없애는 작업까지 하면서 새로운 이론 하나가 덧붙여졌다. 기계적 증빙이라는 것을 더 공고화 해버리면서 몰고 간 것이다. 포털 다음이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검찰이 못할 일은 없었다. 다음이 가진 모순에 관해서는 그건 다음을 검찰이 조사만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니까.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조사하지 않는다는데 자정능력도 없는 포털, 이미 곡마단 설립자가 된 다음 측이 무슨 자체 조사를 내놓을 일도 없다. 침묵만 하면 된다. 슬쩍 ‘맞다’만 열심히 정지은을 통해 흘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전형적인 ‘PR통’ 구실을 한 것이다. 아주 교활한 행보였다.
그것도 부족해서 일단 신동아K를 때려잡기 위해 월간조선이 동원된다. 김연광이라는 전임 편집장이 정치적 아욕에 눈이 어두워서 앞도 뒤도 모르고 뭔가 큰 정보 하나 들고 있는 듯이 총대 메고 나서고, 어디에서 지시를 받은 김용삼, 그리고 김성동, 백승구, 나아가 이상흔 등 신참 기자들도 하수인의 구색을 맞춰서 집어넣고, 그 속에서 기계적 증빙을 자랑하는 박찬종-김승민 커플의 이야기로 재구성을 하게 만든다. 이 역할은 박찬종이 나서고 김승민이 그 프레임을 맞추어 들어간 케이스다. 물론 여기에 아주 권위적 구색으로 월간조선 출입 정보당국의 I.O도 끼어든다. 적절하게 정보의 질적 양적인 것을 보장 받은 것처럼 흉내내면서 말이다. 그 가운데서 월간조선의 그 화려했던 거짓말 기사-월간조선 2월호, 3월호-가 탄생한다. 그건 기사가 아니라 조작의 완성을 위한 모의(謀議) 결과물이었다.
모두 대단한 엑스트라처럼 기능했지만 실제로는 이 곡마단을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들의 재주를 내놓은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다 각자는 이유가 있다. 빌어먹을 이유들이긴 하지만!!
재수 없는 게 아니라 월간조선의 내부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나’를 이 일에 강제로 끌고 들어간 것이 잘못이라면 커다란 잘못이다. 내가 그 꼴을 봐줘야 할 아무런 의무나 책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의 직접 당사자가 되었다. 당연히 나는 이 일을 관조(觀照)하는 수준 이상의 대응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도 미제(未濟)이긴 하다. 하나씩 해결해보면 다 해결될 거다. 전혀 복잡하지 않는 평면적인 정보로도 그 ‘꼼수’ 다 보이니까 말이다. 이건 민사 이런 따위가 아니라 형사적인 문제에 속하는 것이니까. 기자가 아니라 곡마단 멤버들이었으니까. 딱 그리 취급하면 될 일이다.
바로 여기에서 다시 하나의 지점이 갈린다.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박대성이 썼다고 해야 하는 ID와 패스워드였다. 그것은 ‘다음’에서 늦게야 해당자들에게 공급되었다. 박대성을 취조하던 검찰은 A4 2장짜리도 그냥 컴퓨터에서 쓰고 프린터 하게 했고, ID로 접속해서 미네르바 필명의 그 프로파일 키 값이 유지되는 곳에서 ‘글쓰기’를 시키지 못했다. 출력된 종이를 흔들던 그 손들이 기억난다. 그 ‘기막힌’ 내용을 아주 대단한 실력이라고 추켜 세웠다. 전혀 IT와는 상관없는 놀이판이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버렸다. 그 와중에 김재식의 인터뷰도 나온 상태에서 겨우 그 조정을 하고 김승민은 1월 22일에서야 박씨 변호인으로 다음이 제공해준 ID로 접속을 하게 된다. 그 holypark33이란 아이디로 말이다. 검찰도 아닌, 변호인도 아닌 변호사 보좌관도 사무장도 아닌 자의 원맨쇼가 벌어진다.
온갖 조작된 곳에 포털 다음이 안 끼어 들어간 곳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박대성이 맞다’라고 앵무새가 되기로 작정한 듯 포멧을 그렇게 이어갔던 셈이다. 그러니까 포털 ‘다음’은 이 모든 일의 원흉(元兇)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입을 닫고 있고 당사자는 미국 도망을 가고 겨우 ‘정지은’ 하나를 내세워 아직도 장난질이다. 저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여기에 동아일보 본사가 끼어든 것은 일의 흐름으로 봐서는 전혀 예외적 일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검찰과 다투지 않고 싶다는 명분이 존재하고 그러니 게이트 키핑이니 뭐니 때려 넣을 수 있는 엉터리 언술(言述)의 명분 다 넣어서 그냥 사과문부터 덜컥 발표를 하고 사건 후 처리를 하게 된다. 뭔 그리 대단한 언론 동아일보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운운하는지 정작 할 일은 하지 않으며 말하는 품세가 좀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1월 시점에 이미 김재식의 인터뷰를 잘라 먹으면서 몰고 갔던 경험이 있으니 밀어붙이기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약간의 자족감도 넘쳐났다.
