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22
2009.1.19 재미난 기사 하나가 나왔었다. 박대성 사건 초기 변호인단 간에도 이견이 꽤 많기는 했다. 그걸 포착했던 기사 하나다. 시점을 자세히 보면서 흐름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사건 전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네르바’ 진위, 박대성씨 변호인단도 제각각
http://www.mt.co.kr/view/mtview.php?no=2009011914324943379&type=1&TVEC
그러니까 박재승, 김갑배 변호사를 비롯하여 민주당의 이종걸, 문병호 의원 등 법률지원단까지도 설왕설래는 여전히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론은? 일단 ‘박찬종의 밀어붙이기’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박대성에 관한 접촉 등은 완전 독점한 상태에서 벌인 것이기도 하다.
1월 19일 시점이라면 바로 신동아 2월호가 나온 직후의 일이다. 사실 2월호는 동아일보 본사가 기사를 검열하고 다른 곳들과 협의도 해야 하면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18일에 나오지 못하고 19일에서야 나왔다. 그 내용이 7월 30일, 12월 29일 글은 신동아K 김재식이 쓰지 않은 것으로 조정되어 나왔기에-김재식은 7월 30일 글이 박대성이 쓴 게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게 크게 문제가 된다. 특히 7월 30일의 글이 결정적이었다. 왜 그런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시 IP 이야기까지 자세히 가야 하니 여기서는 우선 진위 조작의 흐름만 집중해서 보기로 한다.
현재 박 씨를 변호하고 있는 변호인단은 크게 박찬종 변호사와 이종걸 민주당 의원 등으로 구성된 민주당 법률지원단으로 나뉜다.
여기에 지난 15일 열린 박 씨에 대한 구속적부심에는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과 김갑배 변호사 등 법조계 원로들이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변호인단의 면면으로는 화려한 진용이다.
즉, 이 시점에 이미 변호인단은 ‘박찬종’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로 변환이 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것은 <조작>의 기초 다지기 수순처럼 이어져 갔다. 법조계의 원로 측에서도 “접견해보니 가짜인 줄 알겠더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도 “문제가 된 2개의 글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글은 썼다고 믿기 어렵다”는 요지의 발언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모두 묻혀졌다. 왜?
바로 월간조선 2월호(2009.1.18)가 확실하게 조작에 기여를 하게 된다. 그것은 100% 조작이 된 기사였음이 나중에서야 밝혀졌지만 그래도 월간조선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좋은 일이다. 끝내 죽자고 하자면 계속 그렇게 해도 좋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박찬종은 서서히 발언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일단 논쟁 속으로 사건을 흘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저기 인터뷰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다.
2월 초 시점이 사실상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그 때 동원된 언론을 가만히 보면 이건 아주 난리통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CBS 노컷뉴스 2월 4일자, 2월 5일자, 머니 투데이 2월 5일자, 시사저널 2월 5일자 박찬종 인터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2월 7일), 경향신문(2월 10일), 월간조선 (2월 18일) 등으로 쭉 이어진다. 모두가 박대성 미네르바 만들기에 앞장 선 대열들이다. 꼭 무슨 군단(群團)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아주 중대한 결함(缺陷)들은 당시에도 곳곳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makefile님이 밝힌 검찰 수사의 1월 19일을 정점으로 하는 조작에 관한 기술적인 견해를 반드시 한 번 보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술적 조작의 형태로 움직이면서 다음 수순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선전술이 동원되었고 마타도어로부터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이것은 기술적인 조작과 ‘곡마단’의 관련성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단초(端初)를 제공한다. 왜 그랬나? 바로 이 부분이다.
[연재] 미네르바 사건 이야기 2부 9편 – 서울중앙지검 마조부의 조작수사
http://blog.daesan.com
시사저널 박찬종 인터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31
그러나 박찬종은 이걸 가지고 마구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건이 모두 갖추어졌다는 소리였다. 그게 바로 1월 19일로부터 2월 초순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 정도 되면 확실히 기선을 잡고 들어가겠다는 선전포고 상황이 된 것인데, 바로 이 장면에서 이른바 1월 초 중순에 있었던 이른바 ‘진위논란’은 약간 뒷걸음을 치게 된다. 박재승 변호사가 ‘민청학련 사건과도 같은 조작’을 말했지만 그건 박찬종의 언론 공세에 밀린 꼴이 된 셈이다. 그 시점을 다시 거꾸로 돌려보면 확실히 ‘박찬종’은 이 사안 자체를 대단히 면밀하게 사전 준비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물론 ‘여러’ 협조들도 받았다. 언론들이 그에 가세도 했다. 누구 지시인지, 협조부탁인지는 나중에 따져볼 일이다.
