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09
내가 가장 의아해하는 대목이 이것이다. 지금 정도에서도 왜 박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백(告白)이 언론 매체로부터 나오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글로 말로, 언어로 먹고 사는 동네에서 이 정도 구분법도 없다는 말인가 싶어하는 소리다.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보고도 그냥 대충 엇비슷하니까, 혹은 다른 ‘특별한’ 이유로 그 사람을 ‘미네르바’로 인정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간단하다. 세상은 조금만 비슷하게 해도 그냥 다 통한다는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변별력, 구분능력 같은 건 따지지 않아도 좋다. 그건 인문학 공부를 살아 가면서 전혀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가 된다. 행복한 일이다. 모두 바보 천치 같이 살 수 있으니!! 그렇게 살아도 좋다고 다음 세대에 가르쳐 주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약간만 제대로 질문이 담긴 이야기를 직접 건네 봐도, 또 직접 건네고 답하는 그간의 광경만 보아도 금방 안다. 뭔가 아주 어색하다는 것이다. ‘언어’가 안 되는 건 둘째 문제다. 도무지 ‘찌질이’ 하나 만들려고 작정한 연출이 그 속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걸 이상할 정도로 잘 이해하고 수용하고 받아 들인다? 연습은 이어진다. 배우 시험 치는데 최소 2년, 길게는 10년까지도 공부해야 한다던가? 아직 시간이 더 걸린다고 봐야 될까? 그 둔갑의 과정을 더 지켜보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이 현상은 두 가지에서 확연하게 혼란스럽게 된다. 하나는 ‘글’의 언어를 말했던 이의 그것과 ‘말’과의 차이다. 박대성은 ‘글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특히 그 자신이 기준을 삼는다 말하는 글이 기본인 이진법(온라인)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이 썼다고 그렇게나 억지 써가면서 주장하는 그 세계 속에서는 놀기 싫어한다. 구치소에서 나와 댓글놀이 새벽녘에 한 번 하고 난 이후 이진법 온라인과 ‘빠이 빠이’ 했다. 무슨 강연, 인터뷰 하는데 가만히 보니 대본이 없으면 늘 죽을 쑨다. 질문의 초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확실히 인문학의 참혹한 지경에 해당한다. 이진법에도 못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짜라는 걸 즉시 ‘까발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걸 묘하게 포장한다. 무슨 감옥살이 오래 했다고 채 100일에 충격 받았다는 이야기를 ‘백지연과의 대화’에서 아주 길고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그 프로그램 어제 저녁 무렵 다시 보다가 한참 웃었다. 충격? 무슨 충격?
거기다가 ‘글’의 기억과 추억이 없다 보니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 자체를 아예 ‘찌질이 쇼’로 만들어 버렸다. 함께 보던 어떤 이가 말한다.
“연습 많이 했네. 그런데 쇼 컨셉 자체가 완전히 미네르바 찌질이 만들기로 변해가는 구만!!”
