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26. ‘아고라 최씨’의 등장과 퇴장

담담당당, 2009/12/08

‘아고라 최씨’는 신동아K 김재식이 ‘그’를 부르며 썼던 용어였다. 미네르바의 글로 알려진 것은 ‘옆집 최씨 노인네’, ‘최씨 노인네’로 두 차례 등장한다. 그 시점이 10월 9일, 10월 22일이었던 것은 앞서 밝힌 바 있다.

이 지점은 9월 리먼 브라더스의 난사(難事)가 서울 뉴스에서 일정 정도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오히려 10월 미국 발 금융위기 국면이 불거지고 통화스왑 문제가 전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때였다. 9월 위기설의 후 처리 과정에서 정부가 기를 쓰고 국내 뉴스 등 정보통제와 9월 위기설 등의 물타기, 순화에 골몰하고 있던 때였고, 여름 촛불들이 가을에 들어 약간 시들해지기 직전의 일이기도 했다. 일종의 사회 내부의 갈등과 충돌 상태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복합되면서 생겨난 폭풍의 핵 같은 지점이기도 했다.

시기적인 점에서 당시의 ‘아고라 최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그를 직접 취재했던 언론사의 모 기자가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있다. 그의 개별적 취재 영역이므로 여기서 밝히는 것은 생략한다. 내가 그 정보를 전부 위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가 만났던 ‘아고라 최씨’는 신동아K 김재식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또한 그를 ‘하부에 부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둘 간에는 갈등이 발생한다. 10월 말 시점부터 공식적으로 사법처리가 운운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아고라 최씨에게도 정보당국 등에서 작년 10월경 당시 압력이 들어왔다는 건 금년 1월경에 확인되었던 일이다. 그러니 추론해보건대 당시 갈등의 원인은 글을 더 쓴다 혹은 써야 한다는 것과 관련 없이 그들이 처한 비상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1월초 법무장관이 공식적으로 사법적 처리 문제를 거론할 지경까지 되었으니 갈등은 더욱 증폭되는 게 당연했다. 거기다가 직접적인 메일 쪽지 방식의 협박도 받은 때였다. 그건 김재식의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나왔고 뒤에서도 언급된다.

아고라 최씨, 최씨 노인네의 이름은 ‘폴 최’다. 60~61세. 재미교포다. 서울보다는 미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지난 2월 말 서울을 떠난 이후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금년 11월경에나 돌아오마 했다지만 아직 그가 서울로 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2월 구정 직전에 마치 도마뱀 꼬리를 자르듯 하고 떠난 그는 1월에도 작년에 여러 경로에서 압력이 들어왔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서울을 훌쩍 떠나 버렸다. 확실히 한국은 이런 저런 사건 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긴 많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다시 슬그머니 들어오는 패턴이 유지된다. 재미교포에게 서울은 종종 그런 곳이 되기도 한다.

신동아 12월호 기고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 부분은 비망록 제 I 편에서도 일정한 수준에서는 이야기를 했던 대목이다. 거기에 폴 최가 관련되어 있는 건 틀림이 없었던 부분이다. 그건 김재식 단독의 결정이 아니었고 주변에 여러 관련자들이 있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단지 이 부분을 박대성 식으로 어정쩡하게 도무지 앞뒤가 없이, 추억도 없이 설명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가짜인가를 말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이를테면 12월 29일의 글 ‘속 상하다..그리고 사과 드린다’라는 글은 현재도 여전히 누가 쓴 글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이걸 박대성이 썼다고 만들어낸 것이 검찰이다. 그러니까 12월 29일에 올린 글 4편 모두가 그의 작품이란 말이 된다. 우습게도 그는 그 글들마저 함의(含意)를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자기 글이라면서도 자기 글의 배경을 제대로 말 못하는 이 현상을 그대로 두고 보는 건 지켜보는 자에게도 고역이다. 이런 일이 너무 비일비재하니 이제 만성이 된 것인가? 물론 그 가운데는 버젓하게 신동아 12월호 기고에 관한 내용이 명확하게 문장으로 올라가 있다.

