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79. 광화문(光化門)의 개들 – 에피소드

담담당당, 2010/01/09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6년작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을 떠올린다. 런닝타임 99분, 액션, 스릴러, 범죄 영화로 분류된다. 서로에게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게 하면서 화이트, 오랜지, 밍크, 블론드, 블루, 브라운의 코드명을 부여하고 범죄를 모의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 중 누가 과연 신분을 감춘 비밀경찰인가? 짧은 영화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컬러(Color)명이 아닌 새로운 코드명을 부여하고 누군가 범죄를 밝혀줄 바로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앞서 여러 <미네르바>를 우리는 이미 봤으니까. <청와대 미네르바>, <검찰 미네르바>, <동아일보사 미네르바>, <월간조선 미네르바>, <다음 커뮤니케이션 미네르바>, <SBS 미네르바>, <CBS 노컷뉴스 미네르바>, <박찬종-김승민 브로커팀의 미네르바>, <정권 미네르바>, <허상의 미네르바> 그리고 <시대의 미네르바>까지 열 하나(11)를 우리는 보고 있다. 이 가운데 과연 누가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그 ‘조작 범죄’의 진상을 알려주게 될 것인가를 지켜보는 시점이다.

뭐, 미리 경고하지만 먼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늦게 토로(吐露)한 사람의 비겁함은 가중(加重)의 법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건 지식사회이건 혹은 사회지식이건 어느 쪽에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정비례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그 행위의 대가는 점증(漸增)할 것이다. 벌써 2010년이 된 판에 솔직히 2009년의 일을 그 당해년도에서 정리하지 못했으니 마음 바쁠 것도 없다. 그냥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이 아닌 어느 다른 곳에서 드러나게 되는 순간, 솔직히 이들 <11가지 미네르바>는 모두 각각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받으면 되는 일이다. 아주 간단하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검찰 미네르바>다. 어찌 되었건 사건을 진행시켜서 재판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검찰-법원 모두가 해당된다. 물론 법원이야 검찰이 올린 증거를 토대로 했으니 진위논란을 따질 이유가 없다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검찰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도 골치 아프지만 박대성 사건으로 올라온 안건이나 핵심은 전기통신기본법이니까 법리적으로만 들어가면 된다. 여하튼 다시 검찰로 ‘몫’이 돌아간다.

이미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전직 서울중앙지검 3차장/마조부장들은 좀 머리 아프겠지만 이 사안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 변명이 가능한 아주 미세한 부분은 있다. 이를테면 조사 진행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해명이 될까? 어렵다. 그래서 지난 1월 이후부터 나는 “가짜 홍길동으로는 홍길동 재판을 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그 자체만으로 한 사회는 모두 농단(壟斷)의 길로 접어든 것이니까. 그렇게 한 행위 하나만으로도 피조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만이 대상인가? 다른 이들도 꽤 될 소지가 있다. 이 일을 질질 끌게 되면 당연히 ‘직무유기’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그들이 우선 당사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이들이 모두 광화문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광화문>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공권력과 그를 활용한 사악한 기획, 그 계획 속에 동조하며 빌붙은 세력들을 말하는 것이니까. 이 사건의 연원(淵源)이 광화문-세종로로 이어지던 거리에서 벌어졌던 2008년 촛불민심으로 시작되었고 그에 연장선상에서 당시 이진법에서 대두된 정보교류와 교환의 장(場)이 열리며 그것이 정권에 크게 위협적이란 판단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니까. 그래서 이진법 전체에 대한 피폐화(疲弊化) 작업 등을 포함한 여러 군데에 이리저리 모두 다 활용하는 다목적 용도로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이 구성되었으니 이쯤 되면 ‘개들’(Dogs)이라는 영화의 그 명칭을 따서 붙인다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없다고 보인다.

지금도 진행 중인 조잡한 게임이다.

여기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이 사건을 이끌고 가는 감독이 누구일는지 모르지만 결국 영화는 끝나게 되어 있다. 99분짜리 영화를 찍는데 1주일이 걸렸다고 하지만(정말 빨리 찍었다), 이제 <광화문의 개들>이란 이 영화는 벌써 일 년이 넘어가고 2년째가 시작되었는데도 끝나지 않고 있다. 제작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도 ‘조만간’ 끝나겠지 싶다.

