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85. 경향신문 대표이사와 편집국, 경영진께 드린다.

담담당당, 2010/01/19

제번(除煩) 하옵고,

고심(苦心) 끝에 한 자 적게 됩니다. 아래의 글을 잘 읽어주시고 맑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그에 따른 조치의 결과를 유심히 잘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는 이제부터 경향신문을 더 이상 구독해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분이기는 하나 이런 왜곡되고 또한 짙은 의도를 동반하여 어떤 특정한 세력을 위한 기사, 속칭 ‘빨아주기’ 단계를 넘어서 ‘그들과 그들끼리’ 작당(作黨)하여 자기네끼리 규정한 ‘적’(敵)을 치는 전위대(前衛隊) 역할까지 하는 기자가 있는 한, 경향신문은 <’읽는 국민’을 생각하는 신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적’이 바로 내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분개(憤慨)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단지 오류를 수정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항의메일’로 바쁘다는 글을 그저 블로그에 푸념 삼아 쓸 정도라면, 겨우 그 수준으로 이 사안을 보고 있다면 이 또한 뭔가 대단히 큰 착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요. 바쁘다? 그게 아니라 “아주 잘못되었다”가 정답이고 당연히 그 후속조치는 즉시 이루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기미가 없는 게 아니라 기대가 난망이지요. 뭔가 복잡한 관계도가 형성되어 있는가 봅니다.

그 조치를 그 기자 개인에게 미룰 수 없는 사연들에 관한 아래 정리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판단해 보시지요. 나는 그 귀사의 다음 조치를 보고 해당 사안의 글을 더 자세하게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 글쓰기 하는
‘담담당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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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사는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경향신문. 1946년 창간된 이후 현재는 사실상 한국에서 일간지로는 독립신문이라는 기치를 내건 진보 보수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중도 성향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회 내부에서는 중도/진보로 구분되고 있으며 그래도 어느 매체보다도 나름 공정한 시각을 유지한다는 평가를 듣는 상태로 안다.

http://www.khan.co.kr/aboutkh/ceo.html

대표이사 인사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경향의 목표는 저널리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신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특정 권력이나 이념에 복무하지 않습니다. 사실과 진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을 위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대표이사는 저렇게 원칙을 거론 했으나 어느 기자는 ‘특정 권력’에 아주 지독스럽게 <복무(服務)>하는 일이 벌어졌고, 심지어 거짓에 ‘복무’(伏舞)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판단이 드는 글을 쓴 바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공정, 불공정의 문제와도 다르다. 차라리 ‘글이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새삼 실감할 수 있을 정도 차원이니까. 그러나 그 칼은 항상 자신을 먼저 찌를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좋은 검객(劍客)이 되긴 어렵지 않나 싶다.

거론하는 이 사안을 각론으로 들어가서 살펴본다. <경향신문의 생활수칙>이란 항목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취재의 원칙 같은 것을 아주 자세하게 규정해두고 있다. <주요취재, 업무수칙>이란 항목을 옮겨 온다.

1.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한다. 정정보도는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잘못을 밝히고 진실한 사과의 뜻을 담는다.
1. 취재원이 익명보도를 요구하지 않는 한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한다.
1. 여론을 왜곡 또는 과장하는 선정주의를 배격한다. 이를 위해 기사와 제목, 사진 등을 실체적 진실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반영한다.
1. 취재원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취재원의 인격과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모독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1. 표절없는 신문을 만든다. 타 매체 보도를 인용할 때는 그 출처를 밝힌다.
1. 민원성 골프를 치지 않는다. 취재 및 업무와 직접 관련된 골프와 향응의 경우에도 자율 규제가 이뤄지도록 한다.

이것을 읽어 보면서 나는 지난 위클리경향 859호 “2010년 아고라, 안녕한가?”를 다시 꺼내 보았다. 역시 이 원칙과는 모두 위배되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정정보도’라는 개념 접근보다는 과거 기사(2009.2.10 위클리경향 “신동아K 미네르바 가능성 0.001%”, 정용인)를 감추기 위한 물타기로밖에는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초점이 있다. 한 가지는 과연 ‘정정보도’를 내는 시점이 언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과연 ‘정정해야 할 내용으로 자신의 글에 대해 기자가 얼마나 솔직하게 인정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기자가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팩트에 대해서 그 반론을 꺼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상황이 되는 것인가?

사실 시간적인 제한이 없는 저 ‘정정보도’의 규칙 문안은 잘못되어 있다. 이렇게 바뀌어져야 한다.

