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09/12/26
2008년 말 참 묘한 시점에 탄생한 이상한 조직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박찬종’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올바른 사람들>이다. 조직은 분명 정치 세력 흉내를 낸 것인데, 그 색깔 자체는 박찬종 한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들러리를 쓴 곳이라는 느낌도 든다. 5선 의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다가도 정치를 떠났다 하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정치에 돌아오려는가, 너무 노년에 이렇게 하는 게 보기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다시 봐도 시기가 너무 교묘하다. 2008.10.29 시점에 발기인 대회를 치렀다. 발기인 총수는 1756명이라고 나온 곳도 있고 보도자료에는 2008.9.1~10.27 사이에 2천명이 넘었다고도 한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이름은 없는 듯하다.
‘올바른 사람들’, 발대식 보도자료
http://blog.daum.net/justicearmy/7642103
성향이 어느 쪽이 되었건 별로 구분이 잘 안되니 딱히 상관할 머리도 없다. 그냥 하나의 단체로 보기만 하면 되니까. 여러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특별하게 주목될만한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학계, 사회계의 인물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내건 모토는 꽤 선정적이고 정치적이었다. 이를테면 <당면과업>으로 내건 것을 보면, 이런 상당히 구체적인 것을 혁신이라 내놓았으니까.
여의도식 정치를 혁파하고 새로운 국민정치의 틀을 구축하기 위한 입법청원운동을 전개한다.
1)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공천은 철저한 상향식 전환
2) 국회의원 정수 299명에서 200명으로 축소
3) 국회의원의 자율권(헌법46조)강화
4) 국회, 국회의원의 예산 사용내역 공개
5) 연중 국회개원, 국정조사와 청문회 활성화, 1회성 몰아치기 국정감사 폐지, 감사원기능의 국회이관
6)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폐지, 법정당원의 요건강화, 당비, 후원금에 대한 세액공제제도를 소득공제제도로 전환
7)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 의원후보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8) 지방의원에 대한 예산지원 축소, 삭감
9) 대통령후보의 정당공천은 법정당원과 국민에 의한 투명한 경선제로 개혁
그러니까 개혁과제로 내건 것이 1) 국회의원의 특권 혁파, 자율권 강화, 2) 정당의 특권 해체, 3) 지방자치선거 개혁, 4) 대통령 후보의 정당공천제 개혁, 5) 사법풍토개혁 같은 정치일색이었다. 언뜻 봐도 정치 개혁을 추구하는 단체이고 또한 발기문의 헤드라인 자체가 “정치개혁 못하면 민생경제안정, 일류국가건설은 무망(無望)하다”는 걸로 시작도 했다. 여기서도 ‘일류국가’라는 단어가 나오니 기분이 좀 언짢다. 무슨 나라에 일류, 이류가 있나! 국가냐 국민이냐에 국가 일부 기득권의 행복이 국가, 국민의 행복이 되지 못하는 나라가 되면 그걸 등급으로 따질 수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다 쓸모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사람들 창립 발기문
http://blog.naver.com/landcore/90063663846
본래 2009.1.20에 1차 회원 대회를 열겠다 했지만 소식들을 뒤져봤는데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블로그에는 이걸 옮겼다가 지워 버린 곳도 꽤 많았다. 1년 여가 되었으니 기대라도 조금 했다 바로 실망한 사람들 중에는 능히 그랬을 법도 하다. 이미 지난 1월 초 시점 정도부터 박찬종은 박대성 사건에 완전 밀착형 스탠스를 구축했을 때의 일이니까 아마도 이런 일에 신경이 갔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 홈페이지로 내걸었던 곳(www.jps.or.kr)은 열리지 않고 있으니 세세히 확인도 어렵다. 그냥 박찬종의 블로그로 사용하는 곳(http://blog.daum.net/justicearmy)을 통해 그간 소식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대개의 정치결사들이 그렇지만 ‘올바른 사람들’이란 단체도 시작에는 아주 화려하게 출발을 했는데 정작 첫 일로 잡은 것이 ‘박대성 사건’이라는 점에 사람들은 약간 의아해 했다. 거기다가 박찬종은 올바른 사람들의 일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변호사 자격증을 사용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지 모르게 박대성 변호인단을 거의 처음부터 합류해서 이끌어갔다. 거기다가 이상한 채권추심, 법조 저질 브로커 경력의 사람이 아예 동업자처럼 늘 매 장면마다 마치 주인인 양 등장하니 그 또한 아주 요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월간조선 8월호는 그를 ‘박찬종 전 의원 보좌관’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관(官), 그 단어 함부로 쓰는 게 아닌 법인데 말이다. 그런 저런 일들에서 점수 그냥 마구 깎아 먹는다.
