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40. 역린(逆鱗) 이야기

담담당당, 2009/12/15

아래 글 참 좋다. 한 번 읽어보고 이 다음 내용 시작해보면 좋겠다 싶어 먼저 가져온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196305.html

어떤 이건 간에 흔히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은 이제 이 사안에 관해서는 여유 가지시지 못할 것이다. ‘박대성 사건’의 트라우마는 그만큼 강하다. 진보니 보수니, 중도니 하는 정치 성향 구분법이나 사회 속에서 기득권이니 혹은 중산층, 서민 하는 그런 사회 자본적 나눔과도 다르다. 이건 살아가는 동안 두 번 다시 봐서는 안될 그럴 ‘몹쓸 일’이 생긴 것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날이 가깝다. 이마저 묻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이런 일이 그냥 지나가면 세상에 못 지나칠 일은 없게 될 터이다. 그냥 ‘쪼대로’ 한 세상 살아라 하는 건데 그 정도면 ‘애너키즘’도 선택할 만한 이념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다.

특히 이 사안이 하나씩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낼수록 그간 어느 한쪽으로만 경도(傾倒)되었던 모든 언론이건 혹은 사회 내부에서 지식인 혹은 지성인, 전문가 혹은 사회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임하는 사람들의 후회가 꽤 클 것이다. 그 모든 이들은 오늘 이 판단 하나 잘못이 주가 예측 잘못한 것 하고는 천양지차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냥 예측했다 안 했다 말도 않고 침묵하는 것은 ‘오 엑스’ 문제에서 무조건 틀린 거라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사실로 드러나고 난 다음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이건 무관심, 몰지각, 방관 이런 수준의 문제와도 다르다. 조작된 실체를 마치 곡마단의 곰처럼 보면서도 무감각했다는 사실, 그에 책임질 사람들이 바로 사회지식을 가진 이 땅의 국민 전부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지금 이 사태는 이미 사회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말이다. 온순한 용(龍)을 건드리건 아니면 군주시대의 제왕의 심기를 건드리건 이런 게 아니다. 이 한 시대의 거꾸로 된 비늘을 건드려 놓은 사건이니, 자기가 어떤 비늘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상태에 와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사회가 곧 용(龍)이라면 그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의 역린을 건드린 케이스, 이른바 ‘자살골’이다. 쉽게 보기는 어려운 일이긴 하다.

여기서 자기 목소리의 ‘오 엑스’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어디 가서 전문가 소리 하지 말고, 어디 가서 지식인이니 (혹은 ‘지성인’이라 할지 몰라서 하는 말인데, 지금 대한민국에 지성인은 없다. 출세지향적 지식인이라는 ‘제3의 종족’은 여기 저기 넘치지만) 하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란다.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운운해도 슬그머니 패배주의를 다르게 포장한 단어들을 꺼낸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서 지금 ‘조작’이란 단어가 다시 등장했고 그것을 그저 웃는 낯으로 지켜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지식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으니까.

‘개념’이 있느니 없느니 말을 하지 말고 개념 있는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적어도 토론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알밥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인지부조화의 늪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팩트(사실)> 가운데서도 검증되어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해야 한다. 바락바락 우기면 사실 꼴 사납다.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그걸 즐긴다면 모를까! 팩트를 반박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비방’(誹謗)을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해라. 그럼 아주 좋다. 근거 없는 비방이란 항상 어떤 대상이 되니까. 나는 냉소적이지도 않으면서 냉소적인 흉내를 내는 덜 떨어진 인지부조화를 꽤 싫어하는 편이다. 그들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건 관계가 없다. 쓴 웃음, 찬 웃음은 자주 보내면 몸에 좋지 않지만 그럴 때는 얼마든지 보내준다.

진보니 보수니 중도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원래 대한민국의 ‘보수’는 어느 틈엔가 친일 수구꼴통으로 대체된 지가 워낙 오래되어 할 말도 없지만-그렇다고 말 안 한다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아주 처절하게 반대하지- 그렇다고 진보도 중도도 그에 절대 못지 않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지난 세월을 거치면서 아주 힘센 기득권처럼, 그래도 대응하며 잘 아는 기득권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양식이 몸에 배었다. 그래서 시민단체니 진보 언론이니 하는 말들로 이 사건을 해결해보겠다는 그런 발상은 애당초 아니라고 나는 앞서 여러 진보 혹은 그런 유형의 언론의 예에서 밝혀본 바가 있다. 그들도 인지부조화에 가까웠다. 어차피 이 과정도 거쳐야 하는지 모르나 깨우치기 위한 쉬운 치료법은 없다. 갈등하고 충돌하며 피 터지게 깨지는 도리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대성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내었던 논평이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바로 직후 지난 1월 9일자의 일이었다. 그대로 일단 옮겨본다. 아래 붉은 글씨의 한 마디가 눈에 쑥 들어온다. 그 부분 옮겨본다..

