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84. 난파선(難破船)의 미학(美學)

담담당당, 2010/01/15

난파선. 그것은 파괴된 프레임이다. 거기서는 가장 먼저 ‘쥐떼’가 움직인다. 그래서 <난파선에는 쥐가 없다>는 격언(格言)이 생겼다. 그러나 정작 난파 직전의 배에도 쥐는 잘 보기 어렵다. 이미 미리 살 길을 챙겨버렸으니까. 인간보다는 몇 배의 생존감각으로 위험을 알아차려 버리니 그게 가능하다. 물론 인간 중에서도 그런 사람 보기란 어렵지 않다. 무척 감각적인 생존 역량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종종 쥐의 시체들도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서로 빨리 도망치려 하다가 생긴 전사자(戰死者) 무리들이다. 그들끼리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던 건 아니다. 이것도 감각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한참 웃을 때, 그들끼리는 사뭇 심각한 죽고 살기의 전쟁도 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들이 가끔은 때로 몰려서 난파선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가 그렇다.

지금 이 판은 사실 프레임 상으로만 본다면 벌써 난파직전을 넘어서 난파되고 있는 형세다. 이 <조작사건>은 처음부터 당사자가 너무 많다는 제약(制弱)을 안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출범하였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돛대가 부러진 게 아니라 속에서 다 썩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쥐떼들은 그들끼리 싸우고 도망치고 난리법석이 벌어지게 된다. 눈치 보는 단계를 벗어나면 즉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을 여러 수단을 통해서 표시한다.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무엇이건 타넘으려 하고 또 엎어진 그들의 시체도 마구 타고 넘어간다. 그게 불이면 피하고 물이면 큰 바다라 해도 그냥 뛰어든다. 당장이 급하기 때문이다.

아직 그렇지 않다고? 아니다. 이건 자기 이름자를 세세히 새기게 되어 있다. 나는 그 명단과 행위의 기록을 동시에 남긴다. 하나씩 정리해두고 그 속에 적시된 사실 관계의 화살을 피할 길이 없다면 스스로 이제 명예라는 단어를 쓰면 안되고, 또한 이 사회에서 애국이니 민주니 혹은 일류, 선진 따위의 말은 입밖에 꺼내면 안 된다는 걸 경고하는 것이다. 그 엇비슷한 유형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 율법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런 단어 말고 이상한 법리적 용어를 가져다 붙이는 경우도 해당된다. 무슨 자기가 변호사가 되는 듯, 설혹 변호사라 해도 그런 용어를 쓰면 안 되는 경우들도 많은데 말이다. 아직도 그런 것이 여름날의 그늘이 되고, 시간 끌기 위한 방식이 된다고 믿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여기에 관련된 그 누구도 그 잘못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사건은 첫 단계에서 법리적으로는 <검찰 미네르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기실(其實) 그들이 법치적 집행 기구라는 점을 당연히 감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드시 자정(自淨)의 노력이 따르지 않고는 첫 발걸음도 떼지 않을 것이기에 부득불 검찰보다 더 상위(上位)의 법률적 집행이 가해지지 않으면 되지 않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 미네르바>가 아닌 <청와대 미네르바>이기도 한 판이고 보면 그 또한 난망(難望)하다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정권 미네르바>라는 의미니까.

그러니 곡마단의 <곰>으로 나선 이가 고소를 하고 고발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뭇 긴장되는 바도 아니다. 간단하다. 그는 이 프레임 속에서는 주체가 이미 아닌데도 여전히 주체 행세를 한다. 그렇게 ‘시킴’을 당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그런 것이었으니까. 이지(理智)가 없는 미성숙의 성인(成人) 말이다.

지금 박대성을 가지고 이 사안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짜니 진짜니 하는 구분은 그저 첫 시작일 뿐이다. 가짜이기에 자신이 가진 명예는 없다. 왜 그런가? 스스로도 진짜임을 증명한 바가 없고, 또한 첫 시작인 검찰 미네르바의 단계에서조차 그는 전혀 진짜가 증명되지 않았다. 당연히 이 허술한 경계 속에서 그가 아무리 무슨 몸짓을 해도 그는 그저 가짜에 불과한 개체다.

그런 그가 나와 readme님, makefile님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단다. 글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 중에는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한일병합이니 혹은 일왕 방한에 관한 글까지 있다. 우습지 않는가? 박대성이 그런 문제까지 삭제를 요청했나? 그에게 무슨 그런 자격이 있나?

역시 곡마단의 곰을 중증 아스퍼거로 선정한 이유가 있었다. 모든 명의는 그를 이용한다. 정작 그의 이지가 정상인지 확인한 사람은 별로 없다. 잠깐 만나보니 어떻더라 하는데, 그의 ‘언어’는 전혀 정상적이지 않으니 문제다. 그래서 곡마단에는 조련사도 필요하고 법률 브로커 활동가도 있어야 하고, 심지어는 그를 지속적으로 가짜가 아니도록 포장해주고 그런 공격에 대응하는 T/F도 있는 듯하다. 가짜여! 너의 신세가 고달프지는 않겠다. 왜? 자각하는 인지 능력 자체가 없으니까.

그 나머지가 사실상 이 포인터에서는 더 중요하다. 왜 그를 가짜로 만들었는가? 누가 만들었나? 그리고 만들어서 어떻게 활용했으며, 그로 인해 생긴 폐해는 무엇인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라는 것으로 쭉 논리의 경로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 차에 이제 박대성이 고소전이란 걸 벌인다는 것, 포털 다음이 덥석 세 사람의 글을 지운다는 것, 그 글들 가운데는 박대성이란 조작 개체의 명예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도 있다는 것, 박대성은 그걸 선정할 이지도 없고 나아가 선정할 잣대도 없다는 것, 그리고 왜 박대성 명의인지 도무지 알 길 없는 글들까지 모조리 지운 바로 이 사태는 어떤 의미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난파선의 미학>이 딱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쥐떼들이 참 많다 싶다.