이미 박대성이 다음부터 월간조선까지 끼어들고, 검찰까지 후원하는 곡마단을 구성하고 있는 판이니 이 프레임이 쉽게 부숴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한 몫을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 일을 주도한 김승환, 임채청 두 사람은 이 사건의 내용을 자신들 나름 해석하고 진행한 <확신범>인 셈이다. 그들은 특히 박대성이 가짜라는 증거를 신동아가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까지 모두 덮으면서 김재식의 커밍아웃만을 토대로 사건 처리를 하게 된다. 말 길과 진실을 다루는 기자가 아니었던 셈이다. 당연히 ‘곡마단’은 동아일보 본사의 이 두 사람에게 은혜를 입은 바가 아주 크다. 그들이 예뻐서 해준 게 아니다. 이들 또한 어떠한 말로도 이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변명할 수 없다. 앞으로도 따져볼 일은 아주 많다.
김승민과의 개인적인 인연인지 혹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CBS 노컷뉴스의 심훈 기자를 비롯한 기자와 데스크 등에 속한 많은 이들이 가짜 기사를 쓰면서 까지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고, 머니투데이 등 기자들도 꽤 김승민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그가 무슨 박찬종 보좌관이란 타이틀로 심지어 김승민이 변호사로 착각하는 사람들까지 만들어낼 지경이 되어 버린다. 사건 초기 박재승 변호사를 비롯해서 박대성의 변호인단에 들어갔던 이들 가운데 박대성을 줄기차게 의심하는 이들을 다 사건 밖으로 밀쳐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포털 다음을 쥐면서 박재승, 김갑배 등 변호사들에게 정보를 통제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사실상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곡마단에 물리적이고 정신적 힘을 실어준 것은 김태동 교수다. 그가 표현자유를 운운하면서 박대성 재판에 뛰어든 것은 일견 이해가 되지만 왜 그가 그런 곡마단의 후원자를 자처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벌어진 일로만 본다면, 이제 와서 그의 책임을 회피할 길은 없게 보인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 사건의 중요한 대상문제로 인터넷의 표현자유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곡마단인지 아닌지, 진위여부가 더 논란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근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입에서 ‘민청학련’까지 언급된 마당이었다. 그 후유증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는다. 나는 미리 김교수께 그 경고를 수 차 드린 바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우러난 경고를 그 분은 무시했었다.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사람이 잘못됨이 있다면 일단 고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게 우선이다. 나이가 먹었건 아니건 말이다.
아직도 김태동 교수는 저 엉성한 거짓말과 언어도 제대로 된 사람의 그것이라 믿는가? 그토록 훈련하고도 거의 문장 하나도 완결되게 구사하지 못하는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믿는 것인가? 아직도 김승민의 그 교언(巧言)에 빠진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가? 아직도 박찬종의 그 말들이 가진 모순들-곁에 있는 다른 변호사들이 모두 느낀 진위여부의 첨예한 문제-을 전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가? 이런 질책을 끊임 없이 받지 않을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대성을 너무 띄워주는 역할, 하다 못해 아예 후견자로 딱 등 뒤에 기대 서게 만들었고 실제로도 서 있었다는 걸 이제와 바꿀 재간이 없다. 여전히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청년으로 보이는가? 이 질문은 꼭 하고 지나가야 할 듯하다.
자! 대충 곡마단 이야기를 해보고 지나가는 중이다. 이 정도 가지고 곡마단 전부를 말했다 할 수는 없다. 이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많은 이들이 여기 관계가 깊숙하게 되어 있다. 진보니 보수니 그런 언론의 성향을 따질 이유도 없다. 박대성과 서면 인터뷰를 했으나 제대로 질문서 하나 작성하지 않았던 모든 언론들도 모두 이 곡마단 만들기의 동참자다. 그 언론 매체는 물론이고 그 해당 기자, 데스크도 자질적으로 문제를 느껴야 할 대목이 많을 것이다. 그 때의 질의서와 답변 자체를 이제 다시 검토해본다면 말이다. 그 정도로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 떠드나 하는 밥값의 의구심이 생길 게 뻔하다. 저기 전직 CNN기자 레베카 맥키논의 인터뷰 수준으로 박대성을 처음부터 파헤쳐본 사람은 왜 서울에는 없는가? 모두 부끄러움에 치를 떨어야 할 일이다. 기자, 그 명함 버릴 일이라는 이야기다.
이 곡마단의 전체 구성은 이 연재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자세하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역할과 기여에 관하여 정리해보도록 한다. 동원된 사람도 참 많다. 너무 많아서 이루 헤아리기 어려우나 정리해보면 대략 몇 페이지로는 압축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숫자는 아직도 늘어나는 중이다. 곡마단의 활동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에 얽힌 사람들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최근에도 꽤 늘어났다. 지난 주에 ‘백지연’과도 인터뷰를 했다는데 그 전문 한 번 녹음 풀어서 올려보면 참 좋겠다 싶다. 완결된 문장 하나, 딱 한 센텐스는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지 좀 보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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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