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초난(毋憚初難) 88-3. 저널리즘의 원칙? - 정용인 기자께

담담당당, 2010/01/26

취재원 보호, 그러니까 저널리즘의 기본적 원칙이란 단어와 개념을 꺼내셨군요. 좀 생각해볼까요?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의 책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란 데는 이런 부분들이 있더군요. 그냥 목차만 옮겨봅니다. 그게 가장 쉬운 듯해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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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진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
저널리즘의 진실

제3장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독립에서 고립으로
거리두기의 반작용
시민은 고객이 아니다.
장벽

제4장 사실확인의 저널리즘
객관성의 의미 상실
주장 저널리즘 대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

제5장 정파로부터의 독립
마음의 독립
독립의 진화
현실에서의 독립
독립의 재평가
계급이나 경제적 지위로부터의 독립
인종, 민족, 종교, 성별로부터의 독립

제6장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라
원래적 의미의 탐사보도
해석적 탐사보도
수사에 관한 보도
감시견 역할의 악화
기소로서의 탐사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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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인가에 ‘리크 게이트’로 뉴욕타임즈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지요. 아마 정기자는 바로 이런 사건들에 있어서의 ‘취재원 보호’를 말하는 듯합니다.

http://www.hani.co.kr/section-001037000/2005/07/001037000200507091137001.html

한국의 예를 보면, 일단 ‘그 때 그 때 다르게’ 적용되었지요. 실제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7조에 선언적으로 들어간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자율규정의 내용 외에는 관련 법규가 없지 않나요? 소위 직무적 비밀을 규정한 법규에서도 기자는 제외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까 그 때 그 때,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것이 되었지요.

지금 정기자도 그러는군요.

취재원 보호를 말하면서 나의 실명과 취재도 안 했던 이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취재원 보호 포기에 해당하지요?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막 이름을 활자로 박아서 쓴 건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그러더군요. 아주 무지막지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내게 뭐라 변명했던가는 기억나시나요?

취재원 보호의 절대의무는 기자들에게는 꽤 유명한 원칙으로 적용됩니다만, 일단 정기자의 경우는 예외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왜? “보호 해야 할 가치의 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진법 온라인의 닉네임 ‘죶밥’이란 이름을 쓰는 자는 그 이름의 책임을 지게 되어 있지요. 당연히 그 행위책임도 따릅니다. 그런 자를 보호하기 위한 글을 쓸 목적을 가진 정기자의 기사는 이미 앞서 수 차 거론했으니 이제 그만하지요. 데스크가 짤랐다? 그 데스크 자질이 심히 의심됩니다. 왜냐하면 그 닉네임 하나로 그 기사 전부가 엉터리라는 것쯤은 짐작 가능하지 않았나요? 그걸 뭘 풍자적이거나 혹은 그런 류로 봤다면 그 사람 글 몇 편이라도 읽어보시면 되었지요. 그렇지 않나요, 데스크님?

그런데 정기자는 다시 이런 글을 썼군요.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지역번호를 비롯해 어떤 정보도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 지에 대해서도 확인드릴 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요구가 가능한 주장을 하십시오. 기본적인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라는 요구는 당연 수용할 수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요구가 가능한 주장을 하라? 기본적인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행동?

내가 요구한 것은 정기자가 국제전화를 했다고 하니 그 앞 번호를 달라고 한 것일 뿐입니다. 정작 받은 전화번호의 앞의 자리를 공개한다고 해서, 그걸 요청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상식적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취재윤리와 어긋나는 것인가요?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요? 정기자가 정확하게 어느 지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그것이 ‘죶밥’의 국제전화로 인정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49’ 라는 숫자가 있는가 없는가도 그래서 물은 것입니다. 물론 나는 그것이 이른바 전혀 다른 형식의 인터넷 전화 혹은 로밍 폰의 재활용이라는 점도 지적한 바는 있습니다만, 그것 또한 이 거론의 대상에서는 논외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정기자는 ‘죶밥’이 다시 전화를 해와서 ‘무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죶밥’에 관해서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군요. 대신 다른 이들의 직업은 바꾸었습니다. 이것도 취재윤리 어느 항목에 해당하는 행위였나요?

자! 보내준 질문에 하나씩 다시 답변을 드리지요. 그리고 재질의도 하지요.

1. ‘죶밥’을 진보라 규정하는 일은 ‘죶밥’에게 물어보라?

- 나는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글에서 이미 나와 있으니까요. 정기자는 “내가 진보다”라고 말을 하면서 그에 전혀 상응하는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을 그래도 스스로 ‘진보’라 하니 진보라고 말해준다고 규정하는가요? 그건 그 사람의 주장일 뿐이지요. 일본의 극우주의자가 나는 진보다, 이리 말하면 그걸 ‘진보’라 주장했다고 쓸 건가요? 그러나 정기자가 쓴 글에서 한술 더 뜬 부분이 많았습니다. ‘죶밥’은 아주 민주투사 아니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아주 대단한 진보주의자로 딱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기자가 그렇게 규정해준 것 아닌가요? 내가 다시 묻지요? 그가 그렇게 대접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당시 기사를 쓰면서도 인정했나요? 뭘 근거로 했나요?

2. ‘죶밥’이 내 글을 보고 나서 ”이성적으로 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질렸다”고 했다구요?

- 정기자 솔직히 참 우습습니다.

- ‘죶밥’은 내게 사과문이란 걸 달랑 몇 줄짜리 이메일로 보내고 나서 그리고 아고라에는 사과문이 아니라 협박문을 쓴 자입니다. 그가 과연 ‘이성적 대화’를 운운할 자격이나 있다고 봅니까?

