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당당, 2010/02/26
<무탄초난(毋憚初難)> 연재 마지막 편이다.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편의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한다.
무엇이 108번뇌인가? 그 중 두 가지 이론을 여러 분들의 자료를 통해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구천산 삼봉사’에서 올린 자료를 주로 봤다)그래도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종교보다는 사람의 한 생에 관한 것이니 조금은 살펴보고 가도 나쁠 것이 없을 듯하다. 나는 종교가 없다는 걸 밝힌 바 있으니 ‘알바/알밥’은 괜스럽게 또 애꿎은 종교 타령은 하지 말고 상식이라 생각하고 모르는 부분은 한 번쯤 사전 찾아서라도 보면 좋지 않나 싶다.
1) 산출법 1.
- 눈. 귀. 코. 혀. 몸. 뜻의 육근(六根)
- 육근의 대상이 되는 색깔. 소리. 냄새. 맛. 감각. 법(法)의 육진(六塵)
- 육근이 육진을 접촉할 때 각각 좋고(好) 나쁘고 (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平等) 세 가지 인식작용
- 3 X 6 = 십팔번뇌
- 이 호(好). 오(惡). 평등(平等)에 의거하여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樂愛),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苦愛),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고. 낙. 사수의 삼수(三受)를 육식(六識)에 곱하면 역시 십팔번뇌가 성립됨.
- 36종의 번뇌에 전생. 금생. 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숫자를 얻게 된다.
2) 산출법 2.
- 견혹(見惑)인 88사(使), 번뇌와 수혹(修惑)인 10혹(惑), 번뇌에다 10전(纏)의 번뇌를 더하여 얻는 백팔번뇌설
- 견혹이란 사고. 지식. 인식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 여기서의 견(見)은 지혜에 의해 얻어진 지식적인 내용을 뜻하며, 혹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혜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 올바른 지혜를 백팔번뇌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 수혹은 정서적. 의지적. 충동적 번뇌로서 그 번뇌의 성질이나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곧 바뀌어지지 않는 번뇌이다.
돈이나 명예나 이성에 대한 탐욕이 바람직하지 못한 줄도 알고 있고, 시기. 질투가 나쁜 줄 알면서도 그러한 심리작용이나 습관이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
- 이 견혹의 88가지와 수혹의 10가지 번뇌에 탐심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의 근본 번뇌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뇌를 더하여 백팔번뇌가 되는 것이다.
연재 제 1 회부터 쭉 이어 거론한 바와 같이 나는 ‘언어’(言語)라는 개념으로 이 글을 이어왔다. <말, 글, 행동, 침묵>이라는 나의 4가지 잣대에 사실 나는 다른 하나를 덧붙여서 사용한다. ‘느낌’이다. 즉, 감각(感覺)인 셈인데 이것은 살아오면서 체득된 종합적인 육감(六感)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을 모두 종합해서 보는 게 사실 언어영역이다.
그를 통해서 이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이라는 한 장면, 한 장면을 모두 분해하여 보았다. 결국 이건 바로 우리의 오늘 이야기다. 어제를 말하는 것 같지만 오늘로 곧장 이어진다. 그리고 내일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건 앞으로도 쭉 이어져 갈 이야기니까.
박대성은 미네르바가 아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저기 육근(六根)마저 제대로 갖춘 사람, 성인(成人)은 아니라고 본다. 그 기본을 모조리 엉망진창으로 만든 이들은? 사실상 이 번뇌(煩惱)의 씨앗들이다. 악종(惡種)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나는 <조작 곡마단>으로 부른다. 그들을 빼고 이 이야기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연재 기간 내내 어느 누구도 내게 이메일을 보내서 나의 연재 가운데 있는 ‘사실’(팩트, fact)에 관해 반박해온 경우는 없었다. 나는 내가 이 연재에 사용하는 이메일(backtoback8@gmail.com)을 공개한 바 있고 언제든지 그에 관해서 의견을 주길 요청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숱하게 이러쿵저러쿵 뒷말과 뒷 송사를 즐기던 이들 가운데서는 그렇게 할만한 자격(資格)과 용기(勇氣)를 가진 이는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연재 ‘결론부’(연재 91회 이후 지금까지)에 이르러 압축해서 정리된 이야기를 꺼내면서 1) 기술적, 2) 인문학적, 3) 사회적으로 구분한 3가지 각도에서 종합한 이 조작사건의 현상(現狀)과 실재(實在)를 문제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반박(反駁) 가능한 자가 이 대한민국에는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진실(眞實)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이 108편을 묶어 이진법이 아닌 십진법에서 취해야 하는 조치들에 모두 사용할 것이다. 그 대상은 바로 ‘곡마단’이 될 것이라는 점도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이란 언어로 나는 말을 했고 행동을 했고 또한 침묵도 종종 하며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내 감각이 종합적으로 세부적으로 가리키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에 합당한 새로운 처리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다.
나는 이 시대가 가진 칙칙함에 솔직히 분노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왔나 싶을 정도다. 세세히 모든 일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정리되고 쌓일 것이지만 후안무치(厚顔無恥)를 기본으로 한 네 박자(물타기-우기기-밀어붙이기-몰아붙이기)의 고약스러움이 어쩌다 이 시대에 기생충처럼 번식을 하는지도 관건이지만, 그에 더하여 시력이 없는 미물인 애벌레처럼 구는 지식사회의 척박한 이성들도 그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는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죽었다.
대한민국에서 지식은 죽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른은 죽었다.
대한민국에서 정의는 죽었다.