그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 바로 경향신문 2월 10일자 기사였다. 그러니까 진보언론에서조차 박대성은 유일 미네르바로 등극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봐도 좀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오판 하나가 가진 영향력은 이렇게 크고 무겁다.
[추적]“신동아 K 미네르바 가능성 0.001%”
보안전문가들 지적, 본지 ‘미네르바’ 아이디로 접속 박대성씨 IP·실명 확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9271&pdate=위클리경향-811호 / 2009 02/10 위클리경향 811호
2월 5일자 박찬종의 시사저널 인터뷰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들이 몇 가지 눈에 띈다.
-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K씨의 기고문과 인터뷰 기사가 실린 <신동아> 12월호와 2월호를 읽어본 소감은?
= <신동아> 12월호에 글을 썼다는 K씨의 글 쓰는 방식과 미네르바 박씨의 글 쓰는 스타일이 자세히 보면 다르다.
이제 박찬종은 확실히 ‘글 쓰는 스타일’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신동아K가 그 시점 이진법에서 다른 글을 썼던가? 비교할 대상마저 없는데도 문체 분석가처럼 굴었다. 물론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잘 알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포털 다음이 작년 9월 시점에 이미 박대성과 여러 차례 통화도 했고 이메일로 신동아까지 포함한 취재 요청이 있었다는 그야말로 대 사기극에 해당하는 CBS 노컷뉴스 박대성 인터뷰가 함께 2월 5일 등장했다. 이것은 앞서 분석하고 증명, 검증한 바와 같이 모두 ‘거짓’이었다.
미네르바 朴씨, ‘신동아’가 인터뷰 요청했었다. (2009.2.4)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55065
미네르바 “글 두 개 썼다고 교도소에 가두나” (2009.2.5)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56019
박찬종의 시사저널 인터뷰를 좀 더 살펴보자. 아주 중요한 발언 하나가 등장한다. 지금 시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보면 그건 거의 ‘공갈’(恐喝) 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신동아> 인터뷰 기사에 대해 별도로 대응할 계획인가?
= 미네르바 변호인단이 당장 <신동아> 기사에 대응을 하게 되면 이번 사건의 본질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신동아>는 공론 기관이기 때문에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바꾸어야 한다. 지면을 통해서 공개 사과부터 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박찬종은 신동아가 태도를 바꿀 수 있고 또한 바꾸어야 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뭘 믿고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바로 그 작업을 다른 조작의 기획그룹, 기획자에게 외치고 있는 듯한 태도가 아니었던가? 딱 그렇게 코스를 잡아서 갔다. 그 바탕에는 월간조선을 꿰어 차고 앉았다는 자신감에다 CBS 노컷뉴스에다 포털 다음, 그리고 방송(SBS)까지 둘둘 엮어 둔 상태이니 더 이상 밀릴 바는 없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낸 듯했다.
- 검찰이 미네르바로 지목하고 있는 박대성씨는 <신동아> 기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 박씨는 자기가 인터넷에 쓴 글을 ‘가짜’라고 하니까,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황당해하고 있다.
- 구속된 이후 박대성씨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 처음 구속될 때만 해도 혼란스러워했고,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런데 지난 설 연휴 전에 접견을 했더니, 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죄를 지은 게 없습니다. 순수한 동기에서 글을 쓴 것입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소설 쓰느라 좀 힘들긴 했겠다 싶다. ‘쓴 글을 가짜라 했다?’, 이건 무슨 어법이었을까? 정말이지 황당하다.