정정보도는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잘못을 밝히고 진실한 사과의 뜻을 담는다. 이는 정정해야 할 사유가 발생할 경우,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 제한성이 부여되지 않는 저 규칙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문안이 잘못된 이유기도 하다.

또 한 가지가 바로 취재원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번 기사의 가장 큰 잘못은 이진법(인터넷)의 이름을 다루면서도 이진법을 십진법으로 제멋대로 다룬 것이었다. 나의 필명과 이름이 그대로 공개되었다. 아마 한국 최초로 그렇게 쓴 듯하다. 그런데 ‘익명성’이란 문제는 그간의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흐름으로 방향이 정해진다. 나는 ‘담담당당’이란 필명 이외는 기자와의 이메일에서 사용한 바가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공개를 마음대로 했다. 일단 내가 보기에는 철저하게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이 걸린다. 그 내용도 솔직히 조잡의 수준을 넘어선 매우 악의적인 의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건 모두 확인된 사실이다. 그걸 부인하지 못한다면, 혹은 그걸 부인하고자 물타기 한다면 그건 그냥 아주 상식 밖의 글빨이고 조잡한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규칙’이라고 정해둔 다른 것에도 걸린다.

1. 취재원이 익명보도를 요구하지 않는 한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한다.

아주 흥미롭다. 익명보도를 요구한다? 이 행위와 익명이 아닌 이진법의 정체성을 가진 닉네임을 다룬다는 것에서 착각 수준을 넘어선 기사가 생겨난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나 이외도 makefile님, 심지어는 readme님까지도 최근 제대로 연락 한 번 취하지 않고도 이름자를 운운했던 것이 바로 저 기사였다. 상식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자! 그 다음 수순이다. 모든 취재원에게 예의롭게 대해야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는 정신은 좋다. 그럼 적어도 최소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봐야 한다. 그런데 이번 기사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는 “알바/알밥 찬양해주기”라는 코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른바 닉네임 ‘죶밥’(조 ㅈ 밥)이란 자의 사회와 세상 읽기를 아주 대단하고 거창한 가치 있는 지표인 양 기사 앞줄에 인용문구까지 만들어 끄집어 내 두었다. 그걸 가지고 기사를 쓴 정용인과 청와대 비서관 김철균이 서로 트위터에서 좋은 기사다 라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칭찬하는 것도 본 바가 있다. 참으로 코미디보다 못한 해프닝이 기사 작성 이후에도 즉시 벌어졌다. 마치 짜고 친 고스톱의 딱 그 판처럼 말이다. 그것도 십진법이 아닌 이진법에서.

1. 취재원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취재원의 인격과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모독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알바/알밥을 위해서는 아주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들은 익명처리를 하면서 이진법(아고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자들로 미화 되었으니까. 그들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을 때려잡는 미션을 가진 사람들로 살짝 비꼬아 놓았다.

원래 겸손과 친절은 행동뿐만 아니라 말, 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그걸 꼬는 정도에 따라 이른바 ‘글빨’이 작용한다. 의도성 말이다. 이번 경우에는 청와대가 그토록 이야기하던 이진법은 욕설, 비방 혹은 자정기능이 없다는 논리를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건 척 봐도 안다. 몇 줄에서 보여지는 게 아니라 ‘오륙구’라고 가명으로 등장시킨 저 자의 닉네임이 바로 모든 걸 말해준다. ‘죶밥’(조 ㅈ 밥)이란 활자가 그대로 들어갔다면 과연 저 기사가 성립될 수 있었을까? 그 닉네임을 보호해주려 노력은 하면서 다른 이들은 마구 휘저어 이진법 닉네임, 십진법의 이름까지 모두 공개한다?

공정성의 원칙은 아예 저기 멀리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벌어진다. 이른바 활자(活字)로 된 기사는 아주 열독율이 높게 퍼진다는 점이고, 이진법의 공간에서 열독율이란 정작 당사자라 하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안되면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언론중재위 수준으로 이 사안이 가야 하는가를 따져보면 저 명백한 의도적인 행위에서조차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이것 한 가지의 고소행위뿐이 된다. 그 사이 이 기사를 쓴 자의 의도, 그렇게 하도록 된 그 배후의 관계도 속에서는 희희낙락하고 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용인 기자에게 보낸 오보 지적 등의 사안 관련 글 (링크)
http://cafe.daum.net/ekfkrqkdzkvp/7iPK/70

이 흥미로운 광경이 바로 한국의 오늘, 바로 언론의 현 주소다. 그것이 ‘경향신문’이라는 그래도 치우침이 없는 보도를 한다고, ‘말 길’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그걸 일정하게는 인정 받는 곳에서 버젓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수순이겠는가? 당연히 ‘정정보도’를 하든지 아니면 이 기사를 쓰기 전의 원 의도성이 왜 삼투(渗透)되어서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는가? 그걸 못하면? ‘이 정도 수준은 그냥 흘러가는 거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경향신문의 소위 ‘약속’(約束)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바른 일등’을 생각하는 신문>이 되겠는가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부터 딱 사흘만 이 사안이 어떻게 흘러가고 결론 맺는지를 지켜볼 작정이다.

