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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한일합방 조약

한일합방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과 일본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 간에 체결됐다. 당시 일제는 대한제국 내부대신 송병준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간에 충성경쟁을 붙임으로서, 조선 스스로가 일제에 합방을 촉구토록 유도했다. 물론 일본은 1909년 7월 6일의 내각회의에서 이미 조선 병합의 방침을 확정해 놓고 있던 상태였다.

아래는 정확히 99년전 이때 즈음에 체결됐던 한일합방 조약 전문이다. 서문중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합방의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눈여겨 보자. (그리고 조항의 대부분이 친일 행위를 보상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 폐하는 내각 총리 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
  2.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조항에 기재된 넘겨준다고 지적한 것을 수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락한다.
  3.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받도록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4.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의 조항 이외에 한국의 황족(皇族) 및 후손에 대하여 각각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받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5. 일본국 황제 폐하는 공로가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준다.
  6. 일본국 정부는 앞에 지적된 병합의 결과 전 한국의 통치를 담당하며 이 땅에서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의 신변과 재산에 대하여 충분히 보호해주는 동시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한다.
  7. 일본국 정부는 성의있게 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帝國)의 관리에 등용한다.
  8. 본 조약은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의 결재를 받을 것이니 공포하는 날로부터 이 조약을 실행한다. 이상의 증거로써 두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이름을 쓰고 조인한다.

융희 4년 8월 22일
통         감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총리대신   이     완     용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 이명박은 한일합방 조약 체결의 100년째 되는 해인 2010년 일왕의 한국 방문을 요청하고, 그것이 "韓日관계 거리 종지부 계기돼야"한다는 패륜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국치를 반성해야할 해에 국치를 강요했던 적국의 수장을 초청하는 것은 어느 정신병자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가?

한일합방 조약 체결일은 1910년 8월 22일이지만, 경술국치일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8월 29일이다. 조약을 체결한 후에도 일제가 조선인들의 반발을 두려워해 발표를 유보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약체결을 숨긴채 정치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후, 8월 29일에야 순종임금으로 하여금 조약을 발표하게 했다.

한국의 오늘은 폭력/살인 진압으로 집회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됐고, 마구잡이식 탄압으로 언론과 인터넷마저 매우 위축된 상태이다. 심지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 원로들까지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있다.

작년에 미네르바가 경고했던 경제위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97년 김영삼 정부가 외환위기를 숨기려다 외환보유고를 파탄냈던 것처럼, 현 정권은 경제위기의 실상을 숨기기 위해 국가 재정을 파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경술국치 100년 되는 해에 일왕의 한국 방문을 대놓고 초청할 정도면 보이지 않는 막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겠는가.

두차례의 외환위기를 통해 국내 사금융 시장은 이미 일본 자금에 의해 80% 이상 잠식됐고 코스닥 상장 기업의 상당수 또한 비슷한 처지이다. 수도권 방위의 핵심 전략 기지인 성남비행장의 군사작전 능력까지 훼손시키며 밀어붙인 제 2 롯데월드 공사는 일본 자금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기 위한 명분축적용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모펀드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어와 있는 일본 자금도 천문학적인 규모이고, 심지어 일본의 오랜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까지 추진되고 있는 마당이다.

원래도 산업적으로 일본에 상당부분 종속돼 있던 한국에 일본 자금이 제한없이 들어오고 금산분리 완화로 인해 산업과 금융간의 분리대마저 사라지게 되면, 한국 경제는 일본 자금에 통채로 넘어가게 된다. 내년에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쩌면 한국은 침탈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일본 자금을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재정파탄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 그때는 금융지원 카드를 들고 새 경제식민지를 사찰나오는 일왕이 구세주처럼 보일까?

1910년엔 내각의 수장이었던 내각총리대신이 나라를 팔아먹더니, 2010년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는 광경을 대한민국은 100년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눈뜨고 지켜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100년 마다 반복된다는 말이 소름끼치게 귓전에 울리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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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원문: 링크

경술국치 100년의 일왕(日王) 방문은 민족적 치욕이다

한일합방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체결됐다. 내년인 2010년은 그렇게 나라를 강탈당한지 꼬박 100년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일합방 100년이 되는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100년전의 국치를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나라를 기틀을 바로 세우는데 치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애국지사들을 기리며, 아직까지 그 원수를 갚지 못했음을 애통해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던 한국의 대통령은 이런 민족적 상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개념을 가진 듯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내년에 일왕(日王)이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李대통령 "日천황 방한, 내년중 희망"

경술국치 100년은 자랑스러운 해가 아니다. 우리끼리 순국선열들을 기리며 묵념하고,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력을 키우는데 매진해야 하는 해이다. 그런 해에 무슨 이유로 식민지배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을 초청하는가? 부모 제삿날 부모를 죽인 살인범을 초청하는 예법이 이 나라에 있었던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경술국치 100년째 되는 해를 "한일 우호의 해" 100주년 정도로 착각하는 것인가?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 정체성도 아예 왜놈의 것이 돼버렸는가? 어디서 감히 "천황"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가? 그러고도 과연 이 나라의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의 역할과 의무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1.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2.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3.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4.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또한 헌법 제84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일왕 초청은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내란에 준하는 행위이며, 이를 계속 진행할 경우 대한민국의 독립과 계속성을 수호하기 위한 무차별적 국민적 저항이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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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원문: 링크