그리고는 완결을 위한 쇼 판이 벌어진다. 피니쉬 블로우였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는 박대성은 자기가 쓴 글이 문제가 된 2개의 글(7월 30일, 12월 29일)뿐만 아니라 미네르바 필명 전부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글의 숫자가 오락가락 한 건 기본이었다. 100개로부터 500개로 다양하게 나왔다. 박대성의 주장이 아니라 그건 박찬종의 모션에 들어간 것이기도 하다. 서면 인터뷰라는 것이 모두 그가 구술로 받아 적어온 것을 정리한 것이었으니까. 구술(口述)? 솔직히 무서운 이야기다. 그래서 박대성은 ‘순수하게 글을 쓴’ 청년으로 돌변한다. 순수? 거기서 다 죽었다. 그리고 다시 월간조선이 개입하게 된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56061
이제 모든 변호인단, 법률지원단의 사람들은 박찬종의 ‘입’만 쳐다보는 상태로 모드 전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위헌제청을 비롯한 작업은 박재승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의 다른 쪽에서 진행된다. 재판이 이어지고 그에 박찬종은 개인의 ‘표현자유’라는 문제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서 박대성을 전 국민의 표현자유를 위해 장렬하게 감옥에 간 ‘순교자’처럼 밀어붙이게 된다. 그 상태에서 신동아K 김재식은 커밍아웃을 하고 동아일보는 후속 기사를 준비하기 보다는 사과문부터 게재한다. 박찬종의 저 ‘공갈’급 발언이 한 치 틀림없이 <그대로> 먹힌 것이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되어 버렸다.
그에 그 엉터리 진상조사 보고서라는 것도 내고, 다시 사과문까지 실어 버리니 이제 ‘박대성=유일 미네르바’라는 공식은 완전 정착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진위논란은 수면 아래로 감추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시도 박대성은 기본적으로 분명한 가짜라는 이야기를 수 차에 걸쳐 했지만 조작에 가세한 곡마단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주 힘이 세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사회 전체도 가세했다. 김태동 교수가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등장을 했다. 거기다가 많은 이들의 ‘침묵’도 사실은 직접적 개입이었다. 묵인(默認)이었으니까. 그 때 우리 사회는 사실상 한 번 아주 험하게 죽어버렸다.
여담이지만 재판에 참여했던 변호인단의 모 변호사는 1심 재판 후에 사석에서 “박대성을 도저히 진짜라고 믿을 수 없다”라고 몇 시간짜리 하소연을 했지만, 이미 그가 다시 진위논란을 꺼내어 박찬종의 페이스를 뒤집기에는 버스가 떠난 다음의 일이었다. 정작 그 변호인단에 속했던 다른 사람들마저도 진위논란은 2월 이후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는 게 오랫동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용기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밝혀지기 어려우니 정권 지나고 보자고 하는 식의 완벽한 패배주의적 발상법이었던가?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4월 20일 무죄판결로 다시 나온 박대성은 여러 각도에서 도망칠 궁리를 하는 듯 했지만 분위기를 딱 짐작하고는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진위논란을 다시 꺼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했는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곡마단 중에서 박대성으로 이런 저런 사업화를 기획했던 브로커적 접근이 박대성의 진위에 대한 논란을 더 부채질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무래도 가짜가 진짜 행세하기 쉬운 게 아니다.
말이 많아지면 어디서건 허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특히 미네르바 필명의 글은 꽤 난해한 구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서는 완벽한 이미테이션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거기다가 단순히 글의 스타일을 베끼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속에 든 정보량을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적용해가면서 소화하기는 무척 벅차다. 그건 절대적으로 경험과 정보, 메시지, 언어라는 각도에서 모두 접근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박대성은 그 모방 행위 자체에 전혀 성공할 수 없는 객체였다. 객체가 주체 노릇을 해보겠다 덤비니 여러 구멍들이 쑹쑹 뚫렸다. 그런데도 용케 이리저리 임기응변으로 메우고 지나갔지만 체포 당시의 바람몰이와는 전혀 다르게 ‘진위논란 사건’은 이미 다른 단계로 돌입하게 되어 있었다. 그건 딱 구조적인 문제니까. 이 <무탄초난(毋憚初難)> 연재는 바로 그것을 반드시 첫 단계로 설정하게 되어 있었다. 몰랐던가? 그럼 이제라도 알아라!!! 잘!!!
이제 변호인단의 역할은 헌법재판소에 들어간 위헌제청 문제 이후엔 사라지게 된다. 박대성의 2심 재판도 사실상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려버리면 별무 소용이다. 검찰은 항소를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또한 별로 의미가 없다. 이제 그 이전 ‘벌였던’ 일들이 새로운 사건이 되는 일만 남았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가짜 홍길동으로 홍길동 재판을 했다는 오명(汚名)을 이 사회 구성원 전부가 다 안아야 하는데, 그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말이다. 변호인단? 아니다. 결국 이에 관련된 ‘곡마단’은 하나씩 모두 그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제이자 과제가 된다.
* 덧글 하나; 여전히 올리는 글이 좀 글자체와 색채 폰트가 뒤죽박죽으로 됩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저의 의도는 아니니 감안하시고 천천히 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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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