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43. ‘노란토끼’를 모르고 이메일도 안한다?- 중앙일보 서면 인터뷰

담담당당, 2009/12/17

이번에는 박대성이 체포된 후 아주 빠르게 서면 인터뷰를 했던 ‘중앙일보’를 한 번 살펴보자. 그들은 당시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을 했는가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중앙과 관계가 있는 ‘머니투데이’는 그간 꽤 박대성 편을 들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초기에 잠시 사건에 들어왔다가 그 다음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월간조선-신동아-동아일보 본사가 엉킨 상태에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앙일보는 사건 초기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이 사건을 들여다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1월 9일 시점에 이미 박찬종이 이 사건에 들어와 있었다’는 등의 내용 파악 말이다. 이것도 사실 흥미롭기는 하다. 그렇게 동작이 빠른 사람이었던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마치 사건이 벌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짜잔 새롭게 등장한 첫 사건치고는 아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었다. 인권도 표현자유도,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고 여기 저기 출연하는 데는 이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그런데 정말 거의 기다린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래 인터뷰 전문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지금 봐도 중요한 대목들이 꽤 눈에 띄기는 한다.

1월 23일 중앙일보 박대성 서면 인터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468364

1월 23일 시점이었다. 1월 7일 구속 이후 보름이 막 지나던 시점(사실 질문하고 답변을 받은 걸로는 딱 2주 걸렸다) 나온 이 서면 인터뷰의 핵심은 그 이후 서면인터뷰와 직접 인터뷰에서 나온 여러 말들과의 차이가 현 시점에서 확연히 보이는 대목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준비되기 전의 답변이니 여러 엇박자가 나게 마련이다. 그걸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1월 7일~4월 20일 기간 소위 <서면 인터뷰>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방식을 한 번 보자. 앞서 CBS 노컷 뉴스에서도 잠시 보았지만 여기는 아주 구체적이다.

중앙일보는 박씨의 구속 직후 서면 인터뷰를 추진했다. 변호를 맡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를 통해 박씨에게 질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답변은 22일 돌아왔다. 박씨가 구술한 내용을 박 변호사 측이 받아적어 건네온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도 이미 ‘박찬종<->박대성’이라는 창구 공식이 딱 정착되어 있었던 셈이다. 변호인단이 꾸려졌고 민주당의 법률지원단도 있었는데 왜 이런 일은 모두 박찬종이 전담하게 되었을까? 박대성이 희망했다? 누가 확인한 사항일까? 그러나 박대성은 ‘변호사님께서…’라는 말로 늘 박찬종을 지목했다. 면회도 서면인터뷰도 모두 그곳에서 나오는 걸 기정사실화 했다. 진짜 ‘미네르바’가?

사실 박찬종이 했다기 보다는 이것의 실무는 김승민이 모두 처리했다고 보는 것이 정평이다. 그래서 아래 답변 가운데서도 그런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목들도 있다. 박씨가 구술하고 박 변호사가 적는다? 흥미롭다. 서면 인터뷰라는 것은 서면을 넣어주고 자기가 적어서 내놓는 것이지 구술을 받아 적는 건 아니다. 그것을 서면 인터뷰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술이 녹음된 것이 아니고, 또한 그 내용에 대해 박대성이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이 요즘도 종종 벌어진다. 박대성이 그렇게 한다. 김승민이 그렇게 시키나?

-미네르바로 글을 쓰면서,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올라온 다른 글을 본 적이 있나. 세간에서는 미네르바가 여러 명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배우고, 깨우치고, 정보를 취합해 정리한 것이다. 주관적 평가를 글로 표현했다. 글을 올려놓고 거의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닉네임을 미네르바로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자! 이 대목은 흥미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러니까 미네르바 필명으로 올라온 다른 글, 다른 사람이 그 닉네임을 쓰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마치 남(타인)의 이야기 하는 듯하지 않는가? 뭔가 껄끄러운 점도 보인다. 그런데 웃기는 이야기 하나가 불쑥 등장을 한다. ‘글을 올려 놓고 거의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전 지워진 글이 복구되기 전에는 박대성은 그 글을 모두 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또한 김승민도 그랬다는 의미다. 나중에서야 그걸 부랴부랴 챙겨서 본다고 김승민이 말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러나 본질적으로 readme님에 의해 미네르바 필명의 글이 복구되기 전에는 사실 미네르바 필명의 그 현란(絢爛)했던 10월 이전의 댓글(덧글) 토론을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그 글을 쓴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그 때는 이야기 하던 중이었다. 만일 글이 복구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거짓말이 나왔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보관하던 글은 그러한 댓글(덧글)의 향연(饗宴)을 만끽할 수 없으니까.