‘표현자유’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가 소위 인권을 내걸며 목소리를 높일 일도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정작 박찬종의 이력에서 그런 비슷한 것을 최근에 찾기란 쉽지가 않다. 언론에 좀 튀는 사건들에만 여지없이 있다. 1997년~2007년까지의 활동 내역은 이력 소개에서는 늘 빠져 있고 여러 군데 자료를 뒤져도 잘 나오지 않지만 그는 2000년 일본 게이오대학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썼던 여러 편의 칼럼을 공개한 것으로 봐서는 ‘게이오’로 가 있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이다. 또 ‘게이오’다. 그곳 참 많은 한국의 인물들이 1년이건 2년짜리이건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다녀와서 엉뚱하게 변한 인물들도 꽤 된다. 사상이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 개조된 듯한 냄새까지 풍기는 사람들도 있고 하여간에 다양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5선의원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합격
전 한나라당 상임고문
1984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 대학생 변론
1985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 대학생 변론
1985 고대앞 시위사건으로 구속, 3년6월 변호사 업무정지
1987 아키노자유평화상 수상
1997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7 BBK사건 김경준 변론
2008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인권변호사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내걸면서 대체적인 예로 김명호 교수 석궁사건, 그리고 BBK 사건의 김경준 변론을 주로 들고 있다. 그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권변호사라고 하지만 대개 사회에서 잘 알려진 굵직한 일들 이를테면 BBK, 박대성 사건, 박연차 사건, 그리고 심지어 동방신기 사건 등에까지 개입되었다는 걸 보면 쫓는 각도는 그런 쪽이 아니었겠나 싶기도 하다. 매스 미디어적이고 스폿 라이트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정치인의 성향인가? 그러나 내 놓는 정치적 발언도 다양하지만 솔직히 혼란스럽다. 뭔 주장인지 모를 대목들이 너무 많다. 이랬다 저랬다 하니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물타기 전문 정치 외곽세력 혹은 발언 통이 되어 있는 건가? 그런 측면도 정말 무시하기 어려운 듯하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박대성 사건에서 받은 ‘주목’(注目)을 바탕으로 영역이 확대된 것이라는 사실에는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박찬종은 왜 박대성 사건에 뛰어든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거기에 개입한 것일까?
모 일간지의 내부 정보보고와 실제 현상에서도 보면, 박찬종은 박대성 체포 직후인 1월 9일 이미 이 사건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1월 7일 체포지만 사실 일반에 알려진 것은 8일, 그리고 다음날인 9일부터라면 아주 순발력이 빠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개입된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가 그 이후 보인 여러 태도들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박대성을 유일 미네르바로 만들지 못해서 안달을 부렸다. 아예 초기부터 그리 작정하고 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앞서 그 과정들을 쭉 훑어보았지만 이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히 박대성은 곁에서 하나씩 관찰하면-아니 질문 몇 가지만 던져보면- 쉽게 가짜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고 보면, 그가 박대성이 가짜라는 주변 변호인단의 목소리와 여러 현장의 경제 전문가 그룹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를 미네르바 ‘만들기’에 온갖 비상식적인 활동들을 전개한 것이 과연 ‘인권변호사’라는 그 이유 하나뿐일까 생각하게 한다. (박찬종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공인회계사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그리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박대성이 스스로 미네르바 <‘되기’>에 노력한 것보다는 박찬종의 미네르바 <‘만들기’>로 탄생했다는 건 삼척동자도 금새 알 수 있는 사안이니까. 그 놈의 ‘만들기’로 인한 폐해가 너무 크니 탈이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경력(올바른 경륜의 표현이 아니라고 본다) 등을 통해 얻어진 인맥, 경험들을 이 사건에 아주 적절하게 잘 악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신문, 방송, 포털업체를 비롯한 검찰까지 이 사회의 주요 그룹군을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아무리 박찬종 이름 하나 내건다고 이런 조작사건을 혼자 다 했겠는가 하는 판단에서 보면 뻔하게 들여다 보인다.
