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27. ‘김재식’은 가짜가 아니다.

담담당당, 2009/12/08

여전히 이 문제는 동아일보사의 그 엉터리 진상조사보고, 보고서라는 행위 자체와 충돌이 벌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진상조사 보고서는 결국 그들 손이 아닌 내 손으로 다시 조만간 아주 자세하게 쓰여지게 될 것이다. 병풍 치듯 간판만 그럴듯한 사람만 잔뜩 세워둔다고 제대로 조사하는 게 아니다. 신동아에 김재식을 소개한 것이 나이고 보면, 작년 12월호 글의 게재와 1월의 인터뷰까지 모두 독자적으로 진행한 신동아가 갑작스럽게 2월에 들어 김재식이 커밍아웃을 해버린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부분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 이전 단계의 점검이란 것은 꽤 중요하게 부각된다. 그걸 있는 그대로 놓고 보지 않았으니 보고서가 앞뒤도 없는 ‘개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박대성이 가짜라는 점도 못 밝히고 말이다. 그러니 애초 보고서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냥 지들 구색용이었지.

몇 가지 사실을 짚어 보자. 이것마저도 별 것 아니라고 부인한다면, 김재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가 없으니까. 동아일보 본사는 아래의 모든 당시 벌어진 상황 자체를 김재식의 커밍아웃 하나로 때려 넣어서 일괄 부인했다. 무턱대고 사과문부터 내고 했던 판이니 그 과정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더 조사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이름이 다른 언론사에 알려지거나 연락처가 노출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며 쩔쩔 맸다. 우습지만 이건 기자들도 엇비슷한 반응을 보인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라는 직업의 기사 추적에 관한 자질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는 전혀 접근방식이 달랐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결국 사실은 하나로 귀결된다. 정황과 상황은 항상 사실과 함께 간다.

우선 김재식이 커밍아웃 했을 때, 아고라 최씨(폴 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1월 인터뷰를 사전에 다른 언론사에 알려준 것도 포함해서 함께 볼 필요도 있다. 이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폴 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지금 시점에서 직접적인 것은 그 취재 언론이, 간접적으로는 내가 모두 안다. 그는 이 사안에서 당시 시점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오히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신동아와 접촉한 김재식과는 달리 그 반대편의 한 언론을 접촉하고 기다렸다는 것이 상황상 더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신동아도 이 후속 조치를 진행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 쪽과의 접촉 라인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시 내가 신동아에 흔히 언론이 말하는 ‘게이트 키핑’을 대신 해주었던 부분을 살펴 보자.

작년 11월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미네르바 필명의 글에는 ‘일레븐 클럽’이란 단어가 나온다. 10월 31일의 글 ‘내일 손자가 컴퓨터를 가지러 온다’는 내용의 한 대목이다.

난 늙은이다.... 솔직히 이제 별로 살 날도 얼마 안 남아서 우리 동네에서 은퇴한 다음에 고구마나 팔면서 동네 반상회나 들락 거린다.

11 이라는건 일레븐 클럽이라는 토론 모임이다.. 처음에 동네에서 다 때려 치고 고구마 장사 시작할때 심심해서 남는 시간에 독서 토론 모임이라고 엘리베이터 계시판에 붙여 놓으니 아줌마 몇 명이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눈으로 아줌마 3명이 찾아 와서 시작한 모임이였는데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일레븐 클럽이라서 그런것 뿐이다. 그러다가 독서 토론 모임이 변질이 되서 이젠 주로 동네 아줌마들 재태크나 세무 상담이나 경제 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박대성은 이 ‘일레븐’이란 용어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듯 말하며 아예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클럽이 만들어진 사전 스토리가 바로 그 즈음에 다 현실로 있는 일이다. 우습게도 김승민은 holypark33으로 블로그를 만들어서 그 제목을 ‘11’로 붙여두기도 했다. 숫자 아래 ‘일레븐클럽’이라고 써두면서 구치소에 들어간 박대성을 대신해서 사후처리로 급조한 그 블로그를 보면서 생각이 참 많았다. 뭔 이런 장난질이 다 있나 하는 생각 말이다. 일레븐 클럽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얼렁뚱땅 설명을 할 부분도 아니거니와 명확하게 전거와 사실이 합당하게 있었다는 걸 재차 확인할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

2008년 11월 10일, 그 일레븐 클럽의 멤버 중 한 사람이 내게 보내온 메일 중 한 대목이다. 이것이 사실 내가 미네르바 사건, 박대성 사건으로 들어오는 계기가 된 셈이긴 하다.

단체에서 축출당하고 몇 명이 반상회를 하고 있습니다. 글을 남고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11명의 아줌마들이 한 명의 고구마 늙은이와 이야기 하고 노닥노닥 합니다. 아니 3명이 축출을 당했는데, 아줌마들과 고구마 파는 할배가 왜 따라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따라 나온 고구마 할배와 아줌마는 토론의 장을 요구 하였고 결국 반상회가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 고구마 파는 할배는 반상회에서 살아남기를 강조 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자신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합니다.

정작 본인은 살아남기도 힘들면서, 코메디 같은 시절의 웃긴 이야기 입니다. 웃긴 세상 속에서 저 나름 데로 반상회도 참여하고 이리 글도 적고 하면서 노닥노닥합니다. 치열할 것인가? 노란 토끼들에게 사냥시즌은 아직 끝나지(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알리고 말 것인가? 고민입니다. 그리고 저 위험 속에 홀로 남고 싶어 하는 고구마 파는 영감은 어찌해야 할까요? 어제는 집에 들어가질 못하고 종일 서울의 모 공원에서 접속을 하더군요. 집 앞에서 누군가가 기다려서 껄끄럽다고 하면서 ㅎ. 우스운 시절의 눈물 나는 이야기들 입니다.