-폐업-

그러길래 조용조용 쥐 죽은 듯이 소규모 모임처럼 했으면 이런 일도 안 터지고 좋았을 텐데.

사방팔방에 이름 팔리는 바람에...완전 꽝 되 버렸다.. 그럼 아줌마들 아들한테 달러 보내거나 소규모 수입 결재나 채권이나 국채 거래 하는 것 같은 금융 정보 커뮤니케이션 주고 받을 수 있는데., 쯧..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건지. 원.

하지 마라니까 내부 참고용으로 만들어 논 걸 잡지사에 가져다가 팔아 먹는 놈이 있지 않나. 들 쑤는 놈이 있지 않나. 에이그.

그래서 다시 쥐 죽은 듯이 개업 할 때 그렇게 아무것도 누르지 마라니까. 결론은 ................폐업이네.. ㅠ

우습게도 박대성은 이것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자기가 쓴 글이 아니다. 그러니 설명이 궁색할 수밖에 없다. 그걸 듣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은 과연 정신이 제대로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난 아직도 그 반응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대진다. 그래도 글줄 꽤나 했다는 사람들이 그랬고, 사회지식이 있다는 자들이 그러했다. 모든 글에는 추억과 기억이 같이 묻어간다. 이진법 아니라 백진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첫 대목에서 시작되는 ‘하지 마라니까’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한다.

김재식이 신동아 기고를 결정하게 된 것은 나의 추천에 의한 부분이 거의 90%가 넘는다. 이 부분은 뒤에서 상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구도가 그렇게 짜져 있었던 측면도 있다. 11월 초반 시점 시사360을 비롯한 모든 언론들의 방향은 ‘미네르바=사기꾼’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편집증적 짜집기(를 하는 똘아이)’로 몰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이진법과는 전혀 상관없이 십진법에서는 그런 몰이가 진행 중이었다. 그것은 이진법 죽이기라는 사악한 관점이었기에 반드시 막아야 할 흐름이었다. 슬그머니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운이 좋아, 이진법 찌질이 짜집기로) 예측한 거라고 자꾸 방향을 틀었지만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였다. 정확하게는 리먼을 산업은행이 인수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으니까. 그건 소수 의견이었지만 강력했던 저항이었다. 그 밖에도 많았다. 노란토끼도 죽이고 통화스왑 문제도 물 탔다. 도대체 그 의미를 알긴 아는 것인가?

그(오프라인 기고)에 누가 그토록 반대를 했을까?

당연히 ‘아고라 최씨’는 반대했다. 이것은 김재식의 말로도, 또 폴 최를 취재한 측에서도 확인되었던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동아 12월호는 나왔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해진 12월을 맞게 되었지만 12월 29일 글이 나오고 바로 박대성이란 개체가 등장하게 되면서 상황은 일파만파로 치닫는다. 가짜의 등장이 너무 뻔뻔하게 이뤄진 것이니까 그 후유증도 만만치가 않았다. 김재식의 1월 신동아 인터뷰 원문 중에서 발췌한다.

- 박대성은 아고라에는 자기가 글을 올렸지만 신동아에는 기고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글 중에 내부참고용으로 만든 것을 누군가가 잡지사에 팔아먹었다고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추정하고 있는지요?
“제가 보건대 오히려 그것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박대성에 있는 거죠. 추정컨대 신동아에 기고해 재산상의 이익,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자기가 먼저 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음에 올렸던 글들을 책으로 만들어 파는 것 아시죠. 그런 식으로 자기도 해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가요?”

- 박대성씨가 검찰에서 쓴 글을 보면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우리 모임의) 취지가 인터넷에 올리더라도 일정 부분 시간이 지나면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연락이 되면 삭제를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신동아 기고를 거절했던 것도 그런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동아 기고글을 쓴 뒤 엄청난 곤란을 겪었습니다. 왜 하지 않기로 해놓고 했느냐는 다른 멤버들의 반발이 좀 심했어요. 그 때문에 관계가 서먹해진 분도 몇 분 있습니다.”