그래도 아무런 조치도 없다면? 그 이후에 나 또한 경향신문이라는(위클리경향 차원이 아니다) 대상에 관한 비판도 이어갈 것이다. 그건 순전히 경향신문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됨은 아니다. 아직도 글을 쓴 기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무엇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인터넷 판 기사에서는 나를 ‘권모’라고 부르긴 했으나 그 아래 기사에서 ‘죶밥’(조 ㅈ 밥)이란 신원의 그자를 둔 서로 간의 대화가 왜곡되어 옮겨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뭔가? 그 의도성을 누가 뭐라건 그대로, 정당한 것으로 유지하겠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도 따로 글을 올려서 나의 이진법/십진법의 이름을 버젓하게 쓰기까지 했다. 그가 다음 아고라에 위클리경향 정용인 기자, 이렇게 쓴다고 해서 아고라의 게시판이 경향신문의 매체판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착각은 도대체 어디서 연원을 두고 출발하는가, 생각을 좀 단단히 해볼 일이다. 경향신문은 아고라에 이런 게시판 글쓰기를 정용인에게 개인적으로 위탁한 바가 있는가?

이 문제는 십진법의 언론이 이진법에서 소위 기자 한 사람으로 그 언론의 정체성을 표현 가능한가 아닌가 하는 사안으로 번져갈 수도 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거기는 개인적 공간이지 법인 회원이 와서 쓰는 곳은 아니다. 그 엇비슷하게 흉내를 내고 있는 예도 있다. ‘올바른사람들’이란 이름의 법인단체가 사실은 ‘김승민’이란 한 개인의 전유물처럼 쓰여지면서도 정작 그 단체를 배경으로 깐다는 식 접근이 바로 그것이다. 정용인은 그런 나쁜 점을 보고 대단히 착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사회 통념 속에는 여러 가지 판단의 잣대가 움직인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일은 ‘실수’(失手)가 아니라 매우 악의적(惡意的) 담합 혹은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버젓하게 그대로 있고 앞으로도 이 사안을 과거의 눈 그대로, 의도를 더욱 키워가면서 그리 다룰 것이라는 점, 그리고 여전히 전혀 정정보도를 내지 않고 또한 그럴 기색도 없이 ‘내가 뭘 잘못했나, 앞으로 더 살펴볼 일이다’라고 버티고 앉아 있는 상태를 보면서도 ‘경향신문’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하겠는가!

재작년 4월, 그간 20여 년 보던 신문을 끊고 경향을 본 이후 나는 이제 경향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경향신문이 취해온 저 원칙과 규칙이 상식적으로 통하는 그런 조치가 내려지길 기대는 한다. 그러나 그 또한 ‘한참 이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것이라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걸 그저 증명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딱 그 정도 수준 말이다. 그걸 속말로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혹자는 이렇게 하면 그래도 이 시대에 한겨레니 경향 두 신문이 제대로 말 길을 겨우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들까지 폄훼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잘못된 인식이다. 온당(穩當)해야 한다는 전제는 그것이 무슨 정치적 패 가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은 잘못’으로 말하는데 있다. 거기 왜 그런 정치적 구분법을 논해야 하는가? 공기(公器)와 공익(公益)의 관점에서 어떤 잘못된 것이라도 명확하게 세세하게 지적하는 행위로부터 한 사회의 건전성, 안전판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런 게 없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있는 것 아닌가.

경향의 시간 내 조치를 기대한다.

* 덧글 하나; 이 게시글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는 바, 경향신문 게시판에 게재되어 있는 이메일 clean@kyunghyang.com 으로도 동시 송부코자 했으나 이 이메일은 고지되어 있을 뿐, 정상가동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관련 화면 1. 경향신문의 생활수칙 도입부 화면

* 관련 화면 2. 송부 메일의 Delivery Failed Message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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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연재글 상당수를 차단 조치했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원해 두었습니다. 원문과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