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77. 10가지 접근법과 실체확인의 인지 경로

담담당당, 2010/01/07

10가지 접근법과 실체 확인의 인지 경로; 사악한 시도의 원인과 목표

작년 아고라 연재 글을 쓰면서 나는 인문학적 접근법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그것은 숱하게 많은 사실(팩트)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하나의 완성된 입체로 볼 것인가 하는 공부와 같다. 나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연재가 길게 건조하게 이어지는 것은 여기에서 가급적 촘촘하게 사실관계를 모두 다 담도록,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기록은 아주 건조한 듯 보이지만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하여, 그리고 이 사건이 가진 함의(含意), 나아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등으로 내용은 이어진다.

그 기준은 아래와 같은 이런 것을 기본적 잣대로 한다.

  1. 팩트(fact)는 무엇인가?
  2. 무엇이 과연 '문제'의 초점인가?
  3.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4. 무엇을 위하여 이런 사태는 진행되고 있고 진행방향을 가지는가?
  5. 항상 잊어버리는 첫 출발점(사안의 촉발점)은 어디였고, 그것은 어떻게 변해오고 있는가?
  6. 그에 대한 대응 군(群)의 논리변화는 어떤 것이었는가? 논리적인가, 감성적인가, 우기기인가, 아니면 은폐나 엄폐적인가?
  7. 묻혀지거나 가리워진 부분은 무엇인가?
  8. 무엇을 보아야 하고, 또 무엇을 보지 않아야 하는가? 무엇을 들어야 하고 또 무엇을 듣지 않아야 하는가?
  9. 무엇을 배울 것인가?
  10. 이 일로 인하여 진정 놓치고 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워낙 복잡한 세태(世態)에 이 한 가지 사건에 저렇게 10가지씩이나 잣대를 꺼내 톺아보는 작업을 꼭 해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면서 보자. 이건 이 사회의 현재, 현실을 들여다 보는 하나의 프리즘이라고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이런 엇비슷한 색채로, 흐름으로, 그리고 그 각도 속에서 생성되고 엄폐, 은폐되고, 또 선전되는 중이라고 해보는 거다.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지난 일 년여 동안 평면보다는 입체화된 시각을 유지하려고 많이 애썼던 것이기도 하다.

저 질문을 끌어와서 그대로 한 번 정리를 해보자. 워낙 간편하게 하는 걸 좋아하는 시대지만, 사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라는 공식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다. 단순하게 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으니까. 그래도 최대한 단순(單純)이 아닌 간편(簡便)을 해보자. 꼭 어느 죽간(竹簡) 글 하나 읽듯 말이다.

1. 팩트(fact)는 무엇인가?

- 이 단계가 사실상 가장 중요하다.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팩트>를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 가장 무서운 것은 <인지부조화>다. 그것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영역이라는 걸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명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거시, 미시적인 조망(眺望)의 종합판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지금도 깨어져 있다.

- 첫 단계는 ‘유일 미네르바=박대성’ 이 아니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박대성은 유일한 미네르바 필명이 될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만한 능력 자체를 보인 바가 없다. 단순히 ‘아우라’가 부족하다는 수준과는 다르다. 기본에서 고양이와 호랑이는 다른 것이다. 그걸 여전히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ID/password가 한 사람의 것이고 또한 IP가 동일한 변화로 가더라도 그 글이 가진 지문이 다르다면 ‘유일 미네르바’는 주장할 수 없는 것과 통한다. 이것이 무너지는 순간, 스스로 ‘트라우마’에 빠질 사람들은 아주 많다. 그러나 벌써 저 전제 자체가 무너진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개인적 사회적 인지부조화, 어설픈 관용, 경도(傾倒)된 팩트에 대한 해석(도그마 식의) 고집, 변명, 그리고 관계자들의 거짓말, 침묵과 무시(無視)같은 버티기, 몰지각 수준의 관망(觀望)과 방관(傍觀), 은폐를 위한 조직적 물타기, 우기기 등으로 이어가다 보니 아직도 이 사회의 지식적 판단은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비춰지는 셈이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이 사회를 보는 자괴감도 생길 정도니까.

- 그 다음 단계는 ‘박대성이 미네르바가 아닌 것’, 즉, 가짜 미네르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 글쓰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통한다. 사실 첫 단계가 부숴지면 이 단계는 자연스럽게 빠르게 오고 지나간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지금까지 하나씩 어떤 ‘조작적 움직임’에 관한 고찰을 통해 다 살펴보았다. 박대성은 ‘짝퉁 미네르바’인 것이다. 그 수준에서 이미테이션을 할 수 있었던 과제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것은 5류배우의 한계라고 본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건 사회지식의 문제로 남게 된다. 아마도 ‘지식’의 부족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으나 ‘사회지식’의 한계라는 평가가 드러나면 어느 개인 혹은 집단에게 너무도 강력한 수치(羞恥)로 남을지도 모른다.