‘고구마 파는 늙은이’가 되고 난 다음에 댓글(덧글)을 잘 달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답변이 성립된다. 그러나 미네르바 필명 전체에 걸쳐 있는 댓글(덧글)은 상상 초월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박대성은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그 때는 김승민도 몰랐다. 곡마단 전부가 다 잘 모를 때였다.

-당신의 글이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쓰기엔 어려운 글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전혀 어려운 글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해 쓴 글일 뿐이다. 높이 평가해줘 오히려 당황스럽다.”

사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네르바 필명의 글은 단순히 그런 정보를 안다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랬다면 그토록 호응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용해(溶解)되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해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장이 없다는 것에 관해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냥 뭉뚱그려 말한다. 그러나 그가 했던 첫 마디가 여기서는 걸린다. “전혀 어려운 글이 아니다”. 정말 그런가? 미네르바의 글은 일반에게는 어려운 대목이 아주 많았다. 전문가 입장에서도 몇 번 새겨봐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줄 쳐 가면서 읽는다 했다. 이것 때문이었는지 박대성은 말도, 글도 꽤 어렵게 쓰는 것에 필이 꽂혀서 계속 그런 기조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게 아니다. 설명이란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너무 쉽게 해도 안 된다. 딱 그 수준이 있다.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뒤 다른 네티즌과 인터넷 쪽지 등으로 의견 교환을 한 적이 있나.
“일절 없다. e-메일은 열어 보지 않았고 편지도 받은 적이 없다.”

박대성이 잘하는 말이다. 이메일을 열어 보지고 않았고 편지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습지만 이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숱한 이메일이 들어와 있는 ‘계정’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5천 통 이메일을 보지도 않은 그런 계정을 가졌다는 말이 잘 이해는 되나 모르겠다. 여기서 아주 큰 ‘언어적’ 충돌을 일으키는 한 대목이 그 이후 석 달이 지나서 등장한다.

시사인 통권 85호(2009.4.27)에서 다룬 박대성과의 4월 22일자 인터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 많게는 하루에 10편도 쓰지 않았나.
= 사람들에게 이메일(질문)이 왔다. 그걸 확인하다가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다 보니 점점 늘어났다. 무의식적으로 욕설, 비방도 많아지고.

거짓말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다. 이메일이 왔다, 확인했다, 정리하는 차원에서 썼다는 이 과정을 언급한 것은 전적으로 ‘하루 10편도 쓰지 않았나’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전형적인 서툰 임기응변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늘 이런 식이다. 그간 여러 질문의 대답도 자세히 보면 항상 그렇게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완전히 스스로 엮인 셈이다.

-글에서 극사실주의자라고 자주 밝혔는데 무슨 뜻인가. 왜 자신을 ‘고구마 파는 늙은이’라고 했나. ‘노란 토끼’는 어떻게 만든 조어인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적으로 본다는 입장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다. ‘고구마 파는 늙은이’는 친근감의 표시로 썼다. ‘노란 토끼’는 일본 자본을 말하는 것이다.”

박대성이 ‘노란토끼’를 언급한 것은 이것이 아마 끝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노란토끼’의 개념이 머리 속에 설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이 비유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움직이는 메커니즘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2009.2.7 방영)가 취재했을 때, ‘엔케리 트레이드’를 이해하지 못한 것과도 깊숙하게 연결된다. 그 단어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엔케리 트레이드는 일본의 이른바 제로금리 상태에서 벌어진 자금 해외 이동의 핵심적 키워드에 속한다. 그것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노란토끼’를 알겠는가!! 문제는 2008년 하반기의 미네르바 필명의 키워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노란토끼’라는 점이다. 앙꼬 없는 찐빵이 절로 떠오른다.