그래서 확실히 <배후>(背後)를 말하는 것이다. 박대성이 혼자 ‘병풍’을 치지 못하듯이 박찬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에서 지난 며칠에 걸쳐(12월 22~25일)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는 참으로 재미난 글들이 올라온 일이 있었다. ‘홍길동회초리’라는 닉네임이 김철균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얻은 정보라고 하면서 누군가의- ‘K’가 누군가?- 소환을 운운하는 대목이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저 닉네임은 바로 올바른 사람들, 박찬종의 사건조작 동업자인 김승민의 것이었다. 그 정도 수준에서 김철균 비서관과 직접 연락한다? 그럴 정도면 이들 관계는 무슨 사이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박찬종이 박대성이라는 가짜 개체를 유일 미네르바로 만들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그냥 사적 이익이었던가, 아니면 노년의 과욕이었던가, 혹은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던 건가? 이런 점은 본인이 아니니 알 도리는 없다. 심리적인 것까지 어찌 타인(타자)이 알 수 있겠는가 마는 ‘만들기’를 공짜로 하지는 않았다는 건 그 이후 활동에서 꽤 짐작은 된다. 자세한 건 이후 훑어보기로 한다.
지난 12월 3일 부산 벡스코에서 박찬종, 박대성은 경제 강의라는 걸 했다. 물론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앞세운 순회 공연 같은 것이었다. 김승민과 박대성은 미국도 다녀오고 미국 부동산에 대해서도 떠들었던 적이 있고- 난 무슨 코미디 하는 줄 알았다- 그간 이런 경제 강연이라고 진보단체에서도 몇 차례 했다고 들었다. 도대체 뭔 이야기를 했을까? 이미테이션 경제를 말한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강연 원고 한 번 제대로 올라온 적이 없으니 파악해볼 길은 없다. 그걸 듣고 박수친 사람들, 미안하지만 좀 깊게 착각들 했다. 박대성의 책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소위 질 떨어진 ‘짝퉁’을 제대로 감상하신 꼴이다.
2009.12.3 박찬종, 박대성의 부산 벡스코 강의 관련
http://blog.daum.net/justicearmy/7642103
12월 3일 시점이라면 내가 지난 11월 20일 박대성 사건에 관한 <무탄초난> 연재를 시작한 이후 약 2주가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그리고는 12월 4일, 백지연-박대성 간의 케이블 TV 대담(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도 있었다. 이른바 구치소 출소 200일 기념 대담이라는 것이었다. 뭔 날짜 붙일 게 없어서 조작으로 시작한 구치소 나온 것도 기념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 시점 참 교묘했다. 그 프로그램 누가 추천했을까?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PD가 기획한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런 자리 한 번 만들자고 추천 혹은 압력을 넣었을까?
역시나 지난 1월 7일 전후 벌어졌던 ‘조작의 행동원칙’은 전혀 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는 워낙 연속성, 집중성이 강화된 상태이다 보니 박대성 가짜 미네르바 조작사건에서 박찬종은 절대 한 발자국도 빠져나갈 위치에 있지 않다.
사실 1997년 이후 이렇다 할 정치일선에서는 완전히 죽어버린 노물(老物) 취급을 받던 이, 그리고 정치적 발판도 새롭게 가지기 어려운 상태의 인물이 새로운 정치적인 세력화에 나서고 혁신을 주창한다는 게 쉬운 일이라 믿는 사람은 없다. 무슨 특별한 정치적 각광을 받는 사건이나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박대성 사건은 확실히 과히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주도적으로 움직일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사건 초기 진짜 미네르바라면 박찬종을 자신의 전담 변호인으로 선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박찬종의 정치색깔도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衆評)이고 보면 전혀 이런 상황이 그저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여 줄만한 조화로운 구석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 아주 현실적인 결합이 표면적으로도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이를 앞서 언급한 박대성 가짜 미네르바 조작사건의 관점에서 보자면, 박찬종은 조작이란 개념을 모르고 이 사건에 뛰어들 수 없도록 ‘구조화’ 되어 있었다는 걸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 사건에서 역할을 하도록 협조요청(사실상은 거의 담합이고 지시였겠지만)을 한 측은 누구인가를 파악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당연한 프로세스다. 박찬종의 입장에서 박대성이 가짜인 걸 몰랐다고 말하는 건 손가락 몇 개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까. 그냥 순진한 청년 운운하면 하늘에서 벼락맞을 일이다.
자! 이 지점에서 올바른 사람들, 박찬종, 박대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과연 박대성 사건에 나서달라고 했던 이가 누구이고 그 시기는 언제였을까 초점은 맞춰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박찬종의 입으로 혹은 그 협조 요청자, 지시자의 입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면 파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게 드러나지 않는가? 그것도 아니다.