한 가지 에피소드.

박대성은 1월 7일 체포되었다. 그런데 검찰은 그 나흘 전부터 체포를 위한 본격조사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2009.1.2~1.3부터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사실일까? 이제 조작이 밝혀진 판이니 그 말도 다 거짓말이라는 건 너무 뻔하다. 아래에서는 열심히 조사를 했나 몰라도 윗선은 빤히 보고 있었던 경로가 있었으니까.

그가 체포된 후 어느 기자는 다른 부처의 고위 간부로부터 박대성의 체포는 사건 바로 이틀 전 그 사람을 찍어서 ‘집어넣어라’고 해서 간 거라고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말했다가 그 다음 입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고 했다. 이틀 전이라! 그렇다면 IP니 뭐니 하는 말은 모두 그냥 ‘쇼’ 였다는 거다. 좀 엉성하기는 하지만 이해는 된다. 작년 12월에 이미 서울중앙지검 1차장 산하 형사5부에서 조사했던 자료들을 받기는 했으나 그 중 핵심인 인물자료 자체는 넘기지 않았다는 것이고 보면, 굳이 인물자료 자체가 필요 없이 그냥 잡아서 <만들기> 하는 게 수순이었다는 이야기다.

검찰의 앞으로 나올 변명 가운데 한 토막이 될 수 있는 것은 박대성이 멀티닉을 썼고 그에 대한 ID조회가 추가로 있어서 바빴다는 어떤 ‘설’(說)이다. 언론에 알려지지는 않았던 이야기가 슬슬 돌기도 하는데, 그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회원정보로 들어가면 그냥 그 이름으로 등재한 아이디는 다 확인되는 것이니까. 참 재미난 이야기도 요즘 와서 슬그머니 돈다 싶다.
 

다른 한 가지 에피소드.

의문이 연속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의문이 아니라 사실 ‘훈련 과정’이 너무도 긴요하게 필요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감시와 통제도 겸해서.

박대성의 집은 창천동이다. 그런데 출소 후 그는 자기 집으로 아예 가지를 않았다. 텅 빈 집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였을까? 그는 왜 김승민과 동거를 시작한 것일까? 과연 그의 부모들은 이 일에 관해 아는 바가 있을까? 기획자는 그들에게 이 사실을 대략은 그들 방식으로 말했더라도 아주 자세히 통보하여 주지는 않았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활에서 ‘금치산자’도 아닌 박대성은 왜 모든 생활이나 활동을 김승민의 우산 밑에서 하고 있을까? 그를 만나자고 요청하면 반드시 김승민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김승민의 신분은 도대체 뭐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박대성은 지금 그를 둘러싼 이 조작의 한 가운데서 어떤 생각을 할까?

간접적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외면한다”고 한다. (사실 ‘간접의 간접’이다. 박대성에게 직접 물어본 것이 아니라 김승민에게 물어봐서 그가 ‘외면한다’고 하는 것을 다시 받아서 말하는 스타일이다. 대변인이 아니라 청지기, 혹은 완전 감시자인 셈이다. 서초동 오피스텔 감옥 혹은 훈련소라 불러야 할 판이다.) 우습지 않는가? 저 말을 인정해준다고 해도 그 자신이 그 자신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이.

이를테면 추가로 나오는 말도 이런 식이다. “내가 왜 대응해야 하는가? 짜증난다”는 식이다. 이진법 글쓰기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렇게 말한다. “하기 싫다”는 간단한 단어 몇 마디다. 그걸 인정해주는 그런 지식인도 있다. 사실은 그게 더 웃긴다. 그런데도 블로그는 작년 12월 초에 열었다. 그건 이진법이 아니던가? 나는 저 말과 저 행동을 듣고 보며 한참 생각했다. 그런 식의 기본도 없는 회피(回避)와 언행 불일치는 정상적 인지의 기표(記標)가 될 수 없다. 여하간 참 처지가 딱하긴 하게 보인다. 그런데 나이 서른 넘은 성인(成人)의 행동양식은 분명 아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에피소드

김갑배 변호사.