”우리는 체포된 네티즌이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전문대를 나왔는지 외국의 유수 대학을 나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오히려 검찰이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의도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정치적 의도는 정부 비판적인 인터넷 게시물을 위축시키려는 것에 놓여 있다고 확신한다.

어떤가? 이 시점에서도 저 말은 유효한가? 가짜이건 진짜이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사안에 대응하는 논리체계는 여러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이 논리 이전에 ‘사실’과 반드시 부합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박대성은 가짜다. 그렇다면 가짜라는 문제가 우선되어야지 어떻게 누가 세웠는지도 모르는 가짜 홍길동을 통해서 홍길동 단죄의 행위 비판을 먼저 할 생각을 한다는 것이 올바른 논리적 진행이라고 보는가? 지금도 그렇게 보는가? ‘탄압’이란 관점이 ‘조작’보다 우선 처리될 급선무의 일이라고 보았던 것인가? 그러니 이 모양까지 온 것이기는 하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모든 진보단체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이 글이 나오고 나서 내가 느꼈던 기분은 “대한민국의 진보는 공부가 부족한 게 아니라 판단력이 잘못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사안의 경중(輕重)만을 따지고 들어가면서 그 관계와 사실을 밝히는 일에 소홀히 하는 구호적 판단법은 ‘박대성 사건’이라는 초유의 <다목적 이진법 십진법 양면형(型) 정치 경제 사회 조작사건>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사이버 모욕죄 등이 거론되던 때였다. 그러나 그 악의적 모션 보다 더 강하게 왜 저런 페이크 모델을 내세웠는지 의도를 파악하는 그것도 아주 중대한 문제였다. 측은지심에다 압박 받는 사이버 영웅, 표현자유의 상징 등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미네르바 필명이 작년에 외쳤던 여러 외침들을 모두 파묻어버리려는 그 시도의 음험함을 생각했어야만 한다.

그렇게 페이크 모델을 애써 언급하지 않았다고 표현자유가 얻어졌는가? 아니다. 오히려 박대성은 지금도 이곳 저곳 자신이 먼저 나서서 십진법의 법리적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 그렇다고 인터넷 포털의 개인정보 유출(임의유출)이 멈추어졌는가? 아니다. 전기통신사업법의 위헌제청? 그건 원래가 사문화 되어 있던 것이다. 악의적으로 꺼내고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게 적용한 것이다. 누가 하더라도 반대 했어야 하는 일이다. 비단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작년 시작된 시점에서 정신 똑바로 차린 법조계의 누가 하더라도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방향을 잘못 잡는 과정에서 죽은 것도 많다. 인터넷 문화 가운데 초 악성적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정부와 포털 업체에 의한 임의적 조작이다. 그를 통한 법률권력의 동원도 있다. 그게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가능성이 열려 버렸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가? 김태동 교수는 ‘가짜건 진짜이건 간에 지금은 표현자유에 매달려야…’ 하면서 훌훌 재판정에 나가더니 마침내 가짜 홍길동의 후견인도 되었다. 재판 끝나면 그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그 때부터 천천히 다시 가닥을 잡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 생각했는가? 웃기는 이야기다. 진실을 거짓으로 뒤집어 엎으면서도 바라는 목적만 추구한다는 식의 접근에서 무슨 진리(眞理)이며 정의(正義) 혹은 올바른 세상을 운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의미의 ‘역린’(逆鱗)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나는 박대성 사건 초기 저러한 진보 진영이라 불리는 그룹군의 접근 태도를 보면서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헛똑똑이!! 그냥 자기네가 가는 길이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또 다른 ‘민청학련 사건’ 하나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조작이란 형식 하나를 엉뚱하지만 아주 강하게 만들어주게 되었다. 그냥 고스란히 가져다 바친 꼴이다. 어디에 놀아났는지 이젠 찾지도 못한다고 고개 돌리고 있었다. 그저 이 정권 다 지나면 밝혀질 거야, 지금은 밝혀내기 어려운 일이야, 무슨 증거가 있어야지, 이런 패배주의적 넋두리 말이 나오는 수준에 그친다. 그 때 가서 가능한가? 정말? 어렵다. 더 어렵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런 밝히고 안 밝히고 일차원적 수준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이 아주 더 심각하다. 미래 세대가 활동해야 하는 인터넷이라는 이진법이 어떻게 십진법에 악의적으로 포획되고 통제되며 조작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줘 버렸다. 모르면 이 사건은 다음 단계로 아주 빠르게 더 악성으로 진화할 수 있다. 막을 자신 있는가? 어찌 막는 줄은 아는가? 없지 않는가!! 모르지 않는가!!

아래 진보네트워크 센터의 지난 1월 9일자 논평 전문을 옮긴다. 지금의 상황과 대비하여 과연 어떤 생각을 더 가져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본다. 생각해보길 바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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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체포에 관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논평 전문

미네르바가 체포되었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김주선 부장검사)는 박모(31)씨를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로 지목하고 “공익 해할 목적으로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했다며 7일 긴급체포하는 한편 오늘 오전 중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체포된 네티즌이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전문대를 나왔는지 외국의 유수 대학을 나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오히려 검찰이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의도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정치적 의도는 정부 비판적인 인터넷 게시물을 위축시키려는 것에 놓여 있다고 확신한다.