얼마 전 ‘홍길동회초리’라는 이름으로 박찬종의 바로 수하인지 아니면 공동협력자인지 모를 김승민이란 인물이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중 ‘IP 기록’은 바로 포털 다음이 아니라면 내놓을 수 없는 미네르바 필명의 로그인 기록이었다. 사실 그것이 외부로 저렇게 나온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김승민 본인이 흘렸다면 이건 재판 기록의 유출과 관련된 것이다. 포털 다음의 입장에서는 제공한 자료가 재판용이지 김승민이 어디든지 사용하라고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최종 책임은 박찬종에게 있다. 그리고 12월 22~25일의 ‘홍길동회초리’의 여러 글들-지금은 다 지웠다-에서 언급된 정보원, 통신망들도 있다. 서로 관계가 없나?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1차적인 것은 바로 포털 다음과 박찬종 간의 협력관계다. 당연히 조작의 공동 정범이기도 한 포털 다음은 박찬종과 그런 밀착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2월 4일, 2월 5일자의 CBS 노컷뉴스 기사에서 드러났고, 2월 5일자 시사저널 박찬종 인터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포털 다음을 빌미로 해서 박대성을 미네르바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바로 그 장면이 있었다.
“다음도 수 차 전화했다 하니 박대성은(박대성이야말로) 진짜 미네르바다”, “신동아도 다음에다 인터뷰 요청하지 않았나!” 라고 박찬종이 외친 바로 그 대목에 주목한다. 포털 다음이 알아서 그를 지원했나? 아니면 조작 사실에 따른 협박도 가능했었던가? 미리 발목이 잡혀 있었으니 말이다. 공범끼리라 하더라도 이럴 때는 솔직히 너나 없이 나 살자고 덤비는 꼴도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당시 포털 다음은 누구랑 전화했느냐 물으니 박대성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바늘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구도>가 정해진다.
확연히 보이는 대목이 박찬종-석종훈(당시 포털 다음 대표) 간의 협력 구도가 있었고 심지어는 김승민-정지은이라는 구도 또한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니 김승민은 석종훈에게도 능히 통화 짓을 했을 테니 김승민-석종훈 구도도 존재한다. 참 꼴이 사납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석종훈-김철균(현 국민소통비서관)의 관계로 본다면 이건 박찬종-김철균은 거의 기본이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것이 지시적 관계이건 협력적 담합이건 간에 말이다. ‘홍길동회초리’의 글에서 본다면 김승민-김철균도 있다. 이것도 참 꼴이 아주 사납게 보인다.
그리고 검찰과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1월 시점에서 기소되기 전의 상태에서 박찬종은 박대성이 아니라 검찰 측의 입장에 서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월 19일 시점 검찰 마조부가 미네르바의 ID 계정 문제를 언급하고는 이를 외부에서 시연하는 것을 1월 22일 박찬종-김승민에게 맡긴-그들 간의 협력에 의한 내부 업무조정 된 걸로 봐야 할 거다-사실이다. 사건 이후 2주 만에 등장한 ID였다. 어찌 설명해도 상식 밖이었다.
Makefile의 미네르바 사건 연재 2-9
http://blog.daesan.com/2009/12/22/minerva-2-9-fabrication-by-attorney-office
이건 당시에도 참으로 우스운 광경이었다.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무죄입증 해서 꺼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사실 변호사는 어떻게든 논리적으로만 충족되면 무조건 의뢰인을 빼내는 법률기계가 아니던가!- 오히려 죄인이라고 아예 만방(萬方)에 이야기하고 그걸 시연회까지 했다는 점은 기괴한 장면이었으니까. 코미디는 아니었다. 분명.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바로 이것을 검찰이 직접 기자회견이니 뭐니 해서 언론 공개한 것이 아니라 박찬종-김승민이 했다는 점이다. 검찰이 현장검증, 그리고 증거 시연을 하는 건 사건의 속살을 확인시키는 과정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이 사건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그러나 검찰이 직접 그렇게 한 적이 없다. IP 현장검증, ID 접속시연 자체가 벌어진 바가 없다. 그러니까 검찰-박찬종 간의 커넥션은 당연히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당시는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 김주선 마조부장이 업무 파트너였고 그 이후 바뀐 인물들과도 또 깊게 연관을 맺게 된다. 변호사가 아니라 ‘검찰 별동대원’이었던 셈이다.