- 그리고 그 글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이라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난독증이 아닐까 의심되는군요. 그래서 그를 이성적 대화 운운하는 말의 쿼터를 따줄 만큼 대접했던 것인가요? 내가 쓴 글을 보고? 내가 그를 비이성적으로 협박했다고? ‘대화’의 기본을 모르는 자를 또 다시 이렇게나 두둔하시는군요. 이건 반드시 답을 받아야 할 부분 같군요. 내가 반드시 정기자의 답을 들어야 할 대목이기도 합니다.

3. 이 대목은 나의 질문과 정기자의 답변(2010.2.25 19:57)을 그대로 옮기면서 이야기를 좀 하지요.

(나의 질의) 3. 그는 그가 사용자 정보를 조작했다는 상대측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확인했다. 현재로선 누가 맞는지 판단할 수 없다.- 참 간편합니다. 그렇죠? ‘죶밥’의 의견은 다 수용했군요. 이를테면 그가 해외에 있다, 그리고 사용자 정보조작 즉, 프록시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등을 인정해준 케이스지요. 그런데 해외에 거주한다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그의 IP도 모른 채 어떻게 해외라고 말하신 것이지요? 그냥 그가 해외에 있다는 주장? 그럼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정보조작이란 말은 프록시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저 죶밥의 모든 말은 신빙성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 판단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정기자의 답변) 왜 이렇게 엉뚱하게 논리가 전개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문자 그대로 보십시오. 죶밥의 주장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것입니다. "정보조작이라는 말은 프록시를 사용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저 죶밥의 모든 말은 신빈성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죠?" 이건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질문입니다. "나나 특정인의 가정에 따르면 A는 B행위를 했는데, (이 전제에 따르면) A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는 명제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정을 만족하는 팩트 내지 근거를 제시해야지요. 매익파일이 죶밥이 유료 프락시 서버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를 제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만약 그가 Anonymizer tool을 사용했던, 해외 어떤 프락시를 경유해 아고라에 접속해왔던, 담담당당님이 계속 주장하시는 것처럼 죶밥이 국내에 있다는 것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전화통화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시고요.

- 당연히 기사를 문자 그대로 보지요. 그리고 문자 속의 이면과 행간(行間)도 동시에 보고, 또한 기사의 에둘러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와 흐름까지도 봅니다. 그건 글을 보는 자의 당연한 시각입니다. 평면이 아니고 입체로 보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자의 기본이지요.

- ‘죶밥’의 주장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것이다. 좋습니다.

- 오히려 저 논리를 거꾸로 정기자의 글에서 적용시켜 보도록 하지요. 정기자는 죶밥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성적인 대화를 하고 또한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보다 앞선 감정이나 충동을 배제한 이야기를 한다는 전제를 깔았지요? 인정합니까?

- 그리고 나서 말했지요. 그의 눈(프리즘)을 통하여. 다른 이들이 모두 종교적이며 광신도처럼 ‘미쳤다’고 말입니다. (* 주: 기사에서는 ‘죶밥’이 아고라 모든 이들을 <사이비 종교 광신도>라고 표현한 부분이 그대로 나갔지요.) 앞서 저 논리의 역순을 정기자가 택한 기사가 바로 “2010년 아고라, 안녕한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눈으로 아고라를 들여다보면서 통제불능이고 또한 엉망진창이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결론지어가고 있었지요. 아니, 결론내리더군요.

- 그 논리의 근거는 무엇이고, 도대체 ‘논리적’이라는 단어가 왜 여기 나오는 겁니까? ‘논리’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알고 사용하시는 것인가요? 혹시 의도를 가지고 살짝 꼬아서 쓰는 ‘글빨’을 논리적으로 착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 ‘죶밥’이 프록시를 사용한다는 정확한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좋지요. 그걸 토대로 그에 관한 정정 기사화할 생각이 있다면 내드리지요. 물론 이번 기사는 최종본을 내가 검수하는 조건입니다. 믿음이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나는 정기자가 ‘해외’라는 것을 단정해서 말할 때, 이 대목을 꺼내서 거론한 것입니다. 그 단정의 근거가 뭐냐고. 정기자는 전화통화를 말했지요. 그럼 쉬운 겁니다. 그 전화통화 얼마든지 국내에서 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화번호 검증을 해보자는 것이지요. ‘49’가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숫자이던가요? 정기자가 전화 받은 것을 언급한 대목이니까요. 내게 전화 왔다면 내가 바로 검증했지요. 앞서 언급한 내용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했나요? 취재원 보호 그랬지요? 그럼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내가 물은 것이 있고, 또한 그 앞 부분을 제시하는 것이 어렵냐고 말한 겁니다. 간단하지요.

- 참고로 ‘죶밥’은 1월 6일 오후 4:49 내게 이메일을 보내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보내온 바 있습니다. 점검 가능한 부분이 있겠지요?

어제(25일) 19:57 게시된 정기자의 답변 글이 ‘(1)’이란 숫자가 들어있는 걸 보면 내가 드린 재질의의 나머지 부분을 더 이어 쓴다고 생각되는군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재질의에 언급된 여러 부분들이 어제 쓰신 답변글과 연동된다는 건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 답변까지 나온 이후에 다시 종합적인 글을 쓰겠다는 말씀도 드리지요.

앞서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에 관한 책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나는 저 책의 제3장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제4장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이란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군요.

누구를 위해 일하시는 건가요? 지난 기사와 이번 기사의 사실 확인의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신 건가요? 이 질문이 바로 나오는 것이지요.

추가 답변 들어오고 나서 글 이어가겠습니다. 늦게 글을 봐서 답장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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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연재글 상당수를 차단 조치했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원해 두었습니다. 원문과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