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78. 대한민국의 낯 부끄러운 허상(虛像)의 미네르바

담담당당, 2010/01/08

어제가 1월 7일, 작년 오늘 박대성이 체포된 날이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솔직히 글 한 편만 어제 쓰고 나서 다른 글을 쓰기가 싫었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식으로 사안 자체가 ‘구렁이 담 넘듯’ 하는 것도 아니고 ‘물타기-우기기’ 수순을 밟고 있는 이 사회 자체에 대한 구토 때문이다.

저 ‘짝퉁 미네르바’가 활개치는 건 여전하다. 그에 더불어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은 여전히 그 조작의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조작을 위한 새로운 조작이 벌어졌듯이 다시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 조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면 이건 정말이지 최악이 아니라 어떤 구렁텅이로 빠져든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 조작을 인지하고 막아내는 사회의 안전판이 가동하지도 못하고 1년을 넘긴다는 것이고 그를 인지하고도 새로운 조작의 형식을 만들어줄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니까 말이다.

그 중에는 전형적인 ‘물타기’의 프락치 형 접근법도 눈에 띈다. 대체로 그런 식으로 엄폐와 은폐가 이루어진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慣行)처럼 되어 있기는 하다. 활용하는 변수들도 엇비슷하다. 그러나 사실이 너무 많이 드러난 상태에서 그 또한 별로 소용이 없다. 결정적인 몇 가지가 관건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그런 행동이 나와주는 것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에는 적합하게 여겨진다. 이야기는 이제 후반부로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재를 꾸준히 이어가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을 다 보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보고 있는 현실이 뭔지 조금이나마 짐작은 되는가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안이 묻혀질 것 같은가? 영원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경험에서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기록은 오래도록 남는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대한민국은 하나의 정권이 수십 수백 년을 그대로 이어가는 체제가 아니다. 어느 순간에 힘을 잃게 된다. 그게 정치판의 생리이고 정권이란 개념이다. 이 정도의 일은 꽤 복잡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듯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를 통해 누군가 사익(私益)을 챙기지 않을 턱이 없는 구조다. 바뀌어진 정치판의 세력들이 그들의 사익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사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밝혀지고, 지금도 이 사안을 이야기 하면서 온 전 과정에서 왜 이것이 <조작 사건>인지는 쭉 설명해 오고 있는 중이다.

박대성은 조작된 가짜다. 그것도 100% 순도 높은 가짜다.

그를 내가 왜 고소하지 않고 있는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는 곡마단의 ‘곰’이다. 곡마단을 이야기 하는 지금 내가 ‘곰’을 고소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스운 이야기다. 어느 알바/알밥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왜 박대성을 고소하지 않느냐고? 그 논리 구조가 딱 곡마단이 바라는 바처럼 들린다. 나는 그를 고소하지 않는다. 그가 해온 고소는 대응해준다. 그의 인지를 확인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고소가 정확해야 한다. 그럼 내 질의서를 하나씩 보내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수고로움도 사실 필요 없는 단계다.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되니까. 그가 성인(成人)이니 직접 대답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지금 그를 부르는 명칭인 ‘짝퉁’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그를 조작한 자들이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미네르바>다. 물론 동참한 자, 혹은 여전히 인지부조화 속에서 동조하고 있는 사람, 혹은 최근에 발견한 유형이긴 하나 이래저래 이 사건에 직간접으로 관련되어서 과거 자신의 말을 뒤집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에 빠진 사람들까지도 있다. 그런데 무슨 미네르바? 거기에 이 일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앞서 이미 <검찰 미네르바>라는 단어를 끄집어낸 바 있다. ‘검찰에 바란다’는 고언(苦言)도 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곳 저곳으로 변명이 흘러나오기는 한다. 물론 직접 이야기 하는 바는 전혀 없다. 마타도어, 프락치를 하는 자들의 숫자도 헤아릴 수준은 된다. (나는 이 연재에서 ‘마타도어’라는 한 챕터로 미리 사전 경고를 했다. 그러니 그들 이야기도 나중에 따로 해볼 참이다) 웃기는 일이다. 나는 작년 말 해가 바뀌고 난 이후 이 사태가 얼마나 더 번지게 될 것인가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나 보다.

박대성은 여러 명칭의 미네르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에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 (그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시켜진 개체다) 물론 전혀 ‘미네르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허명(虛名)이 남겨진다. 그것이 바로 이 사회의 현 시점 존재감(存在感)이다. 사회 전체가 허허(虛虛)로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이다.

가볍게 그의 존재와 존재의 특질(特質)을 짚어 본다.

