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45. 보론 4.- 이진법의 ‘물타기’ 유형 정리

담담당당, 2009/12/18

우리는 이진법(온라인)이라는 세계를 과거 어느 때로부터 잘 만끽하고 있다. 여기를 떠나지 못하는 깊거나 옅거나 중독의 증상까지 느낀다는 이도 있고, 여전히 이메일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도 한다. 조금 시대에는 뒤떨어진다. 최소한 이 사회의 10대, 20대는 이 세계를 자신들이 함께 해온 열린 공간으로 완벽하게 여기는 경향이 짙다. 물론 30대 이상도 이 속에선 많은 자기 식의-어떤 때는 십진법과도 다른-이야기를 하게 된다. 트위터라는 공간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속내를 화끈하게 단문으로 전달하고 받는 도구들도 있다. 그 속에서도 이진법의 토론은 십진법과는 정말이지 다른 속성을 가지는 측면도 있다.

예전에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다. 그러나 이진법에서 ‘말’은 발이 없는 게 아니라 초음속의 수백배로 이동한다. 거의 광속보다 더 하다. 그리고 천리 수준이 아니라 적어도 이 지구상에서는 통신이 연결된 곳에서는 무한대다. 물론 인터넷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기능들의 부작용도 생기기도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 이진법은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걸 부인할 이유는 없다. 물론 십진법은 이진법을 통제하고 포획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특히 한국의 오늘 현실이 그렇다. 이진법 내의 분란은 그로 인해 가장 강하게 조장된 측면도 있다. 물론 이진법 내부에서의 상식적이거나 혹은 비상식적인 갈등도 존재한다. 그 또한 십진법과의 정체성 상충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그렇다. 그건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만 될 일이다.

<토론>이란 한 장르 속에서 이진법은 여러 형태의 ‘언어’를 구사하게 만든다. 이것은 ‘글’로도 또한 ‘말’이나 ‘모션’으로도 전달된다. 물론 그 가운데 ‘침묵’도 있다. 그것으로 교환되는 서로 간의 교감이나 토의, 토론, 혹은 비판이나 혹은 사실관계 전달, 정보의 확산 같은 행위들 속에는 그를 반대하는 이른바 ‘비토세력’도 존재한다. 이건 십진법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을 덮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반대적 대응 행위가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는 아주 좋은 토론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걸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타도어, 역 마타도어 같이 온갖 병법들이 난무한다.

그 중에서도 <물타기>라는 주제 하나를 ‘보론’으로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 본다.

나는 최근 아고라의 여러 글들이 포털 다음 내부나 여러 다른 포털의 커뮤니티로 옮겨지는 광경을 본다. 그들 가운데는 회원수가 많아서 직접적 이진법의 영향력이 아주 큰 곳들도 많다. 그것이 단일 커뮤니티의 위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까지도 찾아간 많은 소위 ‘대응세력’들의 물타기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경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이 드는가? 왜 저런 식의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행위는 직접적이라기 보다는 꽤 ‘은근하게’ 이루어진다. 나는 그걸 <물타기>라는 단어로 일단 정의해본다. 네 박자 가운데 첫 머리의 행위 패턴이다. 주로 댓글들이긴 하지만 요즘은 아예 대놓고 따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별로 주목은 못 받는다. 그러니 댓글(덧글)을 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건 의견을 즉각적으로 마구 섞으면서 의도를 섞기 쉽기에 그렇다.

1) 전문성 포장하기. 슬쩍 ‘전문성’ (법률이니 혹은 기타의 경험 등)을 곁들여 비판하다가 자기 보다 더 전문가가 나타나면 “그렇지 뭐!” 하며 그냥 한 번 이야기 해봤다는 식으로 빠지는 경우다. 이런 예들이 요즘 부쩍 늘어났다. 전문성을 포장한 전형적 마타도어 개입이다. 정치권에서 주로 쓰던 것인데, 요즘은 이진법의 기본 물타기 종목으로 자리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당신이 그걸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정말 이유는 따로 있어!”, 이런 식의 후렴구로도 잘 사용된다. 잘난 체도 꽤 한다. 그러나 한참 동일한 패턴을 보게 되면 금새 수준은 낮게 평가되고 만다. 빤히 보여서 그렇다.