Makefile의 미네르바 사건 연재 2-6
http://blog.daesan.com/2009/12/10/minerva-2-6-attorney-office-collaborators
겉으로 보기에는 법정 내외에서 치열한 법리 싸움을 한 듯하지만 이건 사실 거의 ‘쇼’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검찰에서 박대성이 가짜라는 걸 몰랐을 턱은 전혀 없다. 당장 IP 시연-박대성의 집에서 해보는-만으로도 금새 드러난다. 검찰이 조용히 박대성 집에 찾아가서 그걸 해봤을까? 그도 아닌 듯하다. 이미 처음부터 해볼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오히려 이를 감추는데 협조자로 박찬종이 등장했고 박대성의 미네르바 입증이 아니라 검찰의 ‘박대성=미네르바’ 입증과 주장의 선봉(先鋒)에 서준 것이 그와 그의 수하- 나는 동업자라 본다- 라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악은 아주 쉽다. 초등학생도 이 정도면 여러 관계도의 다이어그램 정도는 쉽게 그린다는 말이다.
그 밖에도 꽤 많은 부분이 광범위하게 조작을 위해 실행되었다.
당장 월간조선 2월호, 3월호에 있어 박찬종과의 담합은 이미 증명되었다. 100% 거짓을 만들어서 기사를 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은 조작의 인지로부터 출발된다. 월간조선의 김연광 전 편집장, 김용삼 편집장, 그리고 관련기자와 박찬종/김승민의 관계다. 조작을 벌였으니 다 공범이다. 그리고 SBS의 박대성 집에서의 IP 시연도 완전한 조작 방송이었다. 그 또한 조작인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컷뉴스니 혹은 박찬종이 구술로 받아 적어온 박대성의 구치소 시절 내놓은 소위 서면인터뷰는 글자 그대로 그 내용 속의 모순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선 것이 없을 정도다. 이 모든 일에 박찬종/김승민은 개입되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박찬종-사실 김승민까지 포함된다. 한 셋트니까- 은 이 조작사건의 <특급 수괴급(首魁級)>이라고 보는 게 옳다. 증거(證據)라는 형식적 산물이 문제가 아니라-그 또한 이 사회에 모두 제시되어 있다- 이 정황에서, 그리고 모든 상황 증거 자체에서 피해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철균 정도에서 박찬종에게 협조요청을 했다고 이런 조작사건이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박찬종이 앞서 나갈 생각을 했을까? 그 또한 상식적이지 못하다.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화려한 조명에 취해버린 연예 지망생처럼 정치계의 일선에 주목 받는 것 하나만으로 그랬을까? 그건 너무 약하다. 도대체 사적 이익은 누가 그렇게 챙겨줬을까 하는 대목이 여기서부터는 그 다음 이야기로 나올 대목이 된다.
김승민이란 인물에 대한 세간의 정평은 ‘돈 안되면 절대 안 한다’는 것이었는데 역시 저작권이니 뭐니 해서 덤벼들었고 고소 고발을 남발도 했다. 어설픈 채권추심 방식의 고소 멘트니 고소 같은 것들에 아주 꼴사납고 진력이 나기도 하지만 자기 이름에다 박대성 이름까지 더한 꼴을 만들어낸 것이니 시궁창처럼 흘겨 볼만은 하다. 목적이 아주 불순하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거기다가 박대성은 12월초 백지연과의 대담에서 ‘미네르바 펀드’ 운운하고 있었으니까.
좋은 이야기다. 진짜라면 해봐도 좋겠지. 그러나 가짜가 저렇게 하는 게 바로 추구하던 사적 이익의 전부일까를 새삼 따져보게 되는 거다. 그 정도는 아닐 거다. 전체적으로도 이 상황은 ‘초(超) 특급 대 국민기만 행위’에 해당한다. 그 모든 중심에 ‘올바른 사람들’이란 조직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있다. 그 놈의 ‘홍길동회초리’, 아직도 가짜 홍길동의 회초리가 제대로 먹힌다고 보나!! 진짜 몽둥이로 먼지 풀풀 나게 맞을 날이 곧 온다!!!
‘올바른 사람들’이란 좋은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면서부터 정작 전혀 올바르지 못한 조작사건으로 첫 걸음을 뗀 장면을 우리는 거꾸로 본다. 안타까운 게 아니라 그릇된 인물들의 무지막지한 맹동(盲動)에 분기가 한없이 치민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더 자세하게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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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