고구마 파는 늙은이도 여기서는 ‘친근감’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5개월여가 지난 다음, 월간조선과(8월호, 7월 시점 실제 대화)의 인터뷰에서는 또 이렇게 표현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 미네르바 이슈가 한창이던 당시 자기 스스로를 ‘고구마 파는 노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이제 눈에 보이는가!! 인문학은 때로 아주 극심한 거짓말도 즐겨 한다. 그러나 ‘언어’는 참으로 거짓을 말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지금 조금 말을 배워서 걸음마를 떼면서 남의 그것을 공부해 나간다고 해도 이것을 자기 것으로 단기 내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세계라는 경계가 아니라 그것을 충분히 습득하고 깨우치는 지식의 수준을 말하기에 ‘앵무새’는 도저히 완결된 문장으로 언어로 대화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검찰이 모았다는 그 ‘모든 증거’는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이 부분도 진지하게 뒤에서 하나씩 다시 검토해보기로 한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건 전혀 소화되지 못한 현실이다. 조작된 객체는 주체가 될 수가 없는 법이다.

아래 중앙이 취득한 당시의 서면 인터뷰 전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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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박대성씨 서면 인터뷰
2009.01.23 03:06 입력 / 2009.01.24 12:55 수정
“10년간 지식 축적해 쓴 글 … 잡지 기고 K씨 내 글 카피”

미네르바에 휘둘린 대한민국

‘미네르바’ 박대성(31·사진)씨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자신의 글에 대해 “전혀 어려운 글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해서 쓴 글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온라인상에서 참고하라고 올린 것인데, 세상이 시끄러워져 당황스럽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중앙일보는 박씨의 구속 직후 서면 인터뷰를 추진했다. 변호를 맡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를 통해 박씨에게 질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답변은 22일 돌아왔다. 박씨가 구술한 내용을 박 변호사 측이 받아 적어 건네온 것이다. 검찰은 이날 박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박씨 외의 ‘미네르바’는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서면으로 주고받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당신의 글이 왜 사회에서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하나.
“호응을 얻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인터넷 토론방이라는 폐쇄 공간 안에 자기 의견을 게재하고, 참고에 불과한 글들만 올렸다. 오프라인에서의 반응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런 결과가 온 것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있다.”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추측하는 걸 지켜보며 심정이 어땠나. 실제로 금융 전문가들이 미네르바로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두렵지는 않았나.
“다음 아고라 토론방 내에서, 온라인상에서 참고를 하라고 글을 쓴 것뿐이다. 구속 후에 세상이 시끄러워져 당황스럽다.”

-미네르바로 글을 쓰면서,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올라온 다른 글을 본 적이 있나. 세간에서는 미네르바가 여러 명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배우고, 깨우치고, 정보를 취합해 정리한 것이다. 주관적 평가를 글로 표현했다. 글을 올려놓고 거의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닉네임을 미네르바로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월간지 신동아에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K씨가 누군지 혹시 짐작이 가나.
“K씨를 내세워 만든 터무니없는 스토리다. 잡지사 자신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신동아 12월호에 게재된 글은 당신의 글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비슷한 것이 부분적으로 있다. 나의 글을 카피했다고 본다.”

-당신이 1000만원 대출받아 주택경매 펀드에 투자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어떤 계기로 투자하게 됐나.
“기업은행에서 학자금으로 대출받아 생활금으로 쓰고 말았다. 펀드에는 투자한 적이 없다.”

-수사 검사나 영장 발부한 판사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나.
“서운한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판 과정에서 나의 억울함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글이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쓰기엔 어려운 글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전혀 어려운 글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해 쓴 글일 뿐이다. 높이 평가해줘 오히려 당황스럽다.”

-검찰에서는 미네르바 글이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이 있다. 내가 얻은 정보(사설·기고문·통계자료)를 인용하다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난한 자를 위해 글을 썼다”는 당신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당신을 로빈후드라고 말하는 네티즌도 있다. 어떤 이들에겐 당신은 영웅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 것 같아 당황스럽다. 나는 평소에 ‘나라가 있고, 나와 내 가정이 있다’가 아니고 ‘나와 내 가정이 있고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런 심경에서 글을 썼다.”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뒤 다른 네티즌과 인터넷 쪽지 등으로 의견 교환을 한 적이 있나.
“일절 없다. e-메일은 열어 보지 않았고 편지도 받은 적이 없다.”

-글에서 극사실주의자라고 자주 밝혔는데 무슨 뜻인가. 왜 자신을 ‘고구마 파는 늙은이’라고 했나. ‘노란 토끼’는 어떻게 만든 조어인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적으로 본다는 입장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다. ‘고구마 파는 늙은이’는 친근감의 표시로 썼다. ‘노란 토끼’는 일본 자본을 말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좋아한다고 글에서 봤다. 어떤 말을 좋아하나.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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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