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11
잘 계시지요? 요즘 마음의 안정을 가지시려 여러 좋은 이야기에 심취하신다는 말은 전해 듣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다음(DAUM)이 맨 처음 출발할 때, 많을 다(多), 소리 음(音)을 빌려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것은 ‘많은 소리’가 아니라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한국적 토양에 맞는 ‘다양성’을 찾아 보려는 치열한 시도였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이후 미약한 일 개인이기는 하나 다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그간 가졌습니다.
작년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촛불민심이 불타오를 때, 다음(DAUM)은 아마 회사도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네티즌들의 넓혀진 공론(公論)의 장(場)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언로(言路)가 열렸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또한 회사로써는 부담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이진법(온라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정권이 이런 모습을 살갑게 받아들여줄 정도로 인터넷 공간의 역동성, 미래성, 그 가치를 인정해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른바 촛불민심이 불거진 작년 6월의 와중에 국민소통비서관이란 자리가 만들어지고 오히려 인터넷 통제의 기치(旗幟)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포털 다음은 여러 형태의 위협을 받았던 것도 일반 매체에서조차 많이 다루었던 사안이기도 합니다. 당시 다음 관계자들이 그랬다지요?
“우리도 이렇게 네티즌들이 아고라에 몰릴 줄은 몰랐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그 반대현상도 만만치 않게 부작용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측에서 경찰 등에 네티즌들의 회원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사실 비밀도 아니었지요. 달라해서 안 준다고 하면 온갖 형태의 압박 압력도 들어왔을 테니까요. 불행하게도 그 때부터 인터넷(온라인 이진법)은 주인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천부적 표현자유도 그랬지만 현실 정치, 정권이 인터넷 자체의 부정적 측면만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 사실상 그 출발점이 된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수의 이진법 참여자인 네티즌들의 온라인 정체성이 부셔졌습니다. 강제적으로 이진법에서 십진법으로 끌려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에 대해서는 한국 인터넷 역사가 집필이 된다면 반드시 아주 중대한 챕터 하나로 기록될 사안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음도 하나의 회사이니 생존이 우선이었겠지요. 그 일정한 협조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숫자의 ‘다음’(多音)이라는 의견의 다양성을 보고 참여했던 네티즌들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바로 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 문제도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지요. 그 와중에서 인터넷에서조차도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통제가 바로 도도처처에서 움직이는 사회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바로 ‘미네르바’ 필명의 글이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작년 9월 창립자 이재웅 대표 사임으로 공동 대표 체제에서 단독 대표체제를 시작하셨으니 딱 바로 그 시기입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산업은행의 인수 포기, 세계 금융위기의 시작 등이 겹쳐진 때였지요. 묘하게도 그렇게 걸쳐져 있다는 것이 ‘오비이락’(烏飛梨落)처럼 걸리기도 하지요만, 세상의 일이 우연 또한 필연이 되기도 하는 것이 다반사이지요. 물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하기도 합니다만.
시간이 약간은 지났습니다만 지금도 보시기에 ‘그’가 아무 세상 물정 모르고 그냥 인터넷으로만 정보를 받은 아마추어처럼 보이시던가요? 과거 천리안이니 하이텔이니 동호회 시절을 생각해서 고수(高手)라고 막상 찾아보니 찌질이더라 라는 그런 식의 범주에서 판단하는 글빨에 속하던가요? 그로 인해 사실상 이진법 특히 다음 아고라라는 토론의 장은 당대를 살아가는 한국 국민들에게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부와 각성을 시켜주었다는 공(功)은 인정하시는 것인가요? ‘그가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 활동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는가요?
불행하게도 미네르바 필명의 글은 그 끝으로 가면서 좋지 못한 일을 더 많이 양산했습니다. 살해협박, 공권력에 의한 압박도 있었다고 글이 올라오고, 경제이야기를 쓰면 안된다고 고백하게도 되었습니다. 그것이 9월이 지난 직후였다는 사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그와 여러 논객들의 절필(絶筆)이 벌어지고 이진법의 소란은 십진법에까지 이어지게 되었지요. 사회는 그래도 대가 없이 고급의 정보를 알려주고 지식과 지혜를 주던 한 논객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펼친 담론(談論)마저도 사장(死藏)시키려는 아주 사악한 시도까지 겹쳐지게 되었지요. 위축이 시작됩니다. 폄하도 동시에 벌어졌지요.