시간이 있는 사람은 그 프로그램 재생해서 한 번 보기 바란다. 말은 많이 늘었다. 방송 편집도 하고 대본도 충실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가 나와 여러 이들이 계속 웃었다. 지난 미네르바 필명의 글을 1/100도 소화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는 작년 이진법의 그 ‘글이 가진 추억’을 채우는 게 아니라 아주 생짜로 까먹는다. 아예 그렇게 하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 같다. 그렇게 폄하 코드를 가짜 홍길동이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가동하는 걸 보고 나는 ‘찌질이 론’을 드높이려고 하는 연출된 배우라고 그를 일단 표현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나는 ‘그와 그들’에게 아주 진지하게 묻고 싶다. 물론 그것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미 그저 그런 맛에 든 사람 같다. 그러는 사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 인지도 없다. ‘미네르바 박대성 TV 최초 인터뷰’라고 하니 그리 우쭐하던가? 웃기는 일이다. 질문과 답변이 완전 따로 논다. 뭔 부동산, 주식 대박 사이트 구분법 선전하는 줄 알았다.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한 이후 줄곧 하는 말이 있다. 질문이다. 과연 당신의 사회지식은 어느 수준인가? 온갖 상황이 다 벌어지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그 과정에서 학교가 가르쳐주는 지식도 있지만 경험의 직간접 주는 교훈을 잊을 수는 없다. 이건 인문학적인 것과도 다르다. 그저 살아가면서 느끼고 아는 것이다. 그걸 사회지식이라고 부른다. 백지연과의 인터뷰 한 번 자세히 보라. 레베타 맥키논과의 인터뷰보다는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다. 그렇게 빨리 인터뷰 어레인지를 하다니!! 구치소 출소 기념 200일을 준비해 놓고 연습 할 시간 여유는 좀 있었나 보다. 300일에는 또 어떤 세레모니를 할 건가? 수준 미달로도 부를 수가 없다. 왜? 언급할만한 수준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가짜는 가짜다. 그걸 ‘진짜 가짜’라고 흔히 부른다. 더 심각한 가짜는 ‘가짜 가짜’로 부른다. 이를테면 1000년 전 골동품이 있다고 한다면 그 1000년 전에 나왔던 모작은 ‘진짜 가짜’, 그걸 100년도 채 안된 최근에 모작한 것은 ‘가짜 가짜’라는 거다. 박대성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확실한 ‘가짜 가짜’다.
우습게도 그런 그가 여기 저기 출몰(出沒)하는 걸 지켜보는 건 구역질 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값싸게 웃기도 하고 아주 재미나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남겨진 기록을 재생해서 여러 차례 다시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길어지면서 아무리 훈련하고 혹은 프로그램에서 편집을 하건 약속된 스크립터로 대화를 하건 해도 그 속 알맹이를 가지지 못하니 그 언밸런스를 감당하기 어렵다. 동문서답이 아니라 동문북답을 한다. 동문남답이나 혹은 서문북답인가? 모를 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렇게 하면서 뭘 노리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백지연과의 대담에서는 무슨 미네르바 펀드 운운을 하던데, 그런 정신 상태로 조작의 현실적 답을 원하는 방향이 잘못된 거다. 부동산 이야기, 주식이야기 하면서 실컷 말해도 미네르바 필명의 핵심인 외환-주식-부동산이라는 각도에서 한국경제를 관망하고 분석하는 등식에서 기본인 ‘외환’을 말할 재간도 없게 보인다. 주식은 더하다. 그리 이야기 하던 ‘노란토끼’는 어디 멀리 아주 도망갔나? 그저 사익을 취할 목적으로 투자를 하진 않았다고 앵무새처럼 뇌까린다. 얕은 지식으로 글의 깊이를 언어로 커버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분노가 확 천둥처럼 터진다.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37&newsid=20091209083811321&p=moneytoday
좀 상식적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은 그런 정도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묻는다. 왜 ‘우리는 박대성이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언론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외신을 통해 나와야 이것도 실용주의가 되는 걸까? 허위의 변수로는 너무 낮은 단계를 선택한 언론매체가 더 많다는 점에 경악한다. 요즘 방송 PD, 언론사 데스크들은 별로 인문학적 영양가를 가지고 있지 않나 보다. 그래서인지 ‘질문’ 자체를 예리하고 날카롭게 하질 않는다. 여전히 고급정보를 어디서 받았나 하고 질문하지만 그 대답에 박대성은 ‘친구, 아는 사람’ 그러고 만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박대성이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고급정보, 등급이 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단언코 없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람들은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만 되물어도 답이 나온다. 지금 그런 사람 빨리 만들어 놓는 게 박대성의 숙제다. 가능한가? 솔직히 그런 연극에 참여할 그 수준의 사람은 없을 거라 본다.
이게 사회지식의 척도다. 이제 시간이 자꾸 더 흘러가면 그걸 바로 잡을 기회도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보는 원래의 모의꾼들이 있다. 그리 되면 사회 전체가 ‘언어’라는 것에 둔감하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정도 수준의 사회라고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가면 바보 천치 되는 건 아무 말하지 않는 침묵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가만히 고갤 젖는다. 앞서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다시 말한다. 자기 몫은 해라. 내 이야기 할 몫은 하고 있으니까.