2) 초점을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경우. 예전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던 ‘식사 준표’ 처럼 ‘밥 먹었어요?!’ 하면서 사안 자체를 완전히 딴 곳으로 돌려보려 한다. 이건 맥거핀 효과를 노린 것도 아니고 그냥 뜬금없이 들어온다. 살짝 반응이 올 듯하면 그 다음 이야기를 열심히 이어간다. 이런 말은 실컷 이야기 해놓고 나중에 엉뚱하게 “너무 허무맹랑한가?” 하면서 자문자답을 하기도 한다. 길게 이어가면 소설 한 편을 쓰기는 쓴다. 그런데 엉성하다.

3) 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 이게 참 보기 좀 이상할 정도가 되는 예도 흔하다. 흔히 ‘달과 손가락 보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아예 대놓고 왜 달을 보는가, 하면서 손가락 이야기에 무조건 집중한다. 하나의 문장에서 단어 하나로만 이야기하는 경우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티격태격 하다가 ‘너 왜 반말해!’하고 하는 식이다. 아주 집요하다.

4) 지능적 파도타기. 생각해주는 척 하면서 “이래 봤자 소용이 없다!”는 은근한 패배주의를 주입하려고 하는 경우다. 물론 작년부터 금년까지 벌어진 ‘소통부재’에 아주 진력을 내면서 진심으로 ‘도무지 대책이 없는 정권’이라면서 심경토로를 하는 경우는 있다. 이 경우는 예외다. 그건 물타기가 명백히 아니다. 확실히 물타기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엔 이렇게 툭 던져 놓고 이게 조금 통하면 그렇게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를테면 “다 좋은데, 핵심이 없잖아요!”,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의견 전부를 다 잘 읽어보고 파악한 케이스도 아니다. 일단 이렇게 하기로 작정하고 사안을 말하는 윗글은 아예 보지 않는 예도 흔하다.

5) 단답형만 요구하기. 이건 대한민국 교육이 그래서인지 일단 4지 선다형처럼 세상보기를 하자고 덤비는 경우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자기 패턴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그런데 엉뚱하다. 그런 형태에 답을 해주면 “난 이해 못하겠다”하고 설레발을 쳐버린다. 그리고 집요하게 요구한다. “쉽게 좀 이야기해줘요!”, 이러면서 떼쓰기도 한다. 좀 유치하다.

6) 뭔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이를테면 “맞기는 맞는데 뭔가 (우리 전부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있겠지! 설마!” 하면서 강하게 연기를 피운다. 그러나 정작 그걸 설명하라고 하면 전혀 엉뚱한 이론이 나온다.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이 나온다. 이런 경우는 역 음모론처럼 말을 몰고 가기도 한다. 음모론, 그것도 때로 사실이 되기도 하지만 팩트가 주어진 사안은 음모론이라 하지 않는다. 그 시점까지 못 밝혀낸 일이라 하지.

7) 집요하게 한 사람만 물고 늘어지기. 이런 예들이 종종 보인다. 그 사람(아이디)만 잡고 죽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구분도 않고 마구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인신공격, 비방 수준으로 급속하게 발전한다. 이건 일종의 ‘개판 만들기’ 같은 유형이다. 목적이 그것이다. 원래가.

8) 상황파악도 아예 않고 다시 설명해봐라고 막무가내 나오기. 이건 참 대책이 없다. 물타기 수준에서도 좀 악성에 속한다. 이건 ‘인지’(認知)의 문제와도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맞다’는 것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반박해보라 하면, 그건 그거고 하며 그냥 들이민다. 십진법에 ‘죽여라! 죽여!’ 그런 식이다.

9) 고상하게 아주 ‘고수(高手)인 척’ 해버리기. 이럴 때는 대체로 말이 “내가 그 분야는 좀 아는데…”, “모두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린데…” 하면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이런 경우는 가만히 보면 좋긴 한데, 문제는 이것은 사실이 드러난 사안을 앞에 두고는 논리적이지가 일단 못하다. 이게 물타기의 목적에서는 조금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10) 사안과는 엉뚱한 다른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개똥철학 늘어놓기. 이건 일단 말의 핵심이 없다. 주제와 관계가 없이 마구 횡설수설 해버린다. 종종 그 가운데서도 좋은 말은 있다. 뽑아서 보기는 좀 그렇지만 그림으로 치면 이건 작품이라 해놓고는 뭘 그렸는지도 모르게 해놓고 그냥 초현실주의 딱 이렇게 이름 붙이면 그만인 댓글이다. 그런데 그 주제로 글 한 번 잘 써보라 하면 안된다. 오로지 댓글 달기에서만 이런 유형이 가능한 댓글 전문가다.