미네르바 체포와 구속영장 청구는 한국 인터넷 표현의 자유의 한 징후이자 그것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네르바와 관련하여 정부와 수사 당국이 지난해부터 취한 모든 조치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려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어 왔다.

첫째, 우리는 우선 미네르바의 정부 정책 비판 글에 적용된 혐의가 `허위 사실 유포'라는 점에 주목한다. 현행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에 따르면 “①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을 들어 인터넷 여론을 처벌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 낯설지 않다. 지난 5월의 ‘광우병 괴담’ 수사를 떠올려 보자.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정부는 바로 ‘광우병 괴담 수사’에 착수하면서 “화장품으로도 광우병이 감염된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라거나, “5월 17일에 동맹휴업하자”는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허위사실이며 이에 대한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특히 법무부는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을 작성하여 발표하면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광우병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할 경우 처벌될 각오를 하게끔 만들었다. 정부는 대대적인 ‘광우병 괴담’ 수사 끝에 ‘동맹휴업’을 제안한 청소년을 불구속 입건하였지만 1심 법원은 지난 9월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법리를 떠나서 이 사건은 엄포에 가까운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처벌될 각오! 를 하라.”

미네르바 사건의 본질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하여 정부와 수사당국이 체포, 구속에 이르는 강도높은 수사를 벌이고 형사처벌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 정책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허위사실 유포이고 공익을 해하는 행위인가? 국민은 정부의 엘리트 관료들과 상대할 만한 과학적 지식과 경제적 논리로 무장해야만 입이라도 뗄 수 있는 것인가?

광우병 괴담 수사로부터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을 거쳐 미네르바 체포에 이르기까지 그간 정부와 수사당국은 정부 비판적인 인터넷 게시물에 대하여 대대적 수사를 벌여 왔다. 체포나 구속, 형사처벌을 각오해야만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세계적인 탄식거리이다.

둘째, 미네르바 체포 과정에서 미네르바의 실명과 IP주소가 수사기관에 전달되는 과정 자체에 매우 중대한 인권 침해가 존재한다.

이용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실명 정보는 전기통신사업법 54조상의 통신자료 제공 절차에 따른 것이고, 이용자의 IP주소는 통신비밀보호법 상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절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개 조항은 철저히 수사기관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서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전기통신사업법 54조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통제 등 아무런 법률적 통제 없이 이용자의 실명 정보를 마음껏 요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2007년 주요 포털 사이트에 대한 강제적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후 그 남용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달해 왔다. ‘광우병 괴담’ 수사 당시에도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은 ‘안단테’ 등 네티즌들 ‘추적’이었다. 아고라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경찰의 눈에 띄는 비판적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들의 신상 정보는 1시간 안에 그 ID, 가입 날짜, 최근 로그인 날짜, 이름(실명),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 상세한 사항이 제공되어 왔다는 점이 언론에 의해 지적되기도 하였다.(2008. 10.28. 위클리경향 797호)

그나마 통신비밀보호법은 시민사회의 꾸준한 요구에 따라 수사기관이 IP주소와 같은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요청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지난 2005년 개정되었지만, 그 허가 요건이란 것이 수사기관이 ‘필요한 경우’라는 등 매우 막연하여 범죄 관련성을 뚜렷히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덕분에 수사기관에 제공되는 전화번호와 아이디 건수가 연 4백 만 건에 달할 정도로 극도로 남용되어 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번에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하여 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을 의무화하고 위반시 과태료 3천만원을 부과하여 그 수사편의를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자의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프라이버시권과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누리꾼의 체포-구속은 이명박 정부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데 즐겨 사용해온 방식이며 인터넷 시대 등장한 신종 검열 방식이다.

과연 인터넷 시대의 언론 탄압은 다르다. 과거 ‘검열’이란, 공권력이 사전에 책이나 음반, 영화의 내용을 검사하고 그 발표 여부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인터넷 시대 공권력의 발휘는 ‘위축’(chilling effect)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수십만, 수백만 건의 내용 등록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에 대하여 사전에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국가에서는 위헌 논란을 비껴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정권이 선호하는 것은 위축, 즉 자기 검열이다. 특히 수사기관의 수사는 착수만으로도 인터넷 여론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그 휘하의 수사력을 동원하여 국민을 검열하려는 데 대하여 분노해 마지 않으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법원은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을 결코 발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 비판적인 의견에 대하여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에 대하여 수사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한 청취이다.

또한 우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논란 속에서 정부여당이 사이버 모욕죄 도입 등 정보통신망법 개악과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 의무화를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을 관철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있는 정부여당의 술책에 대하여 인권사회운동진영은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며, 온 국민 역시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엄중 경고한다.

2009년 1월 9일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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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