- 바로 그 다음 단계에서 드러난 팩트의 종합 가운데 핵심은 <조작>이다. 박대성이 가짜다 라는 건 기본에 해당한다. 조작코드는 이 점에서 앞의 단계들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노선이다. 관건은 <조작>-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 에 있고, 그 조작의 과정에서 청와대, 검찰, 언론, 한 물 간 정치인에 브로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식사회와 사회지식이 몽땅 걸려 들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인정하고 아니고의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바로 이것이 <팩트>이기에 부인(否認)한다고 해서 그리 되는 것도 아니다. 지엽적으로 설명되지 못한 부분을 들먹여도 소용이 없다. 조작적 움직임은 조작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의 ‘거울’이고, 그를 통해서 그 그림은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미 드러난 상태다.

- 그리고 그 다음.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당연히 어떻게 정리되는가, 이 심각한 과제도 눈 앞에 선연하게 남겨진다.

2. 무엇이 과연 '문제'의 초점인가?

- 이 <조작>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미네르바 필명’ 하나를 31살 백수 같은 인터넷 짜집기, 편집광 수준을 만들려고 했다? 그건 딱 일차적인 것이다.

- 그 다음 단계로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왜 그렇게 했나 이유다.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이보다 더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다목적용이었으니까. 우선 간략히 정리를 하면 세 가지란 이야기다.

첫째, 이진법(인터넷, 온라인) 여론의 신뢰도 자체를 바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도성이다. 그래야만 작년 촛불에 가슴을 데였던 이들이 안심하고 사니까. 그래야지만 십진법 여론 통제만으로도 목적한 여론 조성이 가능하니까. 박대성 사건 이후 이진법이 어떻게 대접 받는가에 관해 잘 살펴보기 바란다. 그 상징(象徵) 하나 만들어서 얼마나 잘 활용해 먹는지!

둘째, 치부(恥部)의 노출을 무위(無爲)로 만드는 것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부채의 규모가 이제 한화 1000조로 확인된 지금, 작년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가 가진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걸 모를 이는 없다. 그렇게 하면서 시도했던 그 방향, 정권사모펀드니 정권ATM기기 만들기의 공식이 무산된 것은 아니다. 그 이후 다시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 흐름은 끊어질 리가 없다. 여전히 이 사회를 물밑에서 혹은 드러내놓고 밀어붙여지고 있는 중이다.

셋째, 감추어진 이 사회 시대의 흐름 가운데 하나다. 이를테면 <노란토끼>다. 이 말 듣기는 참 좋다. 그러나 살벌하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인수가 가능해진 지금, 이제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어떤 사악한 금융자본의 산업/금융 양면의 공격은 완전히 노출된 공간에 처해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현실이다. 이 공격, 과연 누가 대비하는가? 그냥 나라 걱정 미래 생각 없이 자기 이익만 생기면 무조건 마구 결합하려는 개체들은 누구일까?

- 이것이 바로 ‘문제’의 기본적 초점이다.

3.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 작년 6월 촛불민심이 불거지고 대통령이 사과까지 하고 난 이후, 청와대가 이진법(인터넷)에 대한 대처방안을 강구하지 않았을 턱이 없다. 그러나 바로 ‘미네르바 필명’의 도무지 제어하지 못하는 공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사실 ‘폭로’(暴露)에 준하여 그들에게 각인되었다.

- 그 과정에서 문제는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종합적으로 이 필명의 상징(象徵)을 죽이는 방식으로 ‘이진법 대처방안’이 강구되었다. 그래서 기획은 청와대 발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검찰이니 포털이니 언론을 모두 통제하면서 이 조작극을 벌일 수는 없었으니까.

- 그에 지식사회나 사회지식이 가진 인지부조화는 아주 적절하게 활용 당했다. 그에 조작적 환경조성에 모두 협조했던 지식도 상당하다. 시작은 저렇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 사회가 그에 동조한 꼴이 된 셈이다.

4. 무엇을 위하여 이런 사태는 진행되고 있고 진행방향을 가지는가?

- 조작사건의 의도와 시도 모두 매우 사악(邪惡)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이런 일은 애당초 벌어져서는- 벌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세 가지 측면이 그렇다.

첫째, 한국 IT업계(포털 업계)의 생명력을 죽이는 작업이 되어 버렸다. 회원이라는 포털의 기반이 되는 참여자의 정보를 무단 노출하는 수준이 아니라 변형시켜 버린 대사건이다. 희대의 페이스 오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그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개체(박대성)를 끄집어 내었다는 점이다. 이건 이진법을 통해 십진법에서 완전히 다른 형식을 만들어낸 조작극이었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양식과도 다르다.
셋째, 이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법치(法治), 언론(言論), 지식사회 등의 사회 인프라를 이루는 기관 기구들이 모두 조작극에 동원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조한 사회지식도 마찬가지다. 이건 한 나라의 뿌리가 완전히 썩었다는 걸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 이것(조작)이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니 온갖 사악한 짓거리가 자행되었다. 단순히 기사 몇 줄 살짝 바꾸어 쓰는 수준이 아니라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조작이 새로운 조작으로 번짐이 벌어졌다. 그러면서도 처음 원래의 의도를 전혀 버리지 않고 있기에 이 사건은 밖으로 돌출되지 않고 ‘파고 들면 다친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권 차원의 기본적인 사악함의 전체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조작>의 연쇄화를 불러 일으킬 개연성마저 걱정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막장으로 가는 거다.

- 그러나 쉽지가 않다. 이미 드러난 <조작>의 실체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건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팩트(사실)로만 가득 차 있는 <사실의 덩어리>니까. 그래서 물타기-우기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5. 항상 잊어버리는 첫 출발점(사안의 촉발점)은 어디였고, 그것은 어떻게 변해오고 있는가?

- 이 사건의 초반부 한국 사회는 ‘표현자유’라는 단 하나 이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이런 조작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표현의 자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바다. 이 사건으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 가 있는 ‘전기통신기본법’의 위헌제청의 절차와 과정에 있다는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정작 이 사건 자체가 가진 조작의 실체를 덮어 버리고자 하는 숨겨진- 이제는 그나마 드러난- 세력은 그보다 훨씬 더 화급한 수준의 당면한 주제들이고 무게를 가진다.

- ‘표현자유’를 억지로라도 제한하기 위한 그 정도 수준으로 목적으로 이런 조작을 감행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도 이 사건의 진체(眞體)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열려 있지 않고 닫혀진 심성으로, 혹은 적당주의 수준으로 본다면 그 또한 이 조작의 협조자가 되어 버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첫 출발부터 일지(日誌)로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즉, 조작의 흐름이다. 그걸 부인하는 지식이라면? 그게 악성의 인지부조화 아닌가 싶다.

6. 그에 대한 대응 군(群)의 논리변화는 어떤 것이었는가? 논리적인가, 감성적인가, 우기기인가, 아니면 은폐나 엄폐적인가?

- 사건 초기, 소위 진보니 혹은 사회지식이나 지식사회 군(群)의 대응은 한 마디로 한심했다. 그들에게는 인터넷의 표현자유라는 걸 지킨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는지 모르나 이 사건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눈 자체가 지극히 평면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사이버모욕죄 같은 이상한 수준의 법규를 만들고자 했던 여당 세력도 그에 비할 바 아니게 단순하고 무모했다. 인터넷이 통제가 될 수 있는 공간인가 아닌가에 있어 그곳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순간, 아마도 전 세계는 한국 사회를 모두 하류(下流) 취급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는 쉽게 시도할 수 있지 못하다. 여전히 이진법은 진화(進化) 중에 있다.

- 평면적이 아니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 사건의 입체성을 보지 않고는 감성적인 접근으로는 사건 전체를 재구성하지 못한다.

- 그 과정에서 조작(造作)의 <곡마단 그룹>만이 이 일을 맘껏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그러나 ‘김태동’ 케이스에서 보듯이 감성적 접근은 결국 이런 조작을 논리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실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엄폐, 은폐, 우기기, 물타기가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사회지식 자체가 전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엄폐도 은폐도 조작도 모두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7. 묻혀지거나 가리워진 부분은 무엇인가?

- 여전히 언론의 보도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작년(2009년) 한 해, 제대로 이 사건에 접근했던 언론은 대한민국 사회 속에는 없었다. 그 부끄러움 때문인가, 아니면 그렇게 처음 정했던 방향을 선회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어서 흔히 말하는 ‘쪽 팔려서’ 그런가? 언론뿐만 아니다. 지식사회는 특히 심각하다. 그들이 이 조작의 팩트를 싫어하는 심리구조는 사건 초기 이후 판단의 굴곡(屈曲)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나는 이렇게 봤다’라고 한 것이 뒤집어지는 것, 그걸 다시 수정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수치감 같은 것이다.

- 그 또한 아주 보잘것없는 부질 없는 ‘고집’에 불과하다. 여긴 이미 <팩트>가 모두 주어지는 중이다. 물론 더 나올 이야기, 더 나와야 하는 내용도 많다.

- 그것은 밝혀진 부분은 충분히 드러났고 그 나머지도 서서히 더 밝혀질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조작 사건>이란 팩트 자체는 완전하게 정리된 상태다. 아직도 저기 첫 단계에서 헤매는 경우도 많이 본다. 아마도 여기서 사안을 보는 눈, 감추어진 사안을 찾아내는 개인의, 지식사회의 능력 차이는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8. 무엇을 보아야 하고, 또 무엇을 보지 않아야 하는가? 무엇을 들어야 하고 또 무엇을 듣지 않아야 하는가?

- 거짓을 보지 말라! 저기 우기기-물타기의 수순을 가진 자들은 이 조작의 실질적 현상으로만 본다면 모두 ‘매국’(賣國)의 수준에서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니 돌아볼 일고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 인지부조화의 영역에서는 많은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걸 팩트로 착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혹은 어떤 대전제를 억지로 꿰어 맞추고자 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첫 머리의 ‘팩트’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미시와 거시가 함께 가게 되어 있다. 물타기를 위한 조직적 접근은 이런 것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박대성 자체가 기본적 소양을 전혀 갖추지 못한 하류(下流)의 이미테이션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옹호하는 말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심지어 ‘그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이진법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무서운 ‘관용’(寬容)도 있다 싶다.

- 지금은 조작이 가진 바로 현실, 그에 합당한 두 가지에 집중해서 봐야 한다. 하나는 바로 이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건의 처리방향이다. 단순히 박대성이 어딘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이미 사건의 모든 구조도면이 나오는 상태다. 누가 감히 이걸 이 시점에서 그저 덮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9.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아직 여기서 ‘어떤 배우기’를 하기에는 사건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 그러나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하는 부분은 뚜렷하다. 바로 사건 초기의 그 어리석었던 판단, 사회지식이건 지식사회건 모두 보였던 그 상상할 수 없었던 인지부조화를 반드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마저 하지 않고서 어찌 이 일을 눈을 똑바로 보고 쳐다볼 수 있을 것인가.

10. 이 일로 인하여 진정 놓치고 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 사건의 전체 구성도를 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 참 복잡한 사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그 구성도보다는 사안 사안에 집중한다. 작은 이야기는 작은 것일 뿐이다. 물론 작지만 중요한 팩트는 모두 챙겨봐야 한다. 그래서 앞서 왜 박대성이 가짜인가를 설명하는데 인문학적인 ‘언어’ 분석을 그렇게 많이 해본 것이다. 그런 맥거핀을 유발하는 작은 것을 말하는 경우가 변명 혹은 물타기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지금 그것이 필요한 단계는 벌써 지났다.

- 이미 그런 것은 앞서도 많이 봤다. 자꾸 그런 이야기로 끌고 들어가는 건 해당 조작의 관계자들에 의한 변명에 불과하고 이 조작극 관련자들의 강력한 의도적 물타기일 뿐이다. 뭘 그렇게 물 타려고 하는지 그게 더 궁금한 일이다. 물론 무시(無視)나 침묵(沈默)도 마찬가지다. “해명할 가치가 없어서” 하면서 팔짱을 낀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래서 지금 해당 조작극의 각 개체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이 부분도 아주 중요하게 된다. 나중에 모두 정리될 일에 속한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와 처벌’이란 관점이다.

- 가짜를 만드는 조작사건, 그 조작사건을 의도한 기획자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로 인하여 부숴지는 사회, 시대, 나라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왜 부숴지는가를 보지 못하면 지식사회이건 사회지식이건 간에 모두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바보는 또 다른 많은 바보들을 양산하게 된다.

* 덧글 하나; 작년과 금년, ‘금칙어’로 인해 아고라에 게시하지 못했던 글들의 링크입니다.

- 연재 제 54 회 ‘딱 한 달만 주시지요! - 동아일보사에 말한다’
http://cafe.daum.net/ekfkrqkdzkvp/7iPK/33
- 연재 제 64 회 검찰에 말한다; <검찰 미네르바>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http://cafe.daum.net/ekfkrqkdzkvp/7iPK/44
- 연재 제 69 회 <일요서울> 다시 보기와 후속 취재방법에 관하여
http://cafe.daum.net/ekfkrqkdzkvp/7iPK/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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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