11) 이래보라, 저래보라 하며 헷갈리게 만들기. 이건 걱정, 염려를 바닥에 깐다. 심지어는 “옛날 같으면…”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슬쩍 꺼내기도 한다. 그런데 제시되는 방법은 전혀 비현실적이다. 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도 하지만, 실제로는 ‘너 이러지 마!’ 소리를 바닥에 쫙 깔았다는 걸 한 문장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자기 정체성을 포장한다고 했지만 이건 하수라는 걸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 의견도 많다는 식으로 포장해버린다. 아주 약은 수법이다.

12) “설마!” 하면서 선동적 멘트를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던지기. 꽤 지능적이다. ‘그럴 리가 있나!’ 보다는 한 수 높다고 생각하면서 “이거 뭐 하자는 거야!”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속 알맹이는 전혀 없다. 탄식도 토로도 아니고 목적이 뚜렷하게 보여 버린다.

13) 엉뚱한 다른 링크 올리기. 이건 사실 댓글이 아니다. 광고 링크를 올리거나 아니면 이상한 곳으로 가보도록 글과 링크가 전혀 다르게 만들어 버린다. 한참 유행했다. 요즘은 잘 보이지는 않는다.

14) 사안이 뭐건 관계가 없이 무조건 흑백논리, 반공논리, 좌빨 논리를 들이대기. 이거 참 악성이다. 이건 토론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예 아니다. 무조건 그러면 이건 약간 달리 해서 정신병리학적 접근,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느껴질 때도 있다. 십진법에서도 종종 이런 유형을 보지만 이진법에도 이렇게 등장한지 한참 되었다. 요즘도 써먹기는 한다. 그런데 별로 약발이 안 받는다.

15) 썩소 연속 날리기. 이건 주로 기호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 문자기호들을 다 기억은 못하지만 난 무슨 글자인지 잘 알지도 못하겠지만 아는 이들이 보면 그게 이른바 ‘썩소’라는 것이라는 걸 금방 안다. 그런데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토론방에서 토론이 없다면 그건 나무가 하나도 없는 민둥산 같은 것이니까. 이런 냉소, 쓴 웃음은 별로 좋은 게 아니다.

16) 패배주의를 연속화 하기. 이게 사실 가장 무섭다. 패배주의 자체가 사회의 의미있는 능동적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살살 이렇게 부추기는 예들은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자꾸 이진법 내에서도 심지 못해 안달하는 개체들이 많다. 그래서 해당 사안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를테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대놓고 전혀 방향을 전혀 엉뚱하게 가버린다. 물 흐리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견도 아니다. 가만히 보면 이게 바로 패배주의적 접근법을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건 좀 악성이어서 더 문제다. 패배주의! 이것은 능동적 인생에서 선택할 심리적 영역이 아니다.

대충 정리해보니 유형이 꽤 된다. 내가 정리해보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정말 좋은 댓글, 아니면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다시 기회가 되는대로 상세히 유형까지 포함해서 정리를 해보겠다.

이런 유형의 댓글 혹은 글을 쓰는 사람은 <토론>이라는 영역에서는 악성 바이러스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이런 글은 가급적 가만히 무시하는 것이 좋긴 하다. 그도 참고서 보기 역겹다면 적극적으로 그들을 진압하라!! 요즘 알바나 알밥들도 진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스스로들 그리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을 교묘하게 잘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의도를 짙게 가지면서 계속 글질을 하면 얼마나 꼴사나운지를 잘 모르는 듯도 하다.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계속하면 그건 정상적 사고는 아니다. 병리학적 체계 속에서 풀어야 한다. 이진법에는 그런 치료병동이 없을까? 있다면 참 좋을텐데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현상이 깊어지면 이진법의 바로 정체성 그 <닉네임>이 가진 평가표가 정해진다. 그로부터 그는 이런 개체, 저런 개체로 낙인(烙印)이 찍히는 것이다. 이건 십진법보다 훨씬 무서운 측면도 있다. 그걸 잘 모르는 듯하다.

잠시 쉬어가는 틈에 이런 정리 대충 한 번 해본다. 그냥 흘려 듣지는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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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연재글 상당수를 차단 조치했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원해 두었습니다. 원문과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