누군가는 이 일을 자각(自覺)하는 수준을 벗어나 기록하고 알리고 해야 한다. 왜곡된 진실이 이토록 오랫동안 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짧게 보면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된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 사회를 썩게 만드는 씨앗이 되기에 반드시 해야 할 작업에 속한다. 그것을 하지 않는 사회 내부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는 것도 고역(苦役)임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일부분 감성일 뿐이다. 핵심은 그 관계까지도 보는 것, 그것이 이 조작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오늘 현실을 들여다보는 프리즘적 기능이다.

그럼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둘러보니 우선 언론이 있긴 하다. 국민의 ‘말 길’을 대변한다고 하는 곳이다. 진실 찾기를 업(業)으로 한다는 곳이다. 그런데 언론사의 방송진출이라는 그 상업적 욕구에 미쳐 벌써 언론 본연의 자세를 버린 지 오래된 곳이 수두룩하다. 잘났다. 이미 여러 (동아일보사, 월간조선, CBS 노컷뉴스, SBS, 그리고 그밖의 많은 인지부조화의 동참 언론들) <언론 미네르바>가 탄생되어 있다. 최근에는 거기에 위클리경향까지 가세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은 각각 곡마단과 관련된 편입경로들이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각각 그 이유가 있고, 어떤 것은 파악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도 저도 해당되지 않는 곳, 지금까지 이 사건에서 해야 할 몫을 하지 못한 그런 곳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 셈이다. 가장 굵직한 사안으로 보면 ‘종편’ 문제가 있다. 다행히 종편채널은 두 개 정도밖에 안 준다고 하니 그에 떨어진 나머지는 모두 이 대열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론 결정되기 전의 로비전을 위해서 ‘딸랑딸랑’ 소위 ‘거슬리지 않는 스텝’을 밟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그 또한 어리석기 그지 없는 행위다.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 소위 인맥이니 관계니, 그런 식으로 대한민국의 언론이 정권과 야합으로 오락가락 할 정도라면, 그것이 언론의 행보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에 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저 ‘상업’만 있으면 되는 거지. 그래서 ‘언론산업’이란 이야기를 그리 떠드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누가 해야 하는가, 이를 되돌이켜 보면 언론의 사실보도는 현 시점에 누가 뭐라 해도 지극히 필요한 상태가 된다. 그도 아니라면 국민이 지금 이 프레임 자체를 모두 부정(否定)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렇게 된다. 요행히, 정말이지 운이 좋아서 곡마단이 아무 탈 없이 시간이 얼마간 흘려 보내며 사안의 물타기에 성공했다고 하자.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이 사태(조작사건의 연장, 은폐 행위 공모 등)가 그저 별일 아니게, 한 번의 해프닝으로 묻힐 것 같은가? 그렇지가 않다. IT업계가 살아있는 한, 언론 속에서 그래도 ‘말 길’이 존재하는 한, 이 사회와 사회지식이 온전하게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이진법과 십진법의 교합(交合) 문제가 대두되는 한, 권력의 욕구에 의해 유사한 조작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이 사실로 살아있는 한 전모(全貌)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건 언젠가는 아주 강하게 처벌을 받게 되어 있는 구도다.

난파선에 있는 쥐들의 몸짓을 무작정 비겁하다 말하지는 않는다. 뻔히 보이는 종말(終末)이니까. 두려움을 그런 식으로도 표현하기도 하니까. 그것 연속적으로 벌어지면 허위(虛威)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또한 아주 속 깊은 ‘언어’의 영역이니까.

그래서 흔히 이 프레임의 반대를 <장마철 개구리>로 말한다. 비 맞으며 재잘대기는 참 좋아한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슬그머니 입을 쳐 닫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뒷걸음질 치면서 도망친다. 이 두 가지 현상 어디에서도 하나의 사회 속에서는 온당함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비교해보건대 이 현상이 이어진다는 것, 심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확실히 대한민국 사회 나라 시대의 최악의 상태를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지금 도망치려는 쥐새끼들은 그냥 가지는 마라! 가기 전에 발악하면서 도망치는 것도 봐주지 못하건대 감히 물기까지 하려고 덤벼들지도 마라! 아직도 계절 모르고 입 나불대는 개구리들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다. 그냥 입 열지 마라! 쥐떼들은 도망 가기 전에는 반드시 너희가 이 배의 중요한 부분들을 갉아먹고 간 죄값은 다 치르고 가라!! 그게 설혹 염라(閻羅)의 세계라 해도 말이다. 이 시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있다. 스스로 양심의 죄 값을 말하는 자, 그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일까!!!

* 덧글 하나; 정정합니다. Holypark33이란 ID의 비번이 pds7103이라 쓴 바가 있습니다만 로그인을 직접 관찰했던 분이 아래와 같이 내가 쓴 글의 정정을 요구한 바 이에 내용을 전체적으로 수정한다는 점을 고지합니다. 핵심 내용은 pds7103과 다른 아이디가 복합된 비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글 가운데서 변화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 추가되는 바로 그 ID에 초점이 모아지지요. 그의 전언을 약간 고쳐 옮깁니다. “비번에 PDS7103이 있었다는 것이며 비번이 PDS7103은 아닙니다. 비번의 나머지 부분도 다른 아이디와 관련이 있습니다.” (2009.11.20 ~ 20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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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연재글 상당수를 차단 조치했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원해 두었습니다. 원문과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