박대성 재판에 참여한 박찬종 외의 인물이다. 그는 재판 과정 중에도 내내 박대성에 대한 의심을 풀지는 않았다고 알려진다. 2009.4.20 박대성이 1심 무죄판결을 받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신동아 기자와 만나서 3~4시간에 걸쳐 박대성은 진짜가 아닌 것 같다, 진짜가 아니게 보이는 게 너무 많다고 격렬하게 토로를 했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작년 연말 ‘한겨레 21’ 인터뷰에 그 생각의 단편들이 몇 마디 흘러 나왔다.

시대의 어둠이 만들어준 명판결 (2009.12.25 제791호)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366.html

-재판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변론 준비 과정에서 자료 수집이 어려웠다. 검찰은 미네르바 이름으로 올라온 글이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반박하기 위한 근거를 수집해야 했다. 그러나 박대성씨에게 어디서 자료를 얻었느냐고 물어보면 “인터넷에 입력하면 딱 뜬다”고만 얘기할 뿐, 자료 출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도 부족함이 있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어 인터넷을 못 쓰니 당황스럽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인터뷰 가운데 한 토막이 보여주는 박대성의 모습은 한 마디로 ‘자기 글이 아니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런 ‘명판결’이라는 단어를 헤드라인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표현자유’로만 간다? 그게 진보라고 불리는 곳의 정치적 입장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아직도 이 사건의 진상(眞相) 자체를 제대로, 제 각도로 판독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이도 저도 떠나서 그네들의 판단도 참 어리석다 싶다.

최근 만나본 어떤 기자는 김갑배 변호사를 만나 봤다고 하며 “그도 이제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 과연 그런가는 재확인하지 않았다. 똑 같은 하나의 사물을 보고도 표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목적에 의해, 처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혹은 지금 상황대로)인정한다? 그냥 이 정도 수준에서 나도 잘되었고 이야깃거리 생겼으면 되었다? 만일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이 사회는 솔직히 인지(認知)는 썩고 처세(處世)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저 인터뷰의 내용을 살펴 보면 그도 아닌 듯하다. 참여자로써 그의 의견은 명쾌하게 나와야 하는 시점이 이미 지난 지는 오래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레토릭은 불명확하다. 무슨 정치적인 세력의 호불호(好不好)를 따지는 식이라면 그 또한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사실과 진실, 그 두 각도의 이야기를 꺼내면 될 포지션 같다.

다시 돌아가보면, “인터넷에 입력하면 딱 뜬다”는 저 말이 상징하는 의미가 뭐라고 보는가? 인터넷에 아무리 입력해도 나오지 않는 정보 아주 아주 많다. 그런 글을 미네르바 필명이 썼기에 그게 문제가 된 거라는 이 사건의 기본이 완전히 무너진다. 그래서 12월 29일 글의 소스(source)도 밝히지 못하는가 보다. 그것 인터넷에서 건져지는 이야기 아니었다는 건 모두 안다. ‘7’이란 숫자는 그리 가볍지 않으니까. 박대성은 아직도 ‘편집증적 인터넷 자료 짜집기 광(狂)’이란 이미지를 드러내놓아야 하는 사명(使命)을 잘 지키고 있는 모습인가! 나는 저 엉터리 5류 배우를 아직도 활자로 화면으로 본다는 것이 참 역겹다.
 

또 다른 한 가지 더 에피소드

검찰은 작년 12월 2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문제점을 다룬 PD수첩 제작진에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아주 사악한 형태의 <연쇄 조작사건>은 구형이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할까? 겨우 그 수준밖에 안 된다면 아주 실망할 일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건 검찰의 관계자에게도 마찬가지 적용된다. 하지 않고 빠져나갈 재간은 지금 봐서는 없게 보인다. 하지 않으면? 시간만 끌면 잊혀지나? 어렵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서도 그런 지적을 했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사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문제를 은폐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페이스 오프’를 포함한 각종 연쇄적인 조작을 통해 다양한 미네르바를 양산했다. 모든 해당되는 미네르바 조작팀은 전체로 또한 각각으로도 그 행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 각자가 한 번 그 무게를 매겨보시길 바란다. 이번 사건은 <국민참여 배심원 재판>이 청구되면 안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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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조치하였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구해 두었습니다. 원래 게시됐던 글에 달렸던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