대한민국에서 진실은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고작 ‘경제적 효율성’ 하나에 매몰되어 그 놈의 ‘경제살리기’, ‘경제, 갱재!’하는 말로만 모든 걸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것도 아주 웃기는 방식의 사악한 방향의 ‘이기적 욕망’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런 세상인가? 정권 기간에만 어떻게든 다 덮고 지나가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가? 그에 편승해서 살살대는 지식 꾼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젠 체하는 정치인, 관료, 사회활동가, 학자 등으로 다시 변신해도 모두 먹어준다는 말인가?
어렵다.
<기록>은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죽은 것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아픔을 처절하게 겪었을 때, 되새길 때 가능한 일이다. 이제 기록의 무섭고 두려우며 위대함을 그들은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 일차적인 접근이 바로 이 <박대성 미네르바 조작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굳이 이것이 그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걸 나는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무모하게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행한 일이니까. 그들이 기획하고 또한 진실을 덮기 위해 은폐 공작을 하고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방관(傍觀)하게 만들었던 일이니까.
연재 108편은 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제 1 회에서 약속한 바처럼 작년 5월까지 기록한 비망록의 나머지 미공개분을 정리해서 이어 게재할 것이고 또한 연재에서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제 <외전(外傳)>의 형식으로 아주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아주 딱딱한 글쓰기를 계속해온 것은 내게도 사실 심정적 부담이 된 건 사실이지만, 여기까지가 바로 기록의 가장 <기초(基礎)>에 해당하기에 어쩔 수 없는 작업이었다.
그 내용의 복잡함은 차치하고, 이런 전례(前例)가 없었다는 점에서조차 나의 백팔번뇌를 여전히 해소하기 어려운 듯하다. 그에 협조한 많은 이들이 있다. 이진법의 암적 존재로 등장한 알바/알밥으로부터 조작 곡마단의 그 많고 많은 낯 두꺼운 자들, 그리고 제 딴에는 그것이 이 사회에서 훌륭한 생존법이라 착각하는 아주 웃기는 개체들까지 모두 나의 번뇌를 깊게 만든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응분(應分)의 대접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야만 그들의 번뇌도, 나의 번뇌도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 사회, 시대의 번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나는 여전히 이 시대가 가진 힘을 믿는다. 가짜가 아닌 진짜 힘을 말이다.
정월 대보름이 가까운 날, 경인년(庚寅年)의 첫 시작에서 이렇게 연재를 매듭짓게 되어 다행이다. 그간의 모든 독자(讀者)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만복(萬福)이 님들과 이 사회, 나라, 시대에 깃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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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하나;
- 박대성, 김승민에 의해 블라인드 처리된 <연재>의 많은 부분들은 아주 웃기는 포털 다음의 그 조치(2010.1.14~15)와 후속 처리로 30일이 지난 이후 자동삭제 된다고 고지된 바가 있다. 그것을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화면에서는 표현했다.

- 연재 제 1~44회, 제 46~83회, 제 80-1부터 80-6회까지가 저렇게 되어 있다. 전체 글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blog.daesan.com/files/mutanchonan/toc.html
- 나는 저 표현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그렇게 화면 하나 달랑 띄울만한 자격이 전혀 없다. 왜 그런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덧글 둘;
- 이제부터 박대성을 대신하는 어떤 일을 어느 누구도 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된다. 매니저 자격증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그를 단순히 성인이라고 정의해둔 것이 아니라 그를 ‘유일 미네르바’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를 마치 정신박약자이자 병자(病者)처럼 관리하는 그 모양새는 그만 두는 것이 좋다. 하나씩 그에게 직접 묻게 될 것이다. 나는 미리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그에게 미리 던져주고 이 질문을 시작한다. 이 글들을 달달 외우든지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단, 대답은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를 대신한다고 자격도 없는 인물은 더 이상 나서지 마라! 그 모습들 너무 추하게 보인다.
덧글 셋;
- <곡마단>도 마찬가지지만 미네르바 팀도 여기까지가 내가 보여준 한계다. 그들 또한 내게 연락하지 않고, 또 자신들의 할 바를 하지 않고 지나온 그 비겁함에 대한 대가는 이제 받아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 점을 마지막으로 경고해둔다. 특히 ‘협조’라는 프레임에 들어갔던 이는 잘 생각하길 바란다. 가슴 속에 들어있을 부끄러움이 더 많이 생겨날 거다.
- 알바/알밥은 내게 있어 이 연재가 가져다 준 숙제이며 과제다. 나는 이것을 이 연재를 끝으로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다. 시간이 없어 못한 일들은 지금부터 하나씩 모두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처리를 해가도록 하겠다. 그들 또한 그에 상응하는 응당한 사과가 즉시 없다면 하나씩 정리해서 조치를 할 것이다. 이건 이제 이진법의 문제 차원을 떠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덧글 넷;
- <곡마단>과 그들을 비호(庇護)하는 어느 누구도 이제부터 나와는 ‘도불상’(道不相)의 길에 접었다는 것을 말해둔다. 가능한 모든 조치의 방법을 다 찾겠다.
- 여기까지가 내가 이진법에 글을 쓴 이로, 또한 미네르바 사건에 있어 당사자가 되었던 바로 그 사연에 가장 합당하게 내놓은,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예의를 바탕으로 한 나의 글쓰기다. 아고라의 선의(善意)를 가진 참여자들께 드리는 나의 진심 어린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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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 경제방"에 게시됐던 글입니다. 다음측에서 연재글 상당수를 차단 조치했기에 부득이하게 이곳에 복원해 두었습니다. 원문과 댓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