이러한 일들에서 석종훈 전 다음 대표께서 외인(外人)이 아니라 직접적 당사자였던 점은 정말이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박대성이 나타나서 이진법 찌질이론, 편집증적 짜집기 광(狂)이란 몰이구도까지 한껏 등장을 시켰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사건 초기의 이야기입니다. 그 광경을 어찌 보셨는지요? 그에 깊숙하게 협조하신 기분은 어떠하셨는지요? 대한민국 IT, 인터넷의 경계가 마구 무너지는 이상하고도 살벌해진 장면들에서 IT계의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셨나요?
더욱 불행한 일은 이런 ‘조작’(造作) 속에서 포털 다음의 위치가 절대 가볍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와중에서 석 전 대표와 몇 사람만이 내부에서 아는 그러한 유도 방향을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기도(企圖)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또한 그렇게 가서는 안될 길이었다는 걸 재차 지적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참여자인 네티즌 전부를 우롱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 그리고 이 시대 자체를 완전히 개판으로 만들어버릴 메가톤 중성자 폭탄 급의 연쇄 폭발에 해당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인문학을 좋아하고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림으로 따지자면 잘 그려야 될 장면에서 그냥 끌로 화폭을 모두 난도질 한 셈이 되거니와 음계(音階)를 완전히 벗어난 비상식적인 악보(樂譜)에도 해당합니다. 몰격(沒格)인 셈이지요. 격(格)이 죽어버린 이후에 다시 살리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건 사회도 시대도 비슷한 각(角)을 들고 사는 게지요.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지난 2월 이후 나는 여러 차례 이 사안의 중차대함을 알린 바가 있습니다. 포털 다음에 대한 공개질의도 여러 번 했지요. 그러나 지난 11월 20일 이후 연재를 ‘무탄초난’이란 제하의 이 사안과 그에 연동되는 일들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미세한 이야기들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장 첫 머리에는 포털 다음, 그리고 박대성 사건, 미네르바 조작사건이라는 것이 내용의 중심으로 차지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어쩌면 대한민국 IT, 인터넷 세상이 살아있나 죽었나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용지가 우리 눈 앞에 주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아주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몇 차례 다시 포털 다음의 각성(覺醒)을 촉구하는 글도 썼지요. 그러나 반응하지 않습니다. 지속되는 침묵은 완벽한 시인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어찌어찌 흘러간다 하더라도 이 사안 자체의 무거움은 하나도 덜어지는 것이 없고, 주어진 이 현상 자체의 어느 한 가지도 해결될 것이 없을 거라는 점은 지극히 불행한 일입니다. 내가 아니라면 많은 이들이 다시 이 문제를 파헤치고 거론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더욱 썩어 더 이상은 건져내지도 못하는 버려진 주제로 등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속에 우리가 꾸역꾸역 살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함께 썩어가는 것이지요. 살아있으나 죽었으니 썩는 것을 어찌 마다 하겠습니까.
필설이 길어졌습니다.
원하건대 지금은 결자해지(結者解之)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여깁니다. 작년 9월로부터 금년 3월, 이 시기 포털 다음의 단독 대표체제에 계셨던 님의 위치가 무겁고도 무겁게 보입니다. 물론 벌어진 사안은 더욱 무겁습니다. 이제 거기 멀리 Palo Alto 언저리에 계신다고 하더라도 매일 사용하시는 트위터는 서로 간의 거리감이 없이 바로 보고 확인하는 세상입니다. 그냥 보는 것이지요. 마음이 어떤지, 오늘 하루가 어떤 날씨였는지도 금새 아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결코 석 전 대표가 무관한 일은 아닌 것이기도 하지요.
가볍지 않은 마음, 편치 않은 속마음으로 온라인 이진법에 공개편지 하나를 남깁니다. 구구절절 작은 이야기들, 자잘한 사안들은 지금의 연재 글 속에서도, 또한 그 이전에도 많이 했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님께서 너무 잘 아실 듯 하니 생략합니다. 그저 제번(除煩)되었다 하여 사안의 무겁고 깊으며 넓은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란 점을 재차 백차 천차 만차 감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약속한 대로 연재를 쭉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포털 다음에 관해 깊이 거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저 세세한 것들이라도 모여보면 아주 커다란 문제로 프레임으로 사실로 진실로 자리잡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 될 거라고 봅니다. 잘 보아주시고 그 이전에라도 잘 판단해주시길 깊이 바라 마지 않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진법 다음 아고라 경제방의 참여자 한 사람이 넋두리, 주저리 아닌 편지 글로 이야기를 띄웁니다.
담담당당 입니다. / 2009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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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