- 최씨?
“최씨는 완곡히 반대했습니다.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했지요. 왜 긁어 부스럼 만들어 다수를 힘들게 하느냐며 기고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연락이 안 되는 듯합니다. 내부 참고용이라는 표현을 쓴 건 좀 황당합니다. 그건 내부 참고용이 아니라 미리 알려 경각심 갖고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쓴 글입니다.”

당시 아고라 최씨 외에도 반대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김재식은 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1월 인터뷰에서도 상세히 입을 열 생각이 애초 없었다. ‘리먼K’는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다. 그는 10월의 시점 수준에서 연락을 완전히 끊고 아고라 최씨에게 모든 일을 밀어 버리고 떠났다. 바로 이 대목이 이들 갈등의 폭발 최정점으로 이르는 길목이었으니까. 살해협박과 공권력의 사법처리가 거론되고 실제로 그런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전달될 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12월 29일의 글에 관여했을까 아닐까, 여기에도 묘한 초점이 있다.

‘내부 참고용’, ‘잡지사’라는 키워드에는 그런 불만이 가득 배어 있다. 그래서 12월 29일의 글은 ‘고구마K’가 아니라 ‘리먼K’ 혹은 다른 이에 의해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 그나마 내부 참고용이라고 써둔 것만으로도 신동아 12월호가 그들 내부에 있었던 여러 자료들의 복합이라는 걸 설명은 해준 것이었다. 이걸 박대성은 ‘아고라에 글 쓴 것 자체가 내부 참고용’이라는 논리를 끌어 붙였다. 견강부회(牽强附會) 수준도 안 되는 조악하기 그지 없는 변명이었다.

사실 이 12월 29일의 글 하나로도 박대성은 절대 미네르바가 될 수가 없게 구조화되어 있다. 이 언어 자체를 그가 직접 구사한 것이 아니라는 건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질문만 했다면 말이다. 그것을 막아야 하니 구치소에 집어 넣고 소위 ‘서면 인터뷰’라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방식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놓았다. 박대성이 쓴 건지 김승민이 아예 자작(自作)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말들 사이에도 모두 질퍽대면서 모순 속을 헤매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는 ‘상황이 바뀌었으니 말도 바뀔 수 있다’는 그런 어린애들도 하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 박대성을 ‘싸대기 패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이다. 박대성이 아니라 김승민이 장난질 치는 거라는 세간의 여러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과연 이 일의 뭐란 말인가? 곡마단의 사육사?

10월 시점에서만 등장했다 조용히 사라진 아고라 최씨(폴 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왜 김재식의 상선(上線)임을 자임했던가?

김재식에게 이 인물은 그를 조정하는 한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실질적인 상하 관계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아고라 최씨는 그를 취재했던 언론사에 했던 말처럼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 가운데 그냥 하나’로 김재식을 취급했을 수도 있다. 수하라고 불렀으니까. 이 부분에서 1월 14일~15일 시점의 인터뷰와 그 내용, 수준을 그 언론사가 ‘폴 최’를 통해서 사전에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의 레토릭 대로 재정리 한다면 아래와 같았으니까. 인터뷰 바로 직전 주일, 박대성이 체포된 직후 즈음의 일이었다.

“이번에는 다 안 나갈 거야. 그렇게 하기로 했거든. 그리고 IP 그런 거 나한테 묻지마. 그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누가 그렇게 만든 걸 나보고 말하라면 내가 뭐라 답하나!”

조작(造作)에 대한 대응을 두고 아고라 최씨로 상징되는 그 쪽 그룹군과 김재식 간의 갈등은 꽤 깊었던 듯하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 기고도 그랬지만 1월 인터뷰는 더 심각했다. 그것은 12월 29일 글을 쓴 당사자가 지금 와서 보면 박대성이란 개체를 만드는데 적극적이건 수동적이건 협조했다는 것으로 볼 대목과도 이어진다. 그게 ‘리먼K’였을까? 현재로써는 그렇게 보는 것이 하나의 가설은 될 수 있지만 사실을 찾는 데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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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