곡마단아!! 장난은 그만 쳐라!!!
솔직히 이 정도에서도 스스로 그치거나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일종의 전체사회적 트라우마로 남는다. 강한 트라우마를 더 이어갈 준비를 하는 모든 이들이 정상으로 보일 수는 없다. 이것 오래간다고 이미 말했다. 여기 저기 이 모의를, 그 달콤한 유혹을 놓치지 못해서 그렇게 만들고자 안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리 훈련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기본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미네르바’ 필명이 가진 정보의 깊이는 박대성이 십 년 연습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게 공부 과정이 낱낱이 드러난다. 기록되기 때문이다. 난 그가 부풀리는 훼손해 들어가는 끝없는 거짓말에 사실 경악한다. 그걸 지켜보는 과정에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살펴보면서 그 또한 경악한다. 어떤 이들은 즐기고, 또 어떤 이들은 케세라 세라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도 저도 구분하기 싫어하고 그냥 그대로 보기만 한다. 멍청한 일이다. 아주 넋 놓고 사는 모습이다.
정작 그렇게 하는 이는 맘껏 즐긴다. ㅎ
흥미로운 일도 정도가 넘어서면 불쌍하게 보이는 거다. 지금이 딱 그렇다. 박대성을 보는 나의 눈에 처연한 안타까움은 이미 지나갔다. 아주 신경질이 난다. 잘 보이지 않는가? 그럼 이렇게 하자! 그냥 그런 저런 대담이니 뭐니 하지 말고 이진법, 아고라 경제방에 들어와라. 글을 써라. 무슨 감옥의 충격 운운하지 말고, 지금 현 상태에서 과거와 같은 패턴의 경제지식, 감각 혹은 그런 글을 한 번 써봐라! 무슨 재판을 운운하고 아직 안 끝났으니 말 못한다고 핑계나 대고 하는 짓거리는 하지 말고, 지금 글 쓴다고 어디 잡아가지 않는다. 투사 흉내는 그만 내라! 역겹다! 그냥 쓰면 된다. 그 감각만 보이면서. 하루에 많이 쓸 때 10여 편, 예전 쓰던 방식대로 한 번 해봐라. 옆에서 누가 도와줘도 좋다. 방송에서 바락바락 그 모든 글을 혼자 썼다고 이야기하던 것처럼 하려면 딱 중개방송 한 번 해도 좋다. 요즘 인터넷 방송 아주 좋다. 한 번 해본 길인데 두 번은 더 쉽지 않은가?
빌어먹을 일이다.
이런 일이 어찌 벌어지나 싶어 요즘은 잠이 잘 안 온다. 그런데도 히죽대며 웃고 있는 자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니까. 그러다가 내가 즐긴다. 이것들!! 쇼 판이 꽤 흥미롭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이런 생각 하나 든다. 과연 이 후유증을 사회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사회가 저어기 많이 걱정된다.
언론은 하나의 ‘말 길’이고 ‘(시대와 민중을) 대행하는 말 길의 창문’이다. 그들이 못한다면 차라리 그 언론들 모두 문 닫는 게 좋겠다. 앞서도 그런 이야기 했지만 질문 제대로 꾸며서 딱 50개만 해보면 저 사람 답변이 어떤 건지 패턴, 거짓말, 둘러치기, 물타기, 우기기 등 금방 안다. 지금까지 나온 것도 리뷰해보면 이미 아니라는 증거물로도 충분하다. 요즘은 그것도 즐기는 듯하니 질문하기도 쉽지 않나 싶다. 이런 일이 벌어진 대한민국은 미친 나라가 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웃기는 짜장면이 불어 터지고 있다. 가만 보니 짜장면-표준말이 자장면이라고 하지만-이 아니라 ‘자작면’(自作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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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