이 이메일을 받고 나는 ‘그’를 살려줄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업무 차 베이징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내겐 일레븐클럽도 ‘미네르바’도 눈 앞에 주어진 현실이었다. 이진법에서만 만났다 하더라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내겐 귀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가 실질적인 위협을 받는다는 것도 재확인을 했다. 그 내용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11월 11일 ‘고구마K’와의 구글 채팅 기록 가운데 일부다.

..........밝은세상을바라는 고구마: 사실 저번에 기사 보셨습니까..? 살해협박
나: 네, 봤습니다.
..........밝은세상을바라는 고구마: 글하나 소개해드리죠. 대운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데
경북문경이라고 합디다.
너이개새기 니까진게 머가니 정부정책을 그렇게 각종 루머를 퍼트려서 호도하느냐 내동생이 경찰이다. 너 추적해서 내가 오늘밤에 식칼들고 너 목을 절단시켜버리러 가겠다, 이렇게 왔습디다
나: ㅎ
..........밝은세상을바라는 고구마: 물론 피신했습니다

이건 10월 29일의 글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에 나온 대목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부분은 김재식이 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재차 거론하기도 했다. 우선 당시 미네르바 필명의 글로 한 번 보자.

당분간 오프 라인에서 영업에 열중 해야지 살해 위협까지 받고 그만 쓰라니.

노인네가 이젠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네.

이젠 고구마나 팔면서 개인 고객 관리 하는데만 열중해야지..

역시 인터넷은 한계가 있어.

돈 안되는데 솔직히 너무 시간 낭비한 것 같다.

나도 살아야지. 살해 협박까지 당하고 돈 한푼 안 되는 짓 할 필요가 없지.

지난 이야기만 했다고? 그냥 흉내 내서 했다고? 아니다. 그럼 ‘그’가 글의 조절권, 통제권을 부분이건 전반적이건 가지고 있었다고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걸 꺼내보자.

11월 11일 밤 정확하게는 한국시간 12일 새벽, 나는 유인촌, 전여옥의 축재 과정을 거론한 글의 심각성을 그에게 강하게 말해주었다. 그것이 11월 초 시점부터 나오던 이른바 사법처리 운운하던 반응에서 명예훼손으로 즉각 들어올 소지가 있는 건이라는 걸 강조했었다. 그건 시작하게 되면 출국금지 등 사법적 조치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다른 경제적인 비판과는 조금 다른 각도의 빼도 박도 못하는 법리적인 문제가 대두될 소지가 컸다. 그래서 그에게 이 부분의 신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그리고 미네르바는 11월 13일의 첫 글 ‘이제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에서 당시로써는 아주 엉뚱하게도 이런 글을 실었다. 뜬금없이 올라온 그 글을 보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건 나와 협의한 바로 직전(하루 이틀 전) 스토리가 있었던 일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몰랐었겠지만.

전여옥 의원님...유인촌 의원님.... 이 자리를 빌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무릎 꿇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이 늙은 촌부를 부디 용서해 부시기 바랍니다.

예전 조선 시대에도 마을의 수령님께서는 한 번의 자비로움을 배푸셨다지요. 이제 의사 면담 하러 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고구마K’ 김재식과 ‘언어의 추억’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꽤 된다. 그는 11월 이후에는 절필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11월 29일 이후 미네르바 필명의 글은 그 후 한 달 동안 아고라에 올라오지 않았다. 너무 과열된 글쓰기를 진정시키려는 나의 의도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대처 해볼 도리는 없으니까. 사실 김재식의 진위여부에 관해서는 일일이 설명할 가치를 별로 못 느낄 정도다. 커밍아웃? 그 시기에 그렇게 하고 도망가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었는가? 정말 가짜였다면 1월 박대성이 체포된 이후 그렇게 인터뷰 하지 않았다. 미친 놈이 아니고서야!!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랬다면 오히려 처리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당연히 작년 11월 시점, 내가 그가 처한 당시 위험에서 구해주고자 했던 것은 그가 가진 언어의 가치를 충분히 믿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바로 접촉한 곳이 ‘신동아’였다. 작년 신동아 12월호 기고는 그렇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아직도 김재식을 가짜라고 여기는가?

나중에 아주 많은 분량이긴 하나 나와의 세 차례 여의 채팅 5~6시간 기록과 덧붙여진 내용들도 가능한 공개해보도록 하겠다. 내용이 너무 민감한 대목이 많긴 하지만 잘 선별해보도록 하겠다. 그가 커밍아웃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나를 비롯한 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또한 인간적으로도 아주 비겁한 행위를 했지만 나는 지금 이 일의 ‘사실’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감정적으로 기복 없이 매우 냉정하게 그 때의 상황을 복기한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그 상황은 남는 법이다. 그걸 어찌할 수는 없다. 박대성이 전혀 미네르바 필명 글, 언어의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란 의미다. 그가 통제 가능했다고 판단되는 글은 전혀 없었다. 그런 기억의 순간도 그의 그간 말 가운데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글’의 추억을 말한다? 그럴 일은 없다. 그는 여전히, 아마 앞으로도 나와의 ‘글’을 통해 공유할 추억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딱 그 수준 정도이니까. 너무 ‘언어’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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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