우선 박대성은 <청와대 미네르바>다. 거기 발(發)로 기획이 이루어지고 지시와 협조, 그리고 협력이 이루어진 것이니까. 당연히 이 명칭은 가능하다.

그리고 박대성은 <검찰 미네르바>다. 거기다가 박대성은 <동아일보사 미네르바>이고, 또한 <월간조선 미네르바>이기도 하다. 덧붙여서 <SBS 미네르바>이기도 하며 <CBS 노컷뉴스 미네르바>가 되기도 한다. 모두 코드는 <조작>이 붙는다. 실수가 아닌 것이라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실수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변명의 원천으로 올라가면 다시 나오는 단어는 <조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이진법의 포털 가운데 한 군데가 DB조작으로 만들어낸, 이진법에서 십진법에 탄생시킨 바로 <다음 커뮤니케이션 미네르바>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한다. 정지은 팀장은 “대꾸할 가치가 있어야지 대꾸를 하지요”라고 말했다는 것을 전언 받은 적도 있다. 지난번 Makefile님과의 이진법 내의 약간 토론에서 반박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소위 십진법형 변명이다. 버티기라는 것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게 무너지면 이진법이 아니라 십진법 정체성도 완전히 파괴되게 되니까.

<박찬종-김승민 브로커 팀의 미네르바>는 이 자리에 낄 자격에서는 하류(下流) 중의 하질(下質)에 속한다. 그 하는 행태며 했던 짓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면 말이다. 그 밖에도 많다. 여기에 협조적 자세로 국민들에게 그를 ‘박대성=미네르바’로 각인시킨 모든 언론, 그리고 그렇게 주장했던 인물들, 그리고 그를 묵인(默認)해주고 있던 모든 이들의 <허상(虛像)의 미네르바>다. 이 단어 참 무섭다. 그냥 허공에 뜬 주제같이 보는 몰지각, 방관의 마음도 여기 해당한다.

이쯤 되면 솔직히 박대성은 <대한민국의 낯 부끄러운 미네르바>가 되어 있는 셈이다. 그것도 가짜 말이다. 진짜라면 차라리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일이 여차하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모습 보기 좋은가? 이대로 두고 봐도 좋은가?

이 모든 결론을 내리면 한 가지로 다시 모아지는 것이 있다. 박대성은 바로 <정권(政權) 미네르바>라는 것이다. 이 점이 관건(關鍵)이 된다. <조작>의 원천과 매개를 모두 그곳에서 시작한 것이니, 이 사안 자체는 이렇게 분류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이 단어를 되물릴 방법이 나오질 않는다. 어찌 처리할 것인가? 이 결론에 있어 어떤 반박(反駁)을 과연 지금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해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따져 보니 결론은 바로 정권이 해야 할 대답에 속한다.

그래서 전부 속칭 ‘생까기’, ‘나 몰라라’, ‘변명 흘리기’, ‘마타도어’, ‘은밀한 프락치 식 접근법’ 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말 두렵지 않은가? 무엇이 두려운 대상인지 알기는 아는가?

이 하나의 사건 속에 이처럼 모든 허상(虛像)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 하나의 <생성-과정-처리-진행>이라는 거울만으로도 결국 이 정권 자체가 허깨비 밖에는 안 된다는 소리다. 이렇게 말하면 이 말도 정치적이라 할 것인가? 결코 아니다. 정치니 경제니, 사회 문화 등등의 구분법도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날의 그저 그런 ‘결 나눔’에 불과하다. 그들 모두가 연관성을 가지고, 그들끼리는 서로 언제든지 교합(交合)을 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은 어느 문제로 분류해야 옳은가?

바로 <이 시대(時代)의 문제>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박대성이 가짜라는 사실, 그를 조작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사실들, 그리고 그 조작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그를 위해 국민과 사회 나라 전체를 기만했던 그 과정까지 모두 드러나고 있는 지금, 과연 이 시대의 당면한 이 문제를 도대체 어찌 처리하려고 아직 이 모양들인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냥 잊고 살자고? 에라이! 이 빌어먹을 인생들아! 그렇게 하고서도 감히 이 시대를 산다고 말이나 덧붙이지는 마라! 그러면서도 어디 애들에게 교육이 운운하고 정치를 나불대고 경제를 입방아질 하는 그런 수준이라면 이게 무슨 나라이고 사회냐!! 온당(穩當)함은 모두 버리고 그럭저럭 땜질 하면서 가다가 전부 공멸(共滅)하자는 것이니 차라리 이제 멸종(滅種)하는 게 어떤가 싶지 않나!!!

모두- 곡마단이건 알바/알밥단이건, 마타도어 꾼들이건 어